<시민참여형 구술활동공유회 '참전군인을 만나는 중입니다'> 현장 스케치

'듣는 자리'에 대하여


공유회의 화두는 단연 '듣는 자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기존에 알고있는 구술이란, 화자와 청자의 자리가 명확하고, 최대한 화자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 청자의 역할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술활동은 단지 들은 것을 옮기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들은 것을 그대로 옮긴다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적극적으로 참전군인과 '소통'하고 듣는 자리에 있는 우리의 '위치'를 드러내고 생각을 나누는 당사자로서 자리하는것, 각자가 선 자리를 인지하고 '어떻게 묻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전할것인가' 그것이 마침내 모두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유회는 결과가 아닌 '시작'으로서의 의미가 더욱 컸습니다.


시민참여형 구술활동공유회 '참전군인을 만나는 중입니다' 


10월 28일 삼각지 모이다 홀에서 '시민참여형 구술활동공유회_참전군인을 만나는 중입니다' 가 열렸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세 개의 파트로 나누어 진행된 구술활동 공유회는 1년 동안 진행한 참전군인과의 만남에 대하여 10여명의 시민참가자가 생각하고 느낀 이야기를 풀어놓는 자리였습니다. 아정(아카이브평화기억 기획팀)이 전체사회를 맡았고, 프로젝트 소개(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와 더불어 첫 번째 파트에서는 우리가 '만난' 참전군인 5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그들을 만난 이들은 이재춘(전남대 사학과), 김엘림(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노예주(아카이브평화기억), 박정원(작가/활동가), 도현남(용산역사문화사회적협동조합), 노랭(아카이브평화기억), 황윤희(한국외대 정보기록학과)입니다. 


"어떤 형태로 참전군인과 소통하고 교류할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어요. 공유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셨던 분들이 왜 이렇게 호의적으로 우리의 활동을 보고 느끼고 하셨을까, 그것은 소통하고자 하는 진정성을 의미있게 바라본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전쟁에 어떻게 연루될 수 있는지 생각하다 보니까 우리가 말하고 있는 어떤 위치성, 이 자리가 어쩌면 너무나 무관한 자리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너무나 무관한 위치에서 청자를 자처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전달할 때 사실 모두가 고민을 열심히 한 결과지만, 한편으로는 단지 드러나는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의문이 여전히 남아요."


"이게 단순히 참전군인의 전쟁 경험을 그냥 기록으로 남기는 기존의 구술채록 방식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이렇게 참여자들의 고민이나 생각을 좀 더 나눌 수 있는 그런 자리로 계속 나아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고요."


"구술현장 우리가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 결국은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을 구성하게 되고 그걸 통해서 이야기와 글이 나오는 것이고. 그 현장을 어떻게 이끌어 가느냐는 결국은 우리가 얼마나 더 그것들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공부하고 준비를 했는가에 

달려있는 거 같아요."


11월 4일, 구술공유회 평가회의에 나온 단상들 



이재춘은 참전군인 구술활동을 통해 '결핍노출'된 것들, 전쟁에서 비가시화된 것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되길 희망한다는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일부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쟁점이며 그렇기 때문에 현재보다 더 시야의 확장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엘림은 참전군인이 들려준 전쟁 이야기 중 '냄새'에 대한 이야기에서 '몸의 기억'을 만납니다. 말과 글이 아무리 애써도 전할 수 없는 그 ‘몸의 기억’들을 놓치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전쟁을 극도로 단순하게 사고하거나 낭만화해버리는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노예주박정원은 경험하지 않은 낯선 역사가 나의 경험으로 온전히 다가올 수는 없다는 것, 나에게 다른 관점이 있기에 온전히 구술을 따라갈 수만은 없다는 것, 이 긴장을 마주하면서 역사의 기억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구술활동의 의미가 서로 간의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단절을 넘어 듣기를 시도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는 생각을 나눠주었습니다. 도현남은 참전군인을 만나며 개인이 사회나 국가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작아지거나, 국가의 이데올로기 속에 숨어 있는 개인의 존재를 찾지 못하는 것 아닌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노랭은 참전군인을 만난다는 것은 폭력의 구조를 마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황윤희는 우리가 하는 듣기의 자리에 참전군인이 갖고 있는 전장의 기억과 연결될 실천적 관계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참전 이야기와 우리는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 ‘말 되어지지 못한’ 참전군인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오랜 부정과 억압의 요소가 무엇인지 또 ‘널리 알려진’ 참전군인의 이야기에서 드리워진 이데올로기와 담론의 전형성이 가지는 왜곡과 함정은 무엇인지 구분해 낼 수 있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참전군인은 우리에게 전쟁 경험과 삶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참전군인 개개인이 갖고 있는 차이를 마주하고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참전군인마다 다른 서사를 들려줄 때 

우리가 갖는 익숙함과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생각했다. 

우리가 그 익숙함과 불편함에 따라 참전군인 삶의 경험을 ‘취사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기도 했다. 듣는다는 것,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깊이 생각했다. 

우리는 참전군인을 만나 청자로서의 자리에만 있지 않았다. 

단지 참전군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이 ‘만남’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고자 했다. 소통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참전군인과 만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소통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갔다.


프로젝트 소개_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중에서(하단 링크 참조)



[여는글] 프로젝트 소개_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https://blog.naver.com/peacememo7/223271021949



'만남'에 대하여


두 번째 파트의 화두는 '만남'입니다. 참전군인과의 만남은 쉽지 않습니다. 2부 우리가 만나지 못한 참전군인에서 이정행(서울대 인류학과)과 이응(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은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정행은 참전군인의 만남, 그리고 수차례의 거절경험을 통해 참전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는 거절의 경험을 통해 생각보다 더 깊고 밀도 있는 만남 속에서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만남은 상호적이기에 우리가 참전군인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역으로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작업의 취지와 목적에 공감하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정으로서 거절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응은 기대했던 것과 다른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만난 것에 대하여 만남 그 너머의 고민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이응은 기대하는 전투서사 중심의 전쟁경험이 아닌 평범하고 짧았던 전쟁이야기를 어떻게 의미화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전쟁의 '평범함'과 예상치 못한 부분에 주목하자 새로운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평범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따라가다 보니 전쟁 이야기에는 전투 장면만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전쟁 경험을 더욱 폭넓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기대한 내용에서 벗어난, 예상치 못한 이야기이기에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오히려 그러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마주하다보면 기존의 참전군인에 대한 편견이나 틀이 깨지고, 참전군인의 목소리에 다양성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구술공유회 '참전군인을 만나는 중입니다' 발표자들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겪는 존재들


우리는 3부에서 전쟁을 함께 겪는 존재로 가족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를 고엽제후유증으로 잃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작은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매년 빠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현충원을 찾는 전사자의 가족입니다. '비존재 이재춘'과 '50년 동안의 현충원'이 그 이야기의 제목입니다. 이재춘을 만난 이는 또다른 참전군인의 가족 석미화입니다. 이재춘은 시민참여형 구술기록활동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는 참전군인 가족으로 아버지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근대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비존재’인 자신이 ‘존재’함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는 이 활동을 통해 참전군인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때론 화자로 때론 청자로 다른 자리에서 전쟁과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석미화(아카이브평화기억)는 이재춘과 '전쟁'과 '평화'그리고 '비존재들'에 대해 이야기나누었습니다. 이재춘이 자신을 ‘비존재’로 만드는 여러 요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나그네의 시선을 만납니다. 어쩌면 동떨어진 나그네의 시선은 이재춘이 가진,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보게 만드는 그런 시선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이제 '정치(精緻)하게 '비존재 이재춘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강서희(알바상담소)는 한 번도 작은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한 적도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어쩌면 태어나면서부터 으례히 현충원을 다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구술활동을 하며 그는 처음으로 가족을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와 작은아버지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그리고 전사자의 가족으로 국가로부터 받는 '보훈'이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구술공유회에서 발표의 자리에 함께하지 않은 이재윤(외국어대 기록학과), 이현주(용산마을교육연구회)의 글도 자료집에 수록하여 청중을 만났습니다. 청중석에는 관심있는 다양한 이들, 구술에 참여한 참전군인도 함께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이제 시작이다


청중석의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오전부터 시작해 종일 진행되는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함께하며 생각을 나눠준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오래전에 참전군인 10여명의 구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구술활동을 하며 이분들을 대상화하고 군사주의 혹은 발전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맴도는 존재로만 기술하는 게 싫었다. 여기 자료집에 나오는 이질감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크게 공감했다. 참전군인도 나도 계속 이질감을 느끼며 발언을 하는 경험을 했다. 망설임, 잔여감이 있었다. 그런 경험들이 망설임의 순간들에서 나아가야할 방향이 나오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 본질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참전군인을 만나는 과정에 나는 렌즈가 많이 바꼈다. 당시 태극기부대가 많이 이야기되던 시절이었는데 적어도 나는 고착된 이미지로 참전군인을 떠올리지 않고 사람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변화가 있었다.결국 도덕적 잔여감은 얼굴과 서사 속에서 조금씩 해결로 나아가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 들은 이야기들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청중1)


"요즘 두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기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쟁을 어떻게 이야기해야하는지 고민이 깊다. 오늘 두 가지 고민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 속에 배울 수 있었고 또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속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하거나 바꾸기 위해서는 현재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배경, 환경, 사회구조를 바꾸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은가 생각했다. 오늘 중요한 것들을 되게 많이 이야기해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참전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들, 전쟁을 정당화하고 의미화한 맥락들을 드러내고 이것을 문제화하고 바꿔나가도록 노력하하면 되지 않을까.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우리가 다른 맥락을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중2)


이번 행사는 '시민참여형 구술활동' 중간공유회 자리로, 이 프로젝트는 내년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도록 끝까지 관심과 응원 보내주세요. 새로운 소식으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구술활동 공유회 '참전군인을 만나는 중입니다' 참가자들 



경험하지 않은 낯선 역사가 나의 경험으로 온전히 다가올 수는 없다는 것, 

나에게 다른 관점이 있기에 온전히 구술을 따라갈 수만은 없다는 것, 

이 긴장을 마주하면서 역사의 기억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 구술활동의 의미가 

서로 간의 세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단절을 넘어 

듣기를 시도하는 과정 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술활동을 진행하며 마주한 단절 앞에서, 저희는 ‘전쟁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라는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러한 단절 역시도 전쟁이라는 폭력이 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일 것이며, 

그 영향이 서로 다른 세대 간의 관계 맺기에도 스며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단절에도 불구하고 참전군인께서 나눠주신 이야기의 구조적인 기원을 

끊임없이 파악해 나가는 시도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의 현재가 전쟁의 경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지금, 

참전군인과의 이러한 듣기와 관계 맺기는 전쟁의 역사를 현재와 분리시키는 것이 아닌, 

전쟁 경험자 개인의 역사를 현 세대의 역사와 하나로 잇는 시도가 될 것입니다.


part1. 우리가 만난 참전군인 '나는 군복을 입고 살아갈 운명이었나봐' 노예주, 박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