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명의 관심있는 분들이 함께 듣고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발제를 준비한 아정(아카이브평화기억 기획팀, FIPS, IW31)은 평화와 인권의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독립연구활동가입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평화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공론장 기획을 맡고 있어요. 이번에는 기획부터 발표까지 아정이 그동안 활동하며 가진 문제의식과 이야기를 야심차게 풀어놓는 공론장으로 기획했답니다. 사회는 성미산학교 교사이자 아카이브평화기억 평화워크숍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둘리가 맡았어요.
아정의 발표는 경계와 틀을 넘나드는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로 꽉 찼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어지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생소한 이야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영역과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정의 이야기는 가해와 피해라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경계 너머의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새 확장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차적 듣기’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참전군인을 만나고 베트남전쟁을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보려는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이 교차성을 어떻게 실현하고 접목할 것인가 고민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정이 말하는 ‘교차적 듣기’란 무엇일까요. 함께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발표 요약과 소감 일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확인해주세요!
피해와 가해의 현장에서 느낀 분열증적 경험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활동 속에서 베트남전쟁을 만나고, 피해와 가해의 현장에서 느꼈던 분열증적 경험을 갖고 있다. 나는 베트남전쟁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그리고 사죄와 배상이라는 도식으로 만나는 것에 대하여 탈사법화 혹은 재정치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익이나 외교 문제로 전쟁경험을 축소하지 않으려는 마음, 삶과 죽음 그리고 폭력을 해석할 권리를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익숙했던 피해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가해를 수행하는 자리와 가해자성, 자기 의도나 선택 바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뒤늦게나마 알아차리고 인정하려 드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가해자성을 인식하는 핵심이다. 누구든 가해의 구조에 놓일 수 있으며 끊임없이 자기가 놓인 구조를 의심하고 되물어야 한다. 그것은 부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르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행위의 가해성이 인정될 때, ‘가해자’는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다. 가해자는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성의 인식을 통해서 부각되는 것이다. 가해자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주체로 서는 일이다.
또 하나의 전장,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하여, 폭력은 당하는 존재뿐 아니라 그 폭력을 수행하는 존재에게도 경험된다. 한국군의 강제군사 노동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種)에게 전가되고 있는 대리노동과 폭력의 외주화 매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민족의 참전과 비인간동물의 참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군사노동에 동원되어 쓰고 버려지는 존재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트라우마’ 개념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전쟁 경험을 개인적인 것으로 병리화하는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가 말하는 참전군인은 누구인가? 참전군인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위치성을 가지고 전장에 섰던 이들과의 대면해본다. 베트남 박장에서 만난 북한군 공군묘지, 북베트남 열사 묘역과 대비되는 남베트남군 묘역, 한국 파주의 적군묘지, 그들에 대한 금지된 애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도가 금지된 존재들을 애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교차성은 내가 이 세상의 권력 작동과 어떤 식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그 관계가 결코 단순하거나 자명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모순적이라 나를 사회적 약자로 배치하는 바로 그 상황이 동시에 나를 사회적 권력자로 배치할 수도 있음을 함께 깨닫게 해주는 분석틀이다.”
“교차성은 단지 인종, 성, 계급, 장애, 연령, 성적지향, 종교, 민족성 등의 다양한 억압의 기제들이 더해지는 분석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들이 다른 영역들과 서로 얽히고 연결되고 맞물리며
상호작용하고 서로를 구성하는 관계에 있음을 밝혀내는 분석이다.”
한우리, 김보명, 나영, 황주영지음 『교차성X페미니즘』 88-89쪽
‘교차적-듣기’는 화자뿐 아니라 청자에게도 작동해온, 혹은 청자도 부지불식간에 가담해 온 인/종(種), 성, 계급, 장애, 연령, 성적지향, 종교, 민족성 등의 억압의 기제들이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 지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고-듣고-전하기의 과정은 국가를 상대로 ‘폭력’이란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되묻는다는 점에서 또한 ‘폭력’의 구조에 놓이거나 가담하기를 모두 거절하려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병역거부운동, 동물해방운동, 외국인보호소폐지운동, 퀴어와 장애, 기후위기를 비롯한 여러 운동들과 실천적 사유의 지평을 공유한다. 이제 ‘폭력’은 더 이상 전쟁이나 군대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고, 일상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전쟁과 참전이라는 개념의 깊은 확장을 통해 말하고-듣고-전하는 과정에 연동된 이들과 함께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힘’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참전’경험을 말하고-듣고-전하는 과정에서 가까스로 당사자성은 확보된다.
나는 밋밋하고 평평한 베트남전쟁 평화운동이 교차성을 통해
울퉁불퉁하고 다양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저는 구술을 기록하는 이들이 ‘정치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못한 기록 활동을 해 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이 활동의 중요한 점은 ‘말한다’ ‘듣는다’ ‘그 말을 생각하고 다시, 말한다’ 이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당사자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어떤 자리에 위치하는 게 좋을지를 생각하지 않는 기록 활동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정여름
교차적 듣기를 제시하는 강연 안의 내용들이 현대의 여러 이슈와 사회 운동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명확하게 구분짓는 것에 대한 불편감을 느끼고 있다. 요즘 청년 문제, 아동 문제, 소수자 문제 전국적으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고 사회 운동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너무 명확하게 각자의 위치에서 정해진 의견과 다르다고 여겨지면 찬성과 반대, 가해와 피해 분리만 하게 되는. 그러다 보니 복잡하고 울퉁불퉁하게 다뤄지는 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울퉁불퉁하게 하는 작업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논쟁적이고 불편하기만 한 것이었다. 이런 작업이 없으면 우리가 대화가 단절될 수 있겠다 싶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좀 주의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들의 정의가 완벽하다고 믿는 분들을 많이 봐왔다. 자발적으로 연대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내 입장에서 종종 연대를 강요받거나 공감/동조를 강요받는 상황이 있었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엄청난, 스펙트럼처럼 넓은 상황들을 각자가 감각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고민과 성찰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본 강의의 내용들을 삶이나 실천하려고 하는 사회운동 현장에서도 적용해볼 수 있겠다. 감사히 들었다.
조한결
이 공론장의 주제가 ‘가해와 PTSD에 가두지 않는’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 취지이다. 그런 면에서 아정의 이야기는 그 경계 너머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가해와 피해를 나누고 우리가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 결정한다. 그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은 것이었다. 아정이 전해준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어느 자리에 서야하는 지 어떻게 판단해야하는 지 혼란스러운 것들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경계를 생각해보게 한다. 가해와 피해 논쟁은 결국 책임과 배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공론장이 그것 너머의 것들을 보고 더 다양하게 연결되고 확장되면 좋겠다. 참전군인을 만난다는 것은 만나지 못했던 존재에 다가가는 것이고 그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교차적 듣기라는 방식을 참전군인과 만나는 현장에서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 고민이 든다.
<베트남전쟁과 참전군인, 가해자성과 PTSD에 가두지 않는 ‘교차적 듣기’를 모색하다> 공론장이 열렸습니다.
60여 명의 관심있는 분들이 함께 듣고 이야기를 나눠주셨어요. 발제를 준비한 아정(아카이브평화기억 기획팀, FIPS, IW31)은 평화와 인권의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독립연구활동가입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평화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공론장 기획을 맡고 있어요. 이번에는 기획부터 발표까지 아정이 그동안 활동하며 가진 문제의식과 이야기를 야심차게 풀어놓는 공론장으로 기획했답니다. 사회는 성미산학교 교사이자 아카이브평화기억 평화워크숍 기획에 참여하고 있는 둘리가 맡았어요.
아정의 발표는 경계와 틀을 넘나드는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로 꽉 찼습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어지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였으니까요. 생소한 이야기,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영역과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나 아정의 이야기는 가해와 피해라는 단순한 구도 속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경계 너머의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새 확장되고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교차적 듣기’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참전군인을 만나고 베트남전쟁을 평화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해보려는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이 교차성을 어떻게 실현하고 접목할 것인가 고민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정이 말하는 ‘교차적 듣기’란 무엇일까요. 함께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따라가 봅니다. 발표 요약과 소감 일부를 정리해보았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확인해주세요!
피해와 가해의 현장에서 느낀 분열증적 경험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활동 속에서 베트남전쟁을 만나고, 피해와 가해의 현장에서 느꼈던 분열증적 경험을 갖고 있다. 나는 베트남전쟁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그리고 사죄와 배상이라는 도식으로 만나는 것에 대하여 탈사법화 혹은 재정치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국익이나 외교 문제로 전쟁경험을 축소하지 않으려는 마음, 삶과 죽음 그리고 폭력을 해석할 권리를 우리 스스로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익숙했던 피해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가해를 수행하는 자리와 가해자성, 자기 의도나 선택 바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뒤늦게나마 알아차리고 인정하려 드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여기에서 자기가 발 딛고 서 있는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가해자성을 인식하는 핵심이다. 누구든 가해의 구조에 놓일 수 있으며 끊임없이 자기가 놓인 구조를 의심하고 되물어야 한다. 그것은 부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으며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르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행위의 가해성이 인정될 때, ‘가해자’는 처음으로 존재하게 된다. 가해자는 애초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성의 인식을 통해서 부각되는 것이다. 가해자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주체로 서는 일이다.
또 하나의 전장,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 대하여, 폭력은 당하는 존재뿐 아니라 그 폭력을 수행하는 존재에게도 경험된다. 한국군의 강제군사 노동뿐만 아니라 다른 인/종(種)에게 전가되고 있는 대리노동과 폭력의 외주화 매커니즘을 비판적으로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소수민족의 참전과 비인간동물의 참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군사노동에 동원되어 쓰고 버려지는 존재들 전쟁을 겪은 이들에게 ‘트라우마’ 개념을 적용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전쟁 경험을 개인적인 것으로 병리화하는 문제가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가 말하는 참전군인은 누구인가? 참전군인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위치성을 가지고 전장에 섰던 이들과의 대면해본다. 베트남 박장에서 만난 북한군 공군묘지, 북베트남 열사 묘역과 대비되는 남베트남군 묘역, 한국 파주의 적군묘지, 그들에 대한 금지된 애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도가 금지된 존재들을 애도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될까?
‘교차적-듣기’는 화자뿐 아니라 청자에게도 작동해온, 혹은 청자도 부지불식간에 가담해 온 인/종(種), 성, 계급, 장애, 연령, 성적지향, 종교, 민족성 등의 억압의 기제들이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 지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말하고-듣고-전하기의 과정은 국가를 상대로 ‘폭력’이란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되묻는다는 점에서 또한 ‘폭력’의 구조에 놓이거나 가담하기를 모두 거절하려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병역거부운동, 동물해방운동, 외국인보호소폐지운동, 퀴어와 장애, 기후위기를 비롯한 여러 운동들과 실천적 사유의 지평을 공유한다. 이제 ‘폭력’은 더 이상 전쟁이나 군대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고, 일상에 대한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전쟁과 참전이라는 개념의 깊은 확장을 통해 말하고-듣고-전하는 과정에 연동된 이들과 함께 ‘국민화의 폭력을 거절하는 힘’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참전’경험을 말하고-듣고-전하는 과정에서 가까스로 당사자성은 확보된다.
나는 밋밋하고 평평한 베트남전쟁 평화운동이 교차성을 통해
울퉁불퉁하고 다양하게 나아가길 바란다.
정여름
조한결
석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