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오후 4시 30분부터 공익활동지원센터 '모이다홀'에서 2024년 시민참여형 구술활동 공유회가 열렸습니다. 올해 공유회의 제목은 ‘그의 전쟁 가방을 열다’입니다. 5시간 가량 긴 시간 열린 공유회에는 구술활동에 참여한 시민과 참전군인, 관심있는 각 분야 활동가와 연구자 등 50여명이 넘는 이들이 함께하였고, 그동안의 활동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시작하며
아버지의 전쟁 가방을 멘 아이: 석미화
올해 구술활동에 함께한 이들은 노동 현장과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자, 연구자, 대학생, 청소년, 환경단체 활동가, 작가, 번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이 갖고 있는 평화 인권에 대한 고민은 그 현장과 닿아 있었습니다. 지난해에 함께했던 이들도 여럿이 참여를 이어갔습니다. 참전군인과의 관계로 다시 소개하자면 참전군인의 자녀이자 친척이고, 이웃이기도 했습니다. 우연한 만남 속에 인연이 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올해 처음 만남을 시작한 참전군인도 있고, 지난해에 이어 만남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올해 시민참여형 참전군인 구술 활동은 참여하는 이들의 개성에 따라 변화했고, 조금씩 누적된 이야기들이 한 켜 쌓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대표는 공유회를 시작하며 올해 만난 테드 엥겔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올해 구술활동 공유회의 제목에 등장한 '전쟁가방'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테드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겨울 숲인 듯 앙상한 나뭇가지들 앞에 작은 오두막을 배경으로 열 명 넘는 아이들이 두 줄로 서서 야외 활동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의 모자와 옷차림은 5-60년대 미국임을 짐작하게 했다. 그 흑백 사진에서 혼자 떨어져 서 있는 작은 체구의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12살 테드였다.
“이게 저예요. 2차대전에서 아버지가 썼던 배낭을 메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런 게 없어요. 저는 제 아버지의 군인으로서의 삶을 지고 살았던 겁니다. 그걸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이게 제가 군인의 삶에서 받은 영향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진 속 아버지의 전쟁 가방을 멘 아이, 테드 엥겔만을 만났다. 토요일 아침 9시에 미국 덴버에 있는 그를 줌으로 연결했다. 그에겐 금요일 밤이었다. 두 차례에 걸쳐 3시간씩 진행된 질문과 답변에 피곤할 법도 한데 테드는 자료까지 보여주며 열심히 이야기했다. 사전에 오고 간 질문과 답변은 총 스물세 가지였다. 우리는 묻고 싶은 게 많았고, 그에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었다.
테드가 아버지의 전쟁 가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때 나도 그 가방을 메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참전군인과 만난다는 것이 그 전쟁 가방을 나누어 메는 것인지, 혹은 우리가, 사회가 보이지 않는 전쟁 가방을 메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전쟁에 대해 견고한 국가 서사가 존재하고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아래에서 우리의 활동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구술활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전쟁에 대한 다른 시선과 기억을 발화하고자 하는 이 활동은 정면으로 기존의 전쟁 서사에 도전하는 일이며 그 서사를 지탱하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들으려 하는 개인의 전쟁 기억과 그것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은 이러한 거대한 구조 아래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기억’이라는 단어 앞에서 주춤거린다. 그들의 기억을 기록하고 경험하지 않은 세대로서 그 기억을 마주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다. 잘 듣는다는 것, 잘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전달자가 되어 들은 것을 다시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다. 지난 구술활동에서 나온 ‘듣는 자리’에 대한 고민은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의 기록이 ‘역사’일까, 그것이 ‘역사의 자격’을 갖춘 것일까, ‘역사의 자격’이란 무엇일까,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만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시 말해야 할까,
공감하며 듣는다는 것이 자칫 전쟁에 대한 미화를 용인하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비춰지지는 않을까, 우리를 주춤거리게 하는 수많은 생각들 앞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이런 생각들 속에 포스트메모리 개념은 후세대가 기억의 주체로 서는 것을 응원하고 그들만의 기억의 방식을 존중한다는 생각을 던져주었다. 어느 누구의 기억도, 언젠가는 포스트메모리가 된다. 그것을 경험한 세대든, 후세대든 마찬가지다. 기억의 주체는 결국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참전군인과의 만남은 역사에 접속하고 기억을 적극적으로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기억의 방식은 끊임없는 질문을 만들고 도전받는다. 우리는 참전군인을 만나는 자리에서 그 질문들을 계속 마주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열린 공유회의 화두는 '듣는 자리'에 대한 것이었다. 모두가 처음이었고 ‘듣는다는 것’과 ‘만난다는 것’에 대해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올해는 우리에게 무엇이 화두가 될까. 마찬가지로 참전군인은 우리에게 그들의 경험과 삶에 대해 기꺼이 이야기해 주었다. 공유회는 참여하는 시민들과 참전군인이 함께 만든 자리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그 익숙함과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듣는 자리에 있는 당신의 몫이다.
1부에는 <나는 헌법소원 중입니다: 박내현, 박정원>, <망각 속에서 기억을 듣다: 윤명숙, 류현정, 이재춘>, <불확실하고 어긋나는 경험을 듣는다는 것: 이응, 먼지, 오뎅, 그냥> 세 팀이 발표를 했습니다.
<나는 헌법소원 중입니다>
그는 우리들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아마 참전군인 집단에 속해 있을 때와 우리를 만났을 때, 그가 나눌 수 있 었던 이야기는 사뭇 다를 것이다. 다른 이야기들을 더 나누기 위해, 참전군인을 더이상 특정 집단에만 고립시켜 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결코 과거에만 일어났던 일도, 한 장소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기에, 세대와 세대 간의 격차, 전쟁 경험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와의 만남은 평화를 이야기하는 우리 모두의 언어가 섞여서 하나의 문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구술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정원-
그날의 만남을 마치고 나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의 이야기를 잘 듣는다는 것은 무엇이 었을까.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듣는다는 것은 가능한가. 가능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제대로 묻지 않는 사람이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그가 얘기하기만을 기다리며 그가 꺼낸 말들을 재단하며, 주변만 빙빙 돌면서 그 빈칸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나였다. 나는 이제야 그그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
-박내현-
<망각 속에서 기억을 듣다>
한 ‘사람’의 참전군인의 목소리에 집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여야 하나. 인간적인 오류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과오가 지워지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이 과오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물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책임이 지워지거나 희석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개인과 국가를 구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서 라거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서라거나 하는 ‘인간적’인 합리화를 제거하면 무엇이 남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참전에서는 제3자가 되어 있지만 말 그대 로의 제3자는 아니다. 그야말로 국적을 버리지 않는 한, 내가 아나키즘이라는 가치관을 갖는 것과 현실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구술자와 면담자에게 책임이 남는다. 사유할 책임, ‘해결’할 책임, 기억할 책임 등.
-윤명숙-
<불확실하고 어긋나는 경험을 듣는다는 것>
처음에는 전쟁에 대해 공부하고 있음에도 확신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마주하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이나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피하고 싶었다. 가늠이 안가는 사람들이 수치화되고 죽음과 부상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했다. 현실로 다가오지 않고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참전군인 구술활동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들으며 전쟁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다. 참전군인 구술활동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과 생각을 하게 됐고, 그 일은 이제 나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으로서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은 경험한 세대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세대들이 관심을 가졌을 때 명예롭거나 자랑스러움을 넘어서 성찰하고 재해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오뎅-
‘말하지 않음’과 ‘묻지 않음’의 관계는 구술 과정에서의 한계를 느끼게 하기도 했고, 불확실하고 어긋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했으며, 그럼에도 조금씩 경계를 흐려나가는 경험이기도 했다. 여전히 남아있는 불확실함과 이해할 수 없음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명료한 문장들로 정리된 이야기보다 말들 사이 비워진 틈새를 추정하며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어땠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의 모든 입장에 동의할 수 없으나 어떤 이야기와 고통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싶었다. 어떤 정답을 섣불리 찾으려 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는 상태를 지속했던 것의 의미를 찾아본다면, 나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고민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참전군인과의 만남으로 어떻게 평화를 고민할 수 있을까. 이번 구술을 통해서는 적어도 말할 자리를 만들어 듣는 사람이 되기로 한 우리는, 혼란과 모순을 함께 감당해나감으로써 그것들이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그것을 경험한 사람의 말을 듣는다면 나도 연루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다.
-이응-
2부
2부에서는 <반쪽 아버지의 반쪽 월남 기록: 함정희, 추병진, 난쏘>, <아버지의 전장과 시장: 이수빈, 김혜미, 노랭>, <고성 두호마을 농민운동가 이호원: 손소희>, <빌과 나의 ‘평화’: 도현남> 네 팀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반쪽 아버지의 반쪽 월남 기록>
몇 해 전 베트남 민간인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웹툰을 작업한 적이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베트남전에 대한 여러 자료와 강연을 들은 후 나는 하미마을 피해자 팜티호아 할머니 일생을 담은 이야기를 작업했다. 베트남 한국군 피해자들은 한국 군인들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했다. 내 기억은 그렇게 월남 참전 한국 군인들의 이야기를 베트남 피해자들에게서 듣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베트남 피해자의 시선으로 먼저 한국군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월남전 참전군인들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있었고 그 시선으로 구술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중략) 구술작업을 하면서 똑같이 월남전에 참전했지만 내가 만난 참전군인과 전혀 다른 삶을 살 다 간 나의 외삼촌이 안타깝고 많이 그리워졌다. 왜 그런 삶을 살았을까? 왜 혼자 외로운 삶 을 살았던 것일까, 이것도 전쟁의 후유증이었을까? 이제는 돌아가려야 갈 수 없는 시간 이 서럽기까지 했다. (...) 반공정신이 투철한 삶을 살아가는 구술작업으로 만난 참전군인의 삶도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모두 다른 삶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가 폭력에 내몰렸던 사람들이고 그것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모른 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들의 삶은 어딘가 모순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세 사람의 삶으로 알게 되었다.
-함정희-
영상 <반쪽 아버지의 반쪽 월남 기록> (6분 30초)
물론 '참전군인 OOO'과 '아버지 OOO'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물을 보는 것만으로 '인간 OOO'을 온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투철한 반공주의와 반대편에 대한 강한 적개심이 어떤 과정을 통해 내면화되었는지, 그것이 소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고민하게 했다. 두 사람과의 만남은 그런 생각을 가능하게 했다. 한 사람의 삶에 육박해 들어가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러하다면, 내 기록이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면 좋겠다. 어떤 말과 행동의 이면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조금씩 천천히 헤아려보기를. 섣불리 결론 내리지 말고 고민의 끈을 조심스레 이어가기를.
-추병진-
<아버지의 전장과 시장>
전쟁 막바지로 치닫고 있던 베트남에서 그 청년은 전쟁의 잔혹함이나 파괴력을 직접 경험하기보다는 검은 돈이 어떻게 벌리는지 배웠다. 당시 큰 재산을 혼자 힘으로 일구 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마치 아버지가 항일 독립 전쟁 한가운데에서 큰 돈을 벌어왔 듯 베트남 전쟁이 돈을 벌면서 그 방법을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헌병으로서는 혼자 미군 부대 안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상사에게 상납해야 하는 할당량을 제외하고도 미군 부대 안에 있다는 장점을 살려서 비교적 쉽게 암거래 를 성사하고 달러를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열심히 돈을 벌지 않았고, 눈치껏 필요한 만큼만 했다.
-이수빈-
미군PX 사진을 처음 봤을 때 나는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구술활동 후 집에 돌아와 사진을 꼼꼼하게 들여다 봤다. 우리 집 앞에 있는 마트의 모습과 너무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놀랐다. 전쟁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전쟁이 가장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유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쟁을 ‘잊지 않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은 총, 칼, 피, 돈, 살인 같은 이미지들이자 이것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전쟁을 ‘유지’하기 위한 것들은 의외로 마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을 전쟁 답지 않게 만들 때 전쟁은 이토록 오랫동안 유지되고 반복될 수 있는 걸까. 전쟁을 유지하게 만드는 ‘일상적’인 요소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김혜미-
영상 <그랬으면 안 갔지> (5분 59초)
참전군인을 만나면 가족의 울타리가 짙다. 효도를 중시하거나,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등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현재에도 가족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를 구성하는데 큰 영향을 주지만 가족의 결합에 대한 선택지가 많아진 지금에서는 '가족'의 이야기를 쉽게 공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만난 참전군인의 이야기도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장남 중심의 가정 문화와 재산 상속 속에서 베트남 전쟁 파병을 결심하게 된다.'자유민주주의 수호',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의 메시지와 일치하지 않는 그만의 사유가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람이 어떻게 전쟁에 참전하는가' 질문하게 된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된다.
-노랭-
<고성 두호마을 농민운동가 이호원>
아버지의 모습으로 회귀되었던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나는 달리 생각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에서 전쟁의 피해자인 군인을 생각했다. 전쟁을 멈추게 할 당사자로서의 군인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군 인을 만나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가장 가까운 역사적인 사건인 1948년 10월 19일 대통령의 부당한 명령에 반기를 들었던 여순반란사건이 있었다. 군인들이 같은 민족인 제주 민중을 살해하지 않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산으로 간 역사가 있었고, 러시아는 실제로 군인들이 혁명에 가담해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군인이 처한 위치가 꼭 지배 계급에 복종하고 수동적인 도구로서의 군인만 존재하란 법은 없지 않냐고 생각했다. 이 문제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듣고 싶었다.
-손소희-
<빌과 나의 ‘평화’>
나는 2023년에 한국에 사는 베테랑 빌을 인터뷰하며 19살 '소년 빌'을 만났다. 빌은 위탁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병대 입대 후 베트남으로 갔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군인이며 한국의 용산 미군기지 한미연합사에서 복무한 해병이었다. 퇴역 후에는 한국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전쟁 이야기와 개인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들려준 빌은 내가 처음 만난 전쟁을 경험한 베테랑이었고 전쟁 트라우마를 갖고 사는 인간의 삶을 처음 고민해 보게 만든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 네 시간을 훌쩍 넘겨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긴 시간 이야기 나눠본 것은 나도 처음이었지만 빌도 처음이었다.
시민 참여자로 베트남전에 참여한 군인을 만나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참전군인으로, 한 인간으로 그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전쟁과 인간 소외라는 키워드가 남게 되었고 구술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베테랑 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빌과 나의 서로 다른 '평화'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도현남-
발표를 마치고 : 토론과 질의응답
총 7팀의 발표는 주어진 시간을 넘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문에 청중과 나누는 시간이 줄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참전군인, 활동가, 연구자를 비롯한 다양한 분들이 고민을 나누어 주었어요. 소중한 의견을 남겨준 분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추후 공유회 후기글로 더 많은 생각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정행 / 나동주 참전군인
이슬기 들으면서 좀 여러 가지 고민들이 같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일단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더라구요. 그런 생각과 고민들이 이제 평화나 전쟁에 대한 사유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많이 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들었고요. 고민이 좀 됐던 것 중의 하나는 호칭이 조금 신경쓰였어요. 참전군인이라는 호칭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들으면서 호칭을 어떻게 할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참전군인이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면서 오히려 그들을 참전군인의 자리에 붙박아주는 듯한 느낌을 조금 받기도 했었어요. 또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자리나 관계 인식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따른 고민을 또 같이 해보게 돼요. 오늘 나누어 주었던 것처럼 참전군인을 만난 이들의 여러 입장들이 함께 잘 이야기가 되면서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듣고 전달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같이 연결된다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정행 저는 작년에 아카이브평화기억 참전군인 구술에 참여를 했었고 지금은 그때 경험을 발판삼아 참전군인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참전군인을 조금 다르게 만났어요. 1대1로 만난 게 아니라 참전자회 사무실에 제가 찾아가서 같이 생활도 하고 이야기도 듣고 여러 명의 참전군인과 한 번에만나기도 하는 다양한 어떤 방식으로 만났는데요. 발표 중 참전자회 활동을 하시는 분이 등장합니다. 참전자회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그리고 참전군인 분들과 있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우리한테 들려주는가 하는 지점들을 우리가 앞으로 더 기록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명예, 민주주의 수호 같은, 우리가 어떻게 보면은 소위 말해서 태극기 부대라고 타자화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왜 지금 우리한테 말씀해 주시는가 라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문제들의 어떤 진위여부라기보다는 그 문제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우리한테 그려내고 있는가 그런 것들이 좀 더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그런 지점들을 소감으로 말씀드립니다.
다양한 이들이 1년 동안 우리 주변의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
공유회는 시민 참여자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참전군인이 함께 만든 자리입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는 공유회 자리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만남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듣는’다는 것이 갖는 소통과 연대의 힘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듣고-말하는 행위 속에서 연루되고 관계가 생깁니다. 참전군인과의 대화는 과거의 전쟁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평화를 고민하고, 우리가 선 자리에서 그것들을 직면하고 마주하려는 노력입니다.
지난 12월 12일 오후 4시 30분부터 공익활동지원센터 '모이다홀'에서 2024년 시민참여형 구술활동 공유회가 열렸습니다. 올해 공유회의 제목은 ‘그의 전쟁 가방을 열다’입니다. 5시간 가량 긴 시간 열린 공유회에는 구술활동에 참여한 시민과 참전군인, 관심있는 각 분야 활동가와 연구자 등 50여명이 넘는 이들이 함께하였고, 그동안의 활동을 나누는 소중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시작하며
아버지의 전쟁 가방을 멘 아이: 석미화
올해 구술활동에 함께한 이들은 노동 현장과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자, 연구자, 대학생, 청소년, 환경단체 활동가, 작가, 번역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들이었고, 그들이 갖고 있는 평화 인권에 대한 고민은 그 현장과 닿아 있었습니다. 지난해에 함께했던 이들도 여럿이 참여를 이어갔습니다. 참전군인과의 관계로 다시 소개하자면 참전군인의 자녀이자 친척이고, 이웃이기도 했습니다. 우연한 만남 속에 인연이 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올해 처음 만남을 시작한 참전군인도 있고, 지난해에 이어 만남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올해 시민참여형 참전군인 구술 활동은 참여하는 이들의 개성에 따라 변화했고, 조금씩 누적된 이야기들이 한 켜 쌓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대표는 공유회를 시작하며 올해 만난 테드 엥겔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올해 구술활동 공유회의 제목에 등장한 '전쟁가방'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전쟁에 대해 견고한 국가 서사가 존재하고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 아래에서 우리의 활동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구술활동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전쟁에 대한 다른 시선과 기억을 발화하고자 하는 이 활동은 정면으로 기존의 전쟁 서사에 도전하는 일이며 그 서사를 지탱하는 시스템을 거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들으려 하는 개인의 전쟁 기억과 그것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노력은 이러한 거대한 구조 아래 자리하고 있습니다.
1부
1부에는 <나는 헌법소원 중입니다: 박내현, 박정원>, <망각 속에서 기억을 듣다: 윤명숙, 류현정, 이재춘>, <불확실하고 어긋나는 경험을 듣는다는 것: 이응, 먼지, 오뎅, 그냥> 세 팀이 발표를 했습니다.
<나는 헌법소원 중입니다>
<망각 속에서 기억을 듣다>
<불확실하고 어긋나는 경험을 듣는다는 것>
2부
2부에서는 <반쪽 아버지의 반쪽 월남 기록: 함정희, 추병진, 난쏘>, <아버지의 전장과 시장: 이수빈, 김혜미, 노랭>, <고성 두호마을 농민운동가 이호원: 손소희>, <빌과 나의 ‘평화’: 도현남> 네 팀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반쪽 아버지의 반쪽 월남 기록>
<아버지의 전장과 시장>
<고성 두호마을 농민운동가 이호원>
<빌과 나의 ‘평화’>
발표를 마치고 : 토론과 질의응답
총 7팀의 발표는 주어진 시간을 넘어 계속되었습니다. 그때문에 청중과 나누는 시간이 줄어 아쉬움이 컸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참전군인, 활동가, 연구자를 비롯한 다양한 분들이 고민을 나누어 주었어요. 소중한 의견을 남겨준 분들의 이야기도 함께 전합니다. 추후 공유회 후기글로 더 많은 생각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정행 / 나동주 참전군인
이슬기 들으면서 좀 여러 가지 고민들이 같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일단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게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더라구요. 그런 생각과 고민들이 이제 평화나 전쟁에 대한 사유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많이 해 나갈 필요가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들었고요. 고민이 좀 됐던 것 중의 하나는 호칭이 조금 신경쓰였어요. 참전군인이라는 호칭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들으면서 호칭을 어떻게 할지 굉장히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참전군인이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면서 오히려 그들을 참전군인의 자리에 붙박아주는 듯한 느낌을 조금 받기도 했었어요. 또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다 보니까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자리나 관계 인식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따른 고민을 또 같이 해보게 돼요. 오늘 나누어 주었던 것처럼 참전군인을 만난 이들의 여러 입장들이 함께 잘 이야기가 되면서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듣고 전달할 것인가라는 고민이 같이 연결된다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정행 저는 작년에 아카이브평화기억 참전군인 구술에 참여를 했었고 지금은 그때 경험을 발판삼아 참전군인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올해 참전군인을 조금 다르게 만났어요. 1대1로 만난 게 아니라 참전자회 사무실에 제가 찾아가서 같이 생활도 하고 이야기도 듣고 여러 명의 참전군인과 한 번에만나기도 하는 다양한 어떤 방식으로 만났는데요. 발표 중 참전자회 활동을 하시는 분이 등장합니다. 참전자회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그리고 참전군인 분들과 있을 때는 어떤 이야기를 우리한테 들려주는가 하는 지점들을 우리가 앞으로 더 기록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한 명예, 민주주의 수호 같은, 우리가 어떻게 보면은 소위 말해서 태극기 부대라고 타자화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왜 지금 우리한테 말씀해 주시는가 라는 것들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문제들의 어떤 진위여부라기보다는 그 문제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우리한테 그려내고 있는가 그런 것들이 좀 더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그런 지점들을 소감으로 말씀드립니다.
다양한 이들이 1년 동안 우리 주변의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
공유회는 시민 참여자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참전군인이 함께 만든 자리입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마무리하는 공유회 자리였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만남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듣는’다는 것이 갖는 소통과 연대의 힘을 느끼는 자리였습니다.
듣고-말하는 행위 속에서 연루되고 관계가 생깁니다. 참전군인과의 대화는 과거의 전쟁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평화를 고민하고,
우리가 선 자리에서 그것들을 직면하고 마주하려는 노력입니다.
2025년에도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