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일본 필드워크를 가다]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와의 교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WAM 방문, 쇼케이칸(상이군인박물관), 야스쿠니신사와 유슈칸 탐방이 남긴 것들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1일까지 일본 도쿄로 필드워크를 다녀왔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가와 회원, 공론장 기획팀 등 8명이 함께 꽉찬 일정을 보내고 왔어요. 이번 필드워크는 지난해 4월 열었던 공론장에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전후'(戰後), 과정으로서의 책임과 해석(김수용 강연)’ 이후 '중귀련(중국귀환자연락회)' 탐방과 교류를 실천해보고자  1년만에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에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50년 행사, WAM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도 방문할 수 있었어요. 야스쿠니 신사와 쇼케이칸(상이군인 박물관)을 방문해 국가와 전쟁 기억에 대해 두루 공부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이번 필드워크를 통해 일본 사회의 ‘전후’에 대한 고민을 만났습니다. 3박 4일간의 여정이 함께한 이들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따라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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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평화박물관 탐방과 교류

일본군 BC급 전범이 '인죄'와 '탄백'의 과정을 거쳐 일본으로 송환된 이후 그들과 더불어 증언을 듣고 기록하는 이들이 평화박물관을 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평화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6월 29일, 필드워크팀은 중귀련의 활동을 만나고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드워크 팀(미화, 노랭, 사이다, 이응, 복순, 아정, 슬기)과 김미례 감독을 맞아 준 이들은 중귀련 대표 오기노 후지오, 사무국장 세리자와 노부, 활동가 호소까와 기요타즈, 활동가 요시다와 미치코, 활동가 미야모토 나오코입니다. 오기노 후지오는 일본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로 은퇴 이후 중귀련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치안유지법 관련한 책을 쓰고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총과 칼 뿐만 아니라 치안유지법과 같은 제도로서 수많은 인권유린을 했음을 이야기하고 한국에도 이와 관련한 자료가 많이 남아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8월에는 치안유지법 100년을 맞아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중귀련 구성원은 대부분 70-80대로 그들 중 몇몇은 평화박물관 인근에 거주하며 활동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사진자료를 통해 중귀련 활동을 만나고,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을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우리는 참전군인 구술활동을 엮은 책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2025, 알록출판사)을 선물로 건넸습니다. 중귀련 활동가와 만난 자리에서 증언을 듣는다는 것과 국가가 선취한 성찰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증언자들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의 활동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질문에 이런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Q. 증언자가 다 돌아가신 상황에서, 증언과 관련한 활동은 어떻게 전개하는지 궁금하다.


A. 증언이라는 것은 말이 아니라도 다른 형태로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직접 육성으로 들어야만 증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찾아야 하는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면 타다남은 자료로 만든 자료집 같은 것이 있다. 이를 읽지 않는 것은 증언을 듣지 않는 것이다. 증언을 한 사람 뿐만 아니라 들은 자들도 죽고 없다. 그러면 그 증언들이 사라지는가?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기에, 증언을 듣는다는 것에 국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1993년 소련 개혁개방 시 소련의 공문서 기록들 볼 수 있었다. 그때 관동 헌병대 관련 자료들을 많이 가져올 수 있었다. 이후 소련과 일본 관계 나빠져서 다시 자료를 볼 수 없게 되었다. 2006년 중국에서도 일본과의 관계가 좋을 때 문을 열어주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볼 수 있었다. 이후에는 관계가 나빠져서 또 안 되고... 증언을 듣는 일은 젊은 여러분이 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다. 

아카이브평화기억-중귀련 교류회 녹취록 중에서(2025.6.29.)



이응

중귀련에 갔을 때 청자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중귀련에서 처음 자신의 가해 사실을 증언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 돌아가셨잖아요. 그리고 증언을 육성으로 들은 사람들도 나이가 엄청 많고요. ‘기억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듣는다’는 게 육성으로 말해진 것들만 듣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썼던 진술, 글들을 통해 듣기가 이루어질 수 있구나 느꼈어요. 


슬기

전쟁범죄에 대한 증언을 통해, 전쟁이 수행되고 폭력이 자행된 구조를 드러내고, 이를 지금과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는 병사들의 전쟁 경험을 듣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또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면서,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대로 듣고, 파악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 말하지 않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자료로 가져오고, 함께 꼼꼼하게 보고, 구체적인 논의를 만들어내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야, 군인들의 전쟁 경험을 말하고 듣는다는 것이 평화를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50년 총괄행사

1974년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폭파 50년을 맞아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활동가와 그들을 지원하는 이들이 함께하는 행사에 참여했다. (2025년 6월 28일)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50주년 총괄행사에서 아카이브평화기억 필드워크팀(2025.6.28.)


미화

우리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행사를 잠깐 보고 온 것이지만 그 활동은 50년 축적된 것이잖아요. 가해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직면하는 과정을 50년 동안 이어온 그들의 활동 속에서,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어떤 방향을 만들어 갈 수 있겠는가?’ 고민이 들었어요. 앞으로의 과제로 길게 남겨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슬기

20대 때 한 행동을 50년간 곱씹으며 마주하고, 그 의미와 한계를 논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무조건 잘못했다, 실패였다가 아니고, 그렇다고 한계와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닌 방식으로 고민과 성찰이 가능했던 것은 고립되지 않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관계를 잘 맺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감옥에 갇힌 이들과 바깥에서 어떻게든 이들과 소통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함께 나이 들어가며 생각을 형성해왔고, 그 시간들 속에서 확장된 논의가 가지는 힘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지금까지도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아정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활동은 증귀련의 활동과는 다르다고 느껴졌어요. 단체의 흔들리는 고민들을 계속해서 공론장과 소식지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운동을 해왔더라고요. 운동이 언제나 자랑거리일 수 없는, 성찰하며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되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 WAM (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이름, 얼굴, 피해 체험의 증언을 전시하는 공간, 공개에 동의해 준 179여명(2017년 8월 현재)의 여성들에 대한 상설 전시를 하고 있다. 홈페이지 https://wam-peace.org/

WAM 활동가와 아카이브평화기억 필드워크 멤버가 함께(2025년 6월 28일) 


🪖 쇼케이칸(상이군인 박물관)탐방 

다친 병사들의 물건을 통해 전쟁의 고통과 비극을 전시하는 상이군인박물관 


미화

박물관이 신기한 것 중의 하나는 전쟁에 대해 해석하지 않고 물건을 통해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우린 병사들의 몸과 전쟁의 전후를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에서 반전의 메시지를 읽고 왔지만,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정부 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하니 전시를 구성한 의미에 대해 더 궁금증이 생겼어요. 역사에 대한 해석 없이 하는 전시를 우리는 문제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전시관을 만들며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기대한 걸까요?


노랭

상이군인박물관은 증언 대신 물건으로 말을 하고 있었어요. 전쟁 시기에 다치거나 장애를 입은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본인이 필요한 것을 마련해서 생활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전시를 보고 나니 그 이후에 참전군인들이 어떤 인정 투쟁을 했는지 궁금해졌고, 복지 정책이 이후에 어떻게 이어졌는지 찾아봐야겠다 싶었어요. 전쟁이 끝나고 서울역에 의족 가게들이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한국에서의 얘기들도 궁금해졌어요. 또한 상이군인박물관은 몸의 경험을 사물로 보여주면서 현재로 이야기를 자꾸 끌어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이다

신선한 전시였어요. 다만 전장에서의 이야기들이 빠져있는 느낌이 좀 많이 들기도 했어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다치고 장애를 입게 됐는지 상황과 맥락이 없는 상태에서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을 갖게 됐어요. 근데 되게 중요하게 전사자를 영웅시하는 서사가 아니었고, 장애를 입은 피해자성을 강조한 전시는 아니어서 잘 기록된 거라고 생각은 들어요. 사실은 각자의 유형이 있잖아요. 베트남 전쟁 이후에 ptsd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이 기록관이 최근에 업데이트된 기록관이라면 저는 정신병적인 이유도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 야스쿠니신사와 박물관(유슈칸)탐방 


슬기

전쟁에 대해 이렇게 전시하는 것은 최악이구나 싶으면서도, 정도의 차이 또는 받아들이는 감각의 차이일 뿐, 다른 전쟁기념관도 어쩌면 비슷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일본이 서구로부터 침략당한 국가로서의 위치성을 확보하고, 그래서 ‘우리’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고 용감하게 싸웠고, 일본 덕분에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을 하였으며, 전후 전장이었던 곳에서 전쟁 유물을 수습하고 그 지역의 발전을 지원하는 일본의 모습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서사의 흐름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거든요. 전쟁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은 전혀 없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예우하겠다는 것이 국가들이 전쟁에 대해 보이는 공통적인 태도이기에,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국가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습니다.


사이다

야스쿠니 전시에서는 전쟁을 통해서 국가를 성립해 가는 과정이 보였어요. 안보를 위해 합법적인 폭력을 자행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이해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구조의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들을 계속적으로 치밀하게 분석을 하면서 전쟁 이후에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상황들까지도 계속 파고들고 운동으로 만들어가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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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평화 운동의 역사와 전쟁 기억의 현장을 둘러보며 우리는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번 일본 필드워크에서는 중국귀환자연락회(이하 중귀련)의 활동에 주목하게 되었는데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일본인 전범들은 포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온 그들은 중귀련을 만들어 죄를 기록하고 성찰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지금은 이미 대부분의 증언자가 세상을 떠났고, 그들이 남긴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이어지고 있는 운동을 만났습니다. 병사들이 남긴 말들이 어떻게 평화운동의 씨앗이 되고, 확장될 수 있을지 여러가지 고민이 생겨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과 그들을 지원하는 '지원련'이 지나온 50년을 보며 무장투쟁을 하는 이들 곁에서 함께 성찰해나갔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전군인을 만나는 우리도, 국가, 전쟁, 폭력의 구조를 묻는 동시에 화자와 청자가 함께 질 수 있는 책임이란 어떤 것인지 고민해나가고 있습니다. 3박 4일 동안의 필드워크는 참여한 모두에게 각자의 질문을 길어올린 의미있는 시간으로 남았습니다. 

중귀련과 아카이브평화기억 교류 후 기념념촬영(202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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