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907 강남의 아스팔트 도로를 걷고 난 이후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가 노랭입니다. 지난 907 기후행진에 참여하며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저는 ‘호레이’(브라질리언 퍼커션 팀)로 악기를 들고 걸으며 응원을 참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있자니 오히려 생각 없이 땅에 딛어진 몸에만 집중하며 걷게 되는 행진이었습니다. 행진 이후 ‘생각 없음’ 상태를 들여다 보니 나의 ‘기후정의’라는 단어가 텅 비어있었습니다.


전쟁은 언제나 돈이 되는 사업입니다. 베트남전쟁 때도 그러했고, 현재의 수많은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참전군인들이 이야기하는 과거의 전쟁과 현재의 전쟁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쟁 반대와 기후정의를 외칠 때, 기업들은 친환경 탄약과 탄소를 내뿜지 않는 장갑차를 세상에 내놓은 것 처럼 말입니다. 전쟁의 모습과 사용되는 무기는 계속 변화합니다. 방위산업은 무엇이 돈이 되는지를 잘 알고 친환경이라는 이름 아래 살인 무기들을 만들었습니다. 그 친환경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듣고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간들을 마주할 때면,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감각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러한 사회에 속한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아직은’ 안전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가해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은지, 안온함을 느끼며 국가 권력에 일조하는 것은 아닌지.


이번 907에는 보이콧이 있었습니다. 907기후행진은 국가에게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요구에는 비인간동물의 삶이 없으며 국가주의 속 ‘국민’으로서의 외침 뿐이라는 비판이었습니다. 우리의 외침으로 비건인구는 증가했고 동물복지 또한 증가했지만 이는 모순되게도 고기 소비의 증가를 불러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907 행진을 가로막으며 동물 착취 시스템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자리에서가 아니라, 지워진자리에 함께하고, 함께 지워짐으로 말해야(출처: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지워지는 존재들의 동물되기)’함을 외쳤습니다. 기후정의가 가담하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착취 구조는 저에게 친환경 탄약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행진에 참여했다는 무거운 마음과 그린워싱에 대한 질문은 마음 한켠에 자리잡겠지요. 전쟁터의 생명들과 착취되는 비인간동물의 삶이 소비되지 않게끔, 지워지지 않게끔 작게나마 오늘도 움직여 봐야겠습니다.


노랭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