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남해 몽돌 해변 바닷가에 서서 파도가 밀려와 다시 쓸려 내려갈 때마다 돌들이 저마다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전시기획단 '눈과 발 사이'의 다음 목적지는 남해다. 서울에서는 먼 거리니 만큼 남해 방문은 1박 2일로 이루어졌다. 도착 후 일정을 하기 전날 밤, 우리는 숙소 앞에 있는 몽돌 해변을 걸었다. 바닷가에 서서 파도가 밀려와 다시 쓸려 내려갈 때마다 돌들이 저마다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영롱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거칠기도 하고, 거칠다고만 하기에는 신비한 면이 있는 소리였다.
어떤 사람들에게 전쟁은 파도처럼 밀려왔고, 그들은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고 서로 부딪히며 인생을 살았다. 그중 남해에서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남해군은 2020년 말부터 참전군인 단체와 '흔적 남기기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으로 남해군에 거주하는 400여 명의 참전자들(이중 360명이 남해 출신)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수집했으며, 물품을 기증 받아 2025년 12월에 6.25•월남전흔적전시관(이하 '흔적전시관')을 열었다.
전쟁을 겪은 이들의 '흔적'을 전시하는 곳, 남해 6.25•월남전흔적전시관
전시관을 구성하는 것은 참전군인 개개인의 이야기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벽면에 물품을 기증한 참전군인의 이름이 길게 전시되어 있고, 각각의 이야기는 키오스크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기증품들로 간략히 전시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면, 본 전시가 시작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사진, 물품,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네모난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는 각양각색이다. 본인이 참가한 전투와 그 전투에서 한 역할을 적어 놓았는가 하면, 전쟁에서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한 동료에 관한 기억을 전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맞닥뜨린 베트남 사람들의 인상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편에 마련된 헤드폰을 통해 실제 육성으로도 들을 수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으나 고령에 병 중인 상태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을 적어 놓은 칸도 있다.

▲흔적전시관 전시 공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사진, 물품,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시는 사진과 기증품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쟁터에서 군복을 입고 찍은 청년 시절의 사진과 인터뷰 자리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노년의 사진이 나란히 있어 눈길을 끈다. 수십 년 지난 후에도 버리지 못한 제대증, 베트남 전장에서 동료들을 담았던 카메라, 전쟁 이후에도 이어진 인연을 담은 신문 기사, 유족이 기증한 전사 통지서까지. 참전군인과 가족은 전쟁과 관련한 삶의 한 부분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선택했다. 거대한 역사나 국가 차원의 이야기보다는 그 역사를 겪고 지나온 개인들이 남긴 '흔적'이 그렇게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이곳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참전군인,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과 이웃, 미래 세대를 위해 꾸며진 공간이기도 하다. '전쟁'과 '참전'은 거대 서사가 아니라 나와 주변의 이야기로 전시관에 모인다. 죽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참전군인의 아내가 전쟁과 관련된 물건들을 기증한다. 아내는 이곳을 찾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리며 이야기 나눈다. 동네에서 자주 보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시관에서 본 이웃 아이가 그들을 떠올리며 방명록을 쓴다. 방명록의 내용도 역시 전시의 일부로 기록되어 남는다. 관람객들은 그 이름과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

▲흔적전시관 내부 참전군인과 가족은 전쟁과 관련한 삶의 한 부분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선택했다. 거대한 역사나 국가 차원의 이야기보다는 그 역사를 겪고 지나온 개인들이 남긴 '흔적'이 그렇게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방식은 어느 해 어떤 전쟁이 발발했고 당시 한국을 둘러싼 국제 관계는 어떠했으며 한국군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불가항력에 의해 전쟁이 발발했거나 대의를 위해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은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싸웠다,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서사에 빠져들면, 집단으로 이야기되는 단어 안에 수없이 많은 각각의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삶이 전쟁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흔적전시관 낡은 흑백사진 속 앳된 얼굴이나 베트남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때 가져온 귀국 박스에 적힌 군인의 이름을 보면, 그런 하나하나의 삶 어느 하나 함부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평화에 대한 공감을 방해하는 '태극기 그리기'
A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전쟁이 이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쳤구나', '전쟁이 없었다면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와 같은 연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의 마무리가 '태극기 그리기'로 끝나는 것은 평화에 대한 공감을 방해한다. '흔적'이라는 형태로 만난 개인의 이름과 삶은 다시 국가를 향해 모인다. 태극기를 그리며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작 국가야말로 젊은이들을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보냈다. 국가를 위해 언제나 젊은이들은 전쟁에 나가 총을 쏘고, 질병과 트라우마를 얻고,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해야 하는가?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누구인가? 국가의 책임에 관해 전쟁 이후 우리는 제대로 성찰한 적이 있는가? 역사 교육과 전쟁을 기념하는 곳들을 통해 국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은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 각자가 전쟁과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전시관에서 만난 참전군인의 이야기처럼, 전쟁은 옆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평생 함께 살기로 약속한 사람도, 내일 당연히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갑자기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적'이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들은 평생 자신을 괴롭힐 질병과 트라우마를 얻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계획하거나 꿈꾸던 것들을, 다른 삶의 방식을 더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참전군인은 누구보다도 직접 경험한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겪은 일을 보라고,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미래 세대에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애국에 대한 강조로 끝내는 것보다 전시의 방향을 이어 평화에 관한 바람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흔적'전시관은 생생한 평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25월남전흔적전시관 전시관 한쪽 벽에는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문구가 붙여있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전시관 한쪽 벽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안타깝게도 참전군인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들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을 기록하고 남길 것인가? 참전군인의 기억과 경험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나? 누구도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누구도 다시는 전쟁으로 내몰리지 않는 미래가 아닐까.
전쟁을 개인의 '흔적'으로 이야기하는 이곳은 '눈과 발 사이' 전시기획단에 무척 반가운 장소였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만남의 기록과 기록자의 단상을 단편적으로 나열해 놓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다층적 관점과 함께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정리가 잘 되지 않은 듯하다. 이는 흔적전시관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서 가장 남는 것은 참전군인의 마음이다. 전쟁을 맞닥뜨리고 놀란 젊은이의 마음, 전쟁에 다시 끌려갈까 봐 늙어서도 제대 증명서를 버리지 못한 노인의 마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죽은 전우를 떠올리는 구술자의 마음, 듣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서 어떻게든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기록자의 마음, 상당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참전군인 사이를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전하는 또 다른 참전군인 도슨트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경제 발전의 초석'이라는 말로는, 그들의 삶을 모두 이야기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러가기
참전군인 이야기는 태극기로 끝맺을 수밖에 없을까 - 전쟁 '영웅담'도 '무용담'도 아닌 '흔적'을 따라 찾아간 남해 6.25월남전흔적전시관 (26.09.03)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남해 몽돌 해변 바닷가에 서서 파도가 밀려와 다시 쓸려 내려갈 때마다 돌들이 저마다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전시기획단 '눈과 발 사이'의 다음 목적지는 남해다. 서울에서는 먼 거리니 만큼 남해 방문은 1박 2일로 이루어졌다. 도착 후 일정을 하기 전날 밤, 우리는 숙소 앞에 있는 몽돌 해변을 걸었다. 바닷가에 서서 파도가 밀려와 다시 쓸려 내려갈 때마다 돌들이 저마다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었다. 영롱하다고 표현하기에는 거칠기도 하고, 거칠다고만 하기에는 신비한 면이 있는 소리였다.
어떤 사람들에게 전쟁은 파도처럼 밀려왔고, 그들은 거대한 흐름에 휩쓸리고 서로 부딪히며 인생을 살았다. 그중 남해에서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다. 남해군은 2020년 말부터 참전군인 단체와 '흔적 남기기 사업'을 추진했다. 이 사업으로 남해군에 거주하는 400여 명의 참전자들(이중 360명이 남해 출신)을 찾아 이야기를 듣고 수집했으며, 물품을 기증 받아 2025년 12월에 6.25•월남전흔적전시관(이하 '흔적전시관')을 열었다.
전쟁을 겪은 이들의 '흔적'을 전시하는 곳, 남해 6.25•월남전흔적전시관
전시관을 구성하는 것은 참전군인 개개인의 이야기이다. 내부로 들어서면 벽면에 물품을 기증한 참전군인의 이름이 길게 전시되어 있고, 각각의 이야기는 키오스크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기증품들로 간략히 전시되어 있는 공간을 지나면, 본 전시가 시작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사진, 물품,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네모난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야기는 각양각색이다. 본인이 참가한 전투와 그 전투에서 한 역할을 적어 놓았는가 하면, 전쟁에서 함께 살아 돌아오지 못한 동료에 관한 기억을 전하기도 하고, 전쟁에서 맞닥뜨린 베트남 사람들의 인상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편에 마련된 헤드폰을 통해 실제 육성으로도 들을 수 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으나 고령에 병 중인 상태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답답했던 마음을 적어 놓은 칸도 있다.
▲흔적전시관 전시 공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 사진, 물품,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시는 사진과 기증품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쟁터에서 군복을 입고 찍은 청년 시절의 사진과 인터뷰 자리에서 찍은 것으로 보이는 노년의 사진이 나란히 있어 눈길을 끈다. 수십 년 지난 후에도 버리지 못한 제대증, 베트남 전장에서 동료들을 담았던 카메라, 전쟁 이후에도 이어진 인연을 담은 신문 기사, 유족이 기증한 전사 통지서까지. 참전군인과 가족은 전쟁과 관련한 삶의 한 부분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선택했다. 거대한 역사나 국가 차원의 이야기보다는 그 역사를 겪고 지나온 개인들이 남긴 '흔적'이 그렇게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이곳은 가까운 곳에 살았던 참전군인,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과 이웃, 미래 세대를 위해 꾸며진 공간이기도 하다. '전쟁'과 '참전'은 거대 서사가 아니라 나와 주변의 이야기로 전시관에 모인다. 죽은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던 참전군인의 아내가 전쟁과 관련된 물건들을 기증한다. 아내는 이곳을 찾아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리며 이야기 나눈다. 동네에서 자주 보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시관에서 본 이웃 아이가 그들을 떠올리며 방명록을 쓴다. 방명록의 내용도 역시 전시의 일부로 기록되어 남는다. 관람객들은 그 이름과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눈다.
▲흔적전시관 내부 참전군인과 가족은 전쟁과 관련한 삶의 한 부분을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선택했다. 거대한 역사나 국가 차원의 이야기보다는 그 역사를 겪고 지나온 개인들이 남긴 '흔적'이 그렇게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전쟁을 기억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익숙한 방식은 어느 해 어떤 전쟁이 발발했고 당시 한국을 둘러싼 국제 관계는 어떠했으며 한국군이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식의 이야기이다. 서울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이 대표적이다. '불가항력에 의해 전쟁이 발발했거나 대의를 위해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은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용맹하게 싸웠다,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서사에 빠져들면, 집단으로 이야기되는 단어 안에 수없이 많은 각각의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삶이 전쟁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흔적전시관 낡은 흑백사진 속 앳된 얼굴이나 베트남에서 고국으로 돌아올 때 가져온 귀국 박스에 적힌 군인의 이름을 보면, 그런 하나하나의 삶 어느 하나 함부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평화에 대한 공감을 방해하는 '태극기 그리기'
참전군인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는 것은 '전쟁이 이 많은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쳤구나', '전쟁이 없었다면 이들의 삶은 어땠을까?'와 같은 연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의 마무리가 '태극기 그리기'로 끝나는 것은 평화에 대한 공감을 방해한다. '흔적'이라는 형태로 만난 개인의 이름과 삶은 다시 국가를 향해 모인다. 태극기를 그리며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작 국가야말로 젊은이들을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보냈다. 국가를 위해 언제나 젊은이들은 전쟁에 나가 총을 쏘고, 질병과 트라우마를 얻고, 인생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험을 해야 하는가?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것은 누구인가? 국가의 책임에 관해 전쟁 이후 우리는 제대로 성찰한 적이 있는가? 역사 교육과 전쟁을 기념하는 곳들을 통해 국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전쟁은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험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들 각자가 전쟁과 평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전시관에서 만난 참전군인의 이야기처럼, 전쟁은 옆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평생 함께 살기로 약속한 사람도, 내일 당연히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갑자기 영영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적'이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들은 평생 자신을 괴롭힐 질병과 트라우마를 얻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계획하거나 꿈꾸던 것들을, 다른 삶의 방식을 더 시도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참전군인은 누구보다도 직접 경험한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겪은 일을 보라고, 전쟁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미래 세대에 말할 수 있는 존재이다. 애국에 대한 강조로 끝내는 것보다 전시의 방향을 이어 평화에 관한 바람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흔적'전시관은 생생한 평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25월남전흔적전시관 전시관 한쪽 벽에는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는 문구가 붙여있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기억은 희미해지지만 기록은 영원하다.'
전시관 한쪽 벽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안타깝게도 참전군인들은 점점 사라지고 그들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있다. 무엇을 기록하고 남길 것인가? 참전군인의 기억과 경험을 들으면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자 하나? 누구도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누구도 다시는 전쟁으로 내몰리지 않는 미래가 아닐까.
전쟁을 개인의 '흔적'으로 이야기하는 이곳은 '눈과 발 사이' 전시기획단에 무척 반가운 장소였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다. 만남의 기록과 기록자의 단상을 단편적으로 나열해 놓았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다층적 관점과 함께 전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정리가 잘 되지 않은 듯하다. 이는 흔적전시관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전시관을 돌아보고 나서 가장 남는 것은 참전군인의 마음이다. 전쟁을 맞닥뜨리고 놀란 젊은이의 마음, 전쟁에 다시 끌려갈까 봐 늙어서도 제대 증명서를 버리지 못한 노인의 마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죽은 전우를 떠올리는 구술자의 마음, 듣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서 어떻게든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던 기록자의 마음, 상당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참전군인 사이를 걸어 다니며 이야기를 전하는 또 다른 참전군인 도슨트의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경제 발전의 초석'이라는 말로는, 그들의 삶을 모두 이야기할 수 없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러가기
참전군인 이야기는 태극기로 끝맺을 수밖에 없을까 - 전쟁 '영웅담'도 '무용담'도 아닌 '흔적'을 따라 찾아간 남해 6.25월남전흔적전시관 (2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