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교육[탐방을 마치며] '정전 70년, 평화로 걷는 용산',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

정전 70년이 되는 올해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우리가 자리한 이곳 용산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용산마을교육연구회’와 평화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총 5회 열린 탐방프로그램은 지난 6월에 시작해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 한국전쟁실, 용산역에서 삼각지, 해방촌을 걸으며 평화를 만났습니다. 
11월에는 마지막 탐방길로 용산미군기지 반환 부지인 장교숙소 5단지를 함께 걸었습니다. [편집자주] 


용산 미군기지 동남쪽 부지로 2020년에 개방된 미군장교숙소 5단지.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왼쪽은 입구 전경이고 오른쪽은 공원내 전시관에 전체 미군기지를 축소한 모형이다. 용산기지 내 장교숙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쨍하게 추운 겨울 초입, 다섯번째 탐방길에 올랐습니다. 길 중간중간 물 고인 자리에 얼음이 살짝 얼었습니다. 추운 주말 아침이지만 단단히 차려입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경의중앙선 서빙고역에서 5분 거리에 오늘의 탐방 장소가 있습니다. 이번 탐방길은 용산미군기지 장교숙소 5단지로 2020년 '용산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개방된 곳입니다. 

이 부지는 용산미군기지 둔지산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얼음을 저장하던 서빙고가 인근에 있어 '서빙고'로 불렸던 곳입니다. 지금은 용산기지로 불리지만 일제 패망 직후 용산에 진주한 미군들은 지역명을 따 이곳을 ‘캠프 서빙고(Camp Sobinggo)’로 불렀고, 휴전협정 직후 미 8군이 용산기지로 이전하면서 다시 ‘용산기지( YongsanGarrison)’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교숙소 부지에 들어서면 용산기지 일대 옛 사진과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NARA에 보관된 것으로 '한강에서 얼음을 채빙하는 모습(1947년)'이다. 


사진은 장교숙소 5단지 내에 있는 '용산의 담장' 상징존과 전시공간 내부이다. 


용산에 외국군이 주둔한 역사는 미군부대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116년만에 돌아온 용산공원'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강이 인접해있고 신의주까지 연결되는 기차역이 자리함으로써 교통과 물류가 편리한 용산은 외국군 주둔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13세기 고려말에는 몽고군이 용산을 병참기지로 사용하였고, 16세기말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18세기말 청일전쟁 시에는 일본군이 주둔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을사늑약 체결 직후 일본군이 용산군용지 약 119만평을 점유하고 기지건설에 착수하며 본격적인 외국군대 주둔지로 자리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의 기지 건설은 두 차례 대대적으로 이루어집니다. 1차 병영공사(1906~1913)는 조선군사령부, 사단사령부, 보병 기병 야전포병 부대와 병영, 병기지창, 위수병원, 위수감옥 등 필수 시설을 갖추는 단계였습니다. 1910년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한국주차군의 명칭이 조선주차군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1916년에 2년마다 일본에 있는 부대와 교대하던 제도를 정비해 상시 주둔하는 부대를 새로이 배치하고 병력을 늘렸습니다. 이에 기지를 확장하는 2차 병영 공사(1915~1922)를 실시하여 숙소와 연병장 등을 추가 건설하게 됩니다. 이렇게 확장된 용산기지는 용산구의 1/10, 여의도에 버금가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제는 1, 2차 병영공사를 하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사라진 마을 '둔지미 '가 있습니다. 


둔지미 주민들은 두 차례 강제 이주했습니다. 1차 병영 공사가 진행 중이던 1908년 2월에서 5월 사이 둔지미 마을 수백여 호가 강제 이주 대상으로 지정됐습니다. 주민들은 근방의 학부(學部) 소관 토지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용산기지를 기존 면적의 두 배 이상으로 확장하는 2차 병영공사가 진행됐고, 주민들이 이전한 곳이 다시 군용지에 포함되면서 둔지미 사람들은 1916년 언덕배기 보광동 일대로 밀려납니다. 1905년 8월 일본은 군용지로 계획한 용산 내 300만 평 대지에 보상금 20만 원을 책정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이전을 통보했고, 둔지미도 이전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주민들의 보상금 수령 거부와 이전 유예 요청은 이렇다 할 효과가 없었고, 일본의 군사기지화 정책에 따라 둔지미 마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이렇듯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며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 또한 아픔을 겪게 됩니다. 용산의 사라진 마을, 둔지미 이야기는 과거 철도병원 자리에 들어선 용산역사박물관에서 자세히 만날 수 있습니다.


군사기지에 터전을 빼앗긴 둔지미 사람들 (사진: 용산역사박물관)


그후로 100년 넘는 시간동안 그곳은 공식적으로 남의 나라 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난 현재, 미군기지 반환 문제는 그 절차와 내용, 공원화와 시민개방을 사이에 두고 끊임없는 사회적 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기지 반환에 대해 공여된 토지 일부만 반환되어 반쪽짜리라는 바판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랜동안 외국군대가 주둔해 있던 곳이니 만큼 기지오염에 대한 환경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데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먼저 반환된 용산미군기지 내에서 유류·중금속이 기준치의 수십배 이상 검출되는 등 심각한 오염 문제가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환경조사보고서, 위해성평가보고서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뉴스타파는 반환된 미군기지 환경조사 및 위해성 평가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2005년 반환 이후 정화까지 완료된 상태에서 다시 토양에 매립된 각종 폐기물이 발견돼 부실 정화 논란에 휩싸였던 춘천 캠프 페이지, 심각한 다이옥신 오염이 발견된 부평 미군기지의 위해성 평가보고서와 2020년 반환된 12개 기지 및 2022년 반환된 5개 기지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 보고서를 참조해보면 헬기장 부지였던 곳도 토양오염이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장교숙소 5단지는 주거지역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오염이 덜 된 지역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곳이 과거 헬기장 부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또한 100년 넘게 외국 부대가 이용했던 곳이니만큼) 최근 용도와 별개로 전반적으로 기지오염에 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장교숙소 5단지 Black Hawk Picnic Area는 과거 헬기이착륙장이었던 곳이다. 


현재 정부는 반환된 미군기지를 국가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지오염문제는 외면한 채 용산공원 국민속으로라는 슬로건 아래 친환경, 생태녹지축, 녹색동력이라는 표현으로 공원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이곳을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100년 넘게 외국땅으로 존재했던 철조망 너머의 땅, 용산미군기지는 외국군 주둔의 역사와 전쟁, 식민지배 등 격동하는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 배울 수 있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반환된 미군기지를 무조건 허물어 생태공원화하는 것보다 남아있는 것을 잘 기록하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라진 둔지미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기지 이전의 역사에서부터 이후까지 제대로 아카이빙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역사를 만나고 평화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미군기지를 비롯한 외국군 주둔의 역사를 바라보고 더불어 반환 절차와 (오염)문제 등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해 나가야 합니다. 반환 미군기지를 어떤 곳으로 만들어나가야하는지 국민과 소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성급한 '녹지조성'과 '공원화' 계획은 결국 '평화의 기회'를 놓치고 '100년의 역사'를 지우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정전 70년을 맞아 지난 6월부터 매달 평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용산전쟁기념관 한국전쟁실과 해외파병실, 용산역에서 삼각지까지. 해방촌과 용산기지 미군장교숙소 5단지 모두 다섯 차례 길을 나섰습니다. 용산을 걸으며 현재로 이어진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마주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용산은 단지 하나의 지역이 아니었습니다. 용산에는 20세기 한국사회가 겪은 모든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전 70년 평화로 걷는 용산'은 조선시대에서 대한제국, 식민지배와 해방, 전쟁과 70년 동안의 분단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100년의 시간 여행이었고 앞으로 100년을 생각하게 하는 여행이었습니다. '평화로 걷는 용산', 길 위의 시간들은 우리가 서있는 자리를 온전히 마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용산기지 개방부지 장교숙소5단지 탐방길에 함께한 참가자들 



[참고] 

용산공원 & 전시공간  https://www.park.go.kr/front/index.do

용산역사박물관 https://museum.yongsan.go.kr/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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