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베트남전쟁 진실 규명의 필요성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 활동을 중심으로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

이 글은 2025년 11월 25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토론회’ 토론문으로 쓴 글입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활동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종합활동보고서(이하 ‘보고서’) 총 14권을 토대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기록을 검토하였다. 위원회에서 조사한 군사망사고 조사의 범위는 “1948년 11월 30일(「국군조직법」제정·시행일)부터 법 시행일(2018년 9월 14일) 전일까지 발생한 사고 또는 사건”으로서 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결정하여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총 1,787건에 대한 진정 사건과 69건에 대한 직권조사 사건을 합하여 총 1,856건에 대한 조사 활동을 하였다. 조사 결과 1,195건의 사건에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고, 총 1,058건에 대해 국방부 장관에게 사망 구분 재심사를 요청하였다.
1970~1980년대 사건 수 가장 많아
육군 사건 82%, 병사가 대부분, 그다음은 하사
사망 유형별로는 자해 사망이 53%
진정사건 총 1,787건에 대한 연도별 분포를 보면 1949년 이전 사건은 3건, 1950년대 221건, 1960년대 269건, 1970년대 335건, 1980년대 364건, 1990년대 251건, 2000년대 171건, 2010년 이후 136건, 기타 26건, 미상 11건이다. 참고로 베트남전쟁 한국군 참전 시기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사건에 해당된다. 소속별로는 육군이 1,472건으로 가장 많으며, 해군 164건, 공군 70건, 전환복무자 65건, 기타 5건, 미상 11건으로 육군 사건이 전체 82%를 차지하고 있다. 계급별로는 훈련병 포함 이병에서 병장까지 일반 병사 계급과 관련한 사망 사건이 총 1,362건으로 전체 진정 사건의 76%에 달한다. 병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계급은 하사 사망 사건으로 총 177건이다.
위원회 종합활동보고서 1권 135쪽에는 조사 기간에 해당하는 시기에 발생한 군사망 사고에 대한 추이가 국방부 자료로 정리되어 있다.(아래 표 참조) 보고서는 이 통계를 인용하며 오차 없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군 사망 사고의 추이를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한국군 파병 시기를 중심으로 해당 표를 살펴보면 전투부대 파병이 시작된 1965년 9월 이후부터 철군 시기인 1973년까지 다른 해에 비해 사망자가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파병 초기인 1967년 사망자 숫자가 3,165명으로 최대치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한국군 참전 현황은 1966년 45,065명, 1967년 48,839명, 1968년 49,869명, 1969년 49,755명, 1970년 48,512명, 1971년 45,663명, 1972년 37,438명으로 매년 최대 5만여 명의 병력이 베트남에 주둔하였다. (출처: <파월한국군전사 10> 528쪽)

자해 사망과 역사적 사건의 연관성 언급
25개의 사건 중 ‘베트남전쟁 파병’ 포함
근무 여건 악화가 자해 사망으로 이어진 것
사망 유형별로 진정 사건 중 자해 사망이 943건으로 전체의 53%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고사가 314건, 병사가 325건을 차지하고 있다. 자해 사망에 대하여 위원회는 각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 근무 여건 악화의 배경으로 작용해 병사의 자해 사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해당하는 25개의 사건을 적시하고 있는데 관련해서 언급된 사건은 6·25전쟁(1950~1953년), 후생사업(1950년대), 화폐개혁(1962년), 베트남전쟁 파병(1964~1973년), 김신조 사건(1968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년), 5·18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녹화사업(1982~1984년),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1983년) 등이다. 이러한 사건이 군사망사고 발생의 배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는 자해 사망과 관련하여 전쟁, 잔학 행위에 대한 경험 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하고 있음을 유의미하게 살펴보고 있다. 6.25전쟁 참전과 관련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자해 사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사건은 진정 제610호 이병장 사건, 진정 제704호 김이등중사 사건, 진정 제851호 김중위 사건, 진정 제1070호 유소령 사건이다.
베트남전쟁 파병 군인 사건 다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의 연관성 다뤄
베트남전쟁 파병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사망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되는 사건으로 진정 제177호 이상병 사건, 진정 제201호 안하사 사건, 진정 제690호 정병장 사건, 진정 제732호 허상병 사건, 진정 제1570호 서병장 사건, 진정 제1613호 이상사 사건, 진정 제1728호 이병장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진정 제201호 안광철 하사 사건은 지난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 토론회(2025.6.19.) 두 번째 발제 ‘베트남전 파병 군인의 전쟁 동원과 귀환 이후,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에서 언급한 바 있다. 위 해당 사건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사망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되는 사건으로 ■ 진정 제177호 이상병 사건(1943년생, 진정인 망인의 딸)에서 ‘맹호부대’에 소속되어 1968. 4. 12.부터 1969. 6. 8.까지 베트남에 파견된 망인은 맹호 11호·12호 작전, 혜산진 3호·5호·69-6호·69-7호·69-8호 작전, 장비 69-9 전투 등에 참전하면서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의 참혹한 죽음을 다수 경험했으며 귀국 후 부대원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홀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다가 전역을 6일 앞둔 1970. 9. 8. 총기로 사망하였고 이는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잠정적으로 자해사망 생각과 의도, 동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는 심리자문 전문가의 자문소견 보고 ■ 진정 제201호 안하사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동생)의 망인은 ‘청룡부대’ 소속으로 1968. 9. 10.부터 1969. 8. 13.까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호이안에 주로 주둔하면서 가장 치열한 전투로 평가받는 고노이 섬 전투를 비롯한 매복 작전·전투에 다수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았으나 귀국 후 1971. 11. 16. 수류탄을 터뜨려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항상 우울해하고 유격 훈련장에서 군무이탈을 하는 등 파병 전과 매우 달라진 모습을 보인 점에 대해 심리자문을 담당한 전문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중 하나인 ‘해리’ 증상과 일치하고 군무이탈은 과거 공포 경험에 대한 회피 반응으로 파악된다고 분석 ■ 진정 제690호 정병장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형)에서 망인은 1968. 3. 8.부터 1969. 3.말경까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군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으며 귀국 후 전역을 앞두고 같은 해 1969. 5. 19. 음독하여 사망. (망인은 1967. 3. 21. 해병대 사령부 보통군법회의에서 1년 1개월 26일간 군무 이탈한 사실로 징역 단기 6월 장기 8월 선고를 받았고, 징역 단기 3월 장기 4월로 감형되었음. 보고서 6권 902쪽 각주 1번) ■ 진정 제732호 허상병 사건(1942년생, 진정인 망인의 조카)은 1967. 12. 15.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각종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군수지원사령부 근무중대에서 복무하던 중 후방 지원병도 전투 관련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전시 상황에서 절도 사건에 연루되자 1968. 4. 13. 베트남 현지 부대 내 방공호에서 총기를 이용해 사망. ■ 진정 제1570호 서병장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동생)에서 1969. 11. 12.부터 1970. 12. 1.까지의 파병 기간 망인이 소속된 건설지원단은 전투부대가 아님에도 베트남군에 의한 준공물 파괴, 폭발물 매설, 공사장 및 차량 습격, 인접 부대에 대한 산발적 포격, 기동로 상의 부비트랩 설치 등 공격의 대상이었고 망인은 귀국 후에도 훈련을 힘들어하는 등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 1971. 8. 16. 총기를 이용해 사망 ■ 진정 제1613호 이상사 사건(1943년생, 진정인 망인의 부인)의 망인은 맹호부대 소속으로 1966. 6. 18.~1967. 6. 27. 1차 파병 및 1967. 10. 12.~1968. 11. 15. 2차 파병 중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에 참전하여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귀국 후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가족들과 멀어졌으며 한밤중 악몽에 시달리다 비명을 지르고 술에 취하면 총을 쏘는 자세 또는 구르기 자세를 취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다가 1973. 9. 15.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 (88년, 2001년 재조사,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사건 2009년 10월 21일 취하 종결) 진상규명, 국방장관에게 순직으로 재심 청구 ■ 진정 제1728호 이병장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조카)에서 1968. 10. 7. 베트남 파병 후 이동외과병원 외래과 환자계에 배치되어 최전방 1차 응급치료 지원업무를 수행하던 망인은 작전 중 밀려드는 부상병들로 인한 수면 부족, 참혹한 시신과 외상환자를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정신적 충격, 간혹 발생하는 적군의 박격포탄 투하 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와중에 취사장 관리 장교의 괴롭힘까지 더해지자 1970. 9. 5. 막사 앞에서 총기를 이용해 사망 출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5년 종합활동보고서 |
병사 사망이 다수인 군사망사건은 직계 존비속이 진정 제기하기 어려워
진정사건 중심의 신청주의 한계 언급해
진정인과 망인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부모 399건, 자녀 183건, 형제 836건, 친인척 221건, 배우자 83건, 부대 동료 51건 기타 14건을 차지하고 있다. 병사 계급의 사망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5-60년이 지난 사건의 경우 부모가 진정을 제기하기 어렵고 직계비속이 없을 가능성, 방계 신청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음은 한계로 지적된다. 위원회 진정사건(1,787건)의 진정인은 부모가 22%, 자녀가 10%, 배우자가 5%이며 형제자매가 47%, 친인척 12%, 기타 4%이다. 형제자매가 47%라는 점은 부모의 사망 또는 후손이 없다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정인의 연령대는 80대 6%, 70대 21%, 60대가 40%, 50대 23%, 40대 6%, 기타 4%이다. 결국 유족의 진정제기에 의하여 조사를 시작하는 방식으로는 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한 사망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적절한 예우를 하기에 부족하다. 위에 언급된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사건 진정인의 경우도 망인의 형제, 조카 등이 진정한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베트남전쟁 파병과 관련하여 일어난 사망 사건으로 직권 제24호 김상병 사건, 진정 제 1309호 임일병 사건, 진정 1451호 구병장 사건 등이 있다. 관련 사건들은 진상규명 결정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순직으로 재심 권고하였다.
■ 진정 제1309호 임일병 사건(1944년생, 진정인 망인의 조카)은 1966. 7. 18. 03:30경 취침 중 탈영하였다가 1966. 7. 21. 17:00경 경기도 ○○군 ○○강 하류에서 민간인에 의해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군 수사결과에 대해 - 파병 훈련 과정이 일반 부대에서의 훈련 과정보다는 훈련의 강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 이고 베트남전쟁 참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베트남전에 참전하면 죽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매일 10~20여 명의 병사가 탈영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망인 도 파병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전쟁 공포증을 이기지 못하고 탈영한 것으로 추정 - 또한 자해 혹은 사고에 의한 익사인지는 판단 불가 ■ 진정 제1451호 구병장 사건(1946년생, 진정인 망인의 형)은 베트남전쟁 파병 중인 1969. 10. 26. 19:00경 무단이탈하여 토착 창녀와 동침 중 잭나이프를 휘두르면서 같이 죽기를 바란다고 위협하는 것을 관계자가 만류하다 밖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약 10분 후 수류탄의 폭음과 함께 하퇴부 및 머리 일대에 파편이 튀어 전신 타박상으로 현장에서 자해사망하였다는 군 수사결과에 대해 - 귀국 하루 전날 무단이탈 및 자해사망할 만한 사정을 특정할 수 없고 자해사망이라 하 더라도 매화장보고서 기재 내용만으로 망인이 칼을 휘둘렀다는 상황이 설명되지 않 으며 자해 목적으로 수류탄을 투척하였는지 또한 목격자가 없어 사망 경위를 특정할 수 없다는 판단 ■ 직권 제24호 김상병 사건(1943년생, 진정인 망인의 동생)의 망인은 전역 후 학자금 마련을 위해 월남 파병을 신청했으나 인사장교가 “돈 벌어서 공부하겠다고 전쟁터에 나가는 놈이 무슨 군인이냐”라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망인의 파병 신청을 거부하자 정기휴가 중인 1966. 2. 1. 자가에서 음독 사망 직권조사 사유: 위원회는 진정 제761호 정○○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망인의 사망 사건을 알게 되었다. 유가족은 망인이 자살할 이유가 없고, 매(화)장보고서의 사망원인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며 사망원인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5년 종합활동보고서 |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관련 사건의 경우
부실한 군 기록 실태와 고령의 참고인 조사 한계 밝혀
군사망사고의 개념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1451호 구병장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사건 조사관은 사망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진정서, 병적기록부, 매(화)장보고서, 인사명령지를 확인하고 간부 및 병사 64명의 병적기록표를 확보하여 사망자를 제외한 41명에 대한 통신자료를 조회하였고, 이 중에서 28명의 통신자료를 확보하여 개별적으로 전화통화를 시도하였으나 노환으로 인한 의사소통 불능 및 기억력 저하 등의 이유로 15명에 대하여만 대인조사가 가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필드에서 참전군인을 만나며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는 고령의 나이와 건강 문제이다. 다양한 변수도 작용했는데 코로나가 확산될 무렵 참전군인 모임이 드물어지고 사람과의 만남을 꺼리게 되면서 만남 자체가 어려웠던 경우도 있었다. 위원회 조사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부실한 조사기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참고인 조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가보훈부가 집계하는 참전유공자 현황을 보면 2025년 10월 기준 164,142명이다. (6.25와 월남 참전 중복 인원 포함) 참전군인의 연령이 1945년생 전후 70대 후반 이후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참고인 조사를 폭넓게 진행하려면 하루속히 진상규명 활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보고서는 ‘군인’이 아닌 자가 사망한 경우는 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군사망사고의 개념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군 복무 중 질병을 얻어 이로 인해 전역하거나 질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전역한 뒤 사망한 경우, 이는 군인의 신분을 잃은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므로 전역 후 사망은 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고 군에서도 순직 여부를 심사할 대상으로조차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자해 사망의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는 PTSD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 삶에서 지속되어 사회부적응, 상해, 사망 등에 이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구제 대책 없이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파병, 귀환, 제대로 인한 신분 변화 고려
전장의 운영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두루 포괄해야
파월한국군전사에 기록된 숫자에 대한 조사 필요


출처: 파월한국군전사 10
위원회는 베트남전쟁 참전군인과 관련하여 진정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제한적으로 조사활동을 벌였지만, 전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상관 관계, 베트남전쟁 참전의 역사적 사건이 군 사망사고에 미치는 영향, 조사 활동 속에서 기록과 참고인 조사의 한계, 군사망사고 조사라는 특수성에 대한 한계도 함께 언급하였다.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동원된 청년들의 피해에 대해 진실규명하기 위해서는 파병, 귀환, 제대와 같이 참전 단계별로 접근하고, 그들의 위치와 신분(군인과 민간인)의 변화를 고려해야 하며, 전쟁 동원과 베트남 현지 사건 사고, 전과와 상훈, 전쟁 물자와 PX 운영 등 전장의 운영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두루 포괄해야 한다. 조사의 범위와 활동을 설계하는데 <파월한국군전사> ‘연도별 범죄별 발생 현황’과 ‘한국군 손실 현황’은 참조할 만한 통계이다. ‘범죄별 발생 현황’ 죄과에는 강력범죄, 직무관계, 재산관계를 비롯해 자해행위도 등장하는데 표에 근거하여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자살자가 총 140명이었다. ‘한국군 손실 현황’도 베트남전쟁 참전 전사자 5,000명, 부상자 1만 명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월남 파병 기간 비전투손실이 3,736명으로 사상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장교 177명-통계 숫자 ‘717’오기, 병사 3,559명) 이처럼 숫자로만 남은 전사상 통계와 전장의 사건, 사고, 죽음에 대해 규명해야 하는 것들을 진상규명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
「첨부1」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 토론회 자료집
「첨부2」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민간인 및 파병군인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특별법안 (민형배의원 대표발의)
[토론문] 베트남전쟁 진실 규명의 필요성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 활동을 중심으로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
이 글은 2025년 11월 25일、 국회의원회관 제5간담회실에서 열린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토론회’ 토론문으로 쓴 글입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하여 2018년부터 2023년까지 5년 동안 활동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종합활동보고서(이하 ‘보고서’) 총 14권을 토대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사망 사건과 관련한 기록을 검토하였다. 위원회에서 조사한 군사망사고 조사의 범위는 “1948년 11월 30일(「국군조직법」제정·시행일)부터 법 시행일(2018년 9월 14일) 전일까지 발생한 사고 또는 사건”으로서 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결정하여 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총 1,787건에 대한 진정 사건과 69건에 대한 직권조사 사건을 합하여 총 1,856건에 대한 조사 활동을 하였다. 조사 결과 1,195건의 사건에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고, 총 1,058건에 대해 국방부 장관에게 사망 구분 재심사를 요청하였다.
1970~1980년대 사건 수 가장 많아
육군 사건 82%, 병사가 대부분, 그다음은 하사
사망 유형별로는 자해 사망이 53%
진정사건 총 1,787건에 대한 연도별 분포를 보면 1949년 이전 사건은 3건, 1950년대 221건, 1960년대 269건, 1970년대 335건, 1980년대 364건, 1990년대 251건, 2000년대 171건, 2010년 이후 136건, 기타 26건, 미상 11건이다. 참고로 베트남전쟁 한국군 참전 시기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로 1960년대와 1970년대 사건에 해당된다. 소속별로는 육군이 1,472건으로 가장 많으며, 해군 164건, 공군 70건, 전환복무자 65건, 기타 5건, 미상 11건으로 육군 사건이 전체 82%를 차지하고 있다. 계급별로는 훈련병 포함 이병에서 병장까지 일반 병사 계급과 관련한 사망 사건이 총 1,362건으로 전체 진정 사건의 76%에 달한다. 병사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계급은 하사 사망 사건으로 총 177건이다.
위원회 종합활동보고서 1권 135쪽에는 조사 기간에 해당하는 시기에 발생한 군사망 사고에 대한 추이가 국방부 자료로 정리되어 있다.(아래 표 참조) 보고서는 이 통계를 인용하며 오차 없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군 사망 사고의 추이를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고 언급하고 있다. 베트남전쟁 한국군 파병 시기를 중심으로 해당 표를 살펴보면 전투부대 파병이 시작된 1965년 9월 이후부터 철군 시기인 1973년까지 다른 해에 비해 사망자가 증가한 사실을 알 수 있으며 파병 초기인 1967년 사망자 숫자가 3,165명으로 최대치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한국군 참전 현황은 1966년 45,065명, 1967년 48,839명, 1968년 49,869명, 1969년 49,755명, 1970년 48,512명, 1971년 45,663명, 1972년 37,438명으로 매년 최대 5만여 명의 병력이 베트남에 주둔하였다. (출처: <파월한국군전사 10> 528쪽)
자해 사망과 역사적 사건의 연관성 언급
25개의 사건 중 ‘베트남전쟁 파병’ 포함
근무 여건 악화가 자해 사망으로 이어진 것
사망 유형별로 진정 사건 중 자해 사망이 943건으로 전체의 53%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고사가 314건, 병사가 325건을 차지하고 있다. 자해 사망에 대하여 위원회는 각 시대의 역사적 사건이 근무 여건 악화의 배경으로 작용해 병사의 자해 사망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해당하는 25개의 사건을 적시하고 있는데 관련해서 언급된 사건은 6·25전쟁(1950~1953년), 후생사업(1950년대), 화폐개혁(1962년), 베트남전쟁 파병(1964~1973년), 김신조 사건(1968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1976년), 5·18광주민주화운동(1980년), 녹화사업(1982~1984년), 아웅산 묘소 폭파 사건(1983년) 등이다. 이러한 사건이 군사망사고 발생의 배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는 자해 사망과 관련하여 전쟁, 잔학 행위에 대한 경험 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하고 있음을 유의미하게 살펴보고 있다. 6.25전쟁 참전과 관련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자해 사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사건은 진정 제610호 이병장 사건, 진정 제704호 김이등중사 사건, 진정 제851호 김중위 사건, 진정 제1070호 유소령 사건이다.
베트남전쟁 파병 군인 사건 다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의 연관성 다뤄
베트남전쟁 파병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사망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되는 사건으로 진정 제177호 이상병 사건, 진정 제201호 안하사 사건, 진정 제690호 정병장 사건, 진정 제732호 허상병 사건, 진정 제1570호 서병장 사건, 진정 제1613호 이상사 사건, 진정 제1728호 이병장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진정 제201호 안광철 하사 사건은 지난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을 위한 국회 토론회(2025.6.19.) 두 번째 발제 ‘베트남전 파병 군인의 전쟁 동원과 귀환 이후,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에서 언급한 바 있다. 위 해당 사건에 대한 간략한 소개는 다음과 같다.
베트남전쟁 참전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사망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판단되는 사건으로
■ 진정 제177호 이상병 사건(1943년생, 진정인 망인의 딸)에서 ‘맹호부대’에 소속되어 1968. 4. 12.부터 1969. 6. 8.까지 베트남에 파견된 망인은 맹호 11호·12호 작전, 혜산진 3호·5호·69-6호·69-7호·69-8호 작전, 장비 69-9 전투 등에 참전하면서 아군뿐만 아니라 적군의 참혹한 죽음을 다수 경험했으며 귀국 후 부대원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홀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다가 전역을 6일 앞둔 1970. 9. 8. 총기로 사망하였고 이는 베트남 파병으로 인해 겪은 외상 후 스트레스가 잠정적으로 자해사망 생각과 의도, 동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는 심리자문 전문가의 자문소견 보고
■ 진정 제201호 안하사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동생)의 망인은 ‘청룡부대’ 소속으로 1968. 9. 10.부터 1969. 8. 13.까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호이안에 주로 주둔하면서 가장 치열한 전투로 평가받는 고노이 섬 전투를 비롯한 매복 작전·전투에 다수 참전하여 무공훈장을 받았으나 귀국 후 1971. 11. 16. 수류탄을 터뜨려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항상 우울해하고 유격 훈련장에서 군무이탈을 하는 등 파병 전과 매우 달라진 모습을 보인 점에 대해 심리자문을 담당한 전문가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중 하나인 ‘해리’ 증상과 일치하고 군무이탈은 과거 공포 경험에 대한 회피 반응으로 파악된다고 분석
■ 진정 제690호 정병장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형)에서 망인은 1968. 3. 8.부터 1969. 3.말경까지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군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으며 귀국 후 전역을 앞두고 같은 해 1969. 5. 19. 음독하여 사망. (망인은 1967. 3. 21. 해병대 사령부 보통군법회의에서 1년 1개월 26일간 군무 이탈한 사실로 징역 단기 6월 장기 8월 선고를 받았고, 징역 단기 3월 장기 4월로 감형되었음. 보고서 6권 902쪽 각주 1번)
■ 진정 제732호 허상병 사건(1942년생, 진정인 망인의 조카)은 1967. 12. 15. 베트남전쟁에 파병되어 각종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군수지원사령부 근무중대에서 복무하던 중 후방 지원병도 전투 관련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전시 상황에서 절도 사건에 연루되자 1968. 4. 13. 베트남 현지 부대 내 방공호에서 총기를 이용해 사망.
■ 진정 제1570호 서병장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동생)에서 1969. 11. 12.부터 1970. 12. 1.까지의 파병 기간 망인이 소속된 건설지원단은 전투부대가 아님에도 베트남군에 의한 준공물 파괴, 폭발물 매설, 공사장 및 차량 습격, 인접 부대에 대한 산발적 포격, 기동로 상의 부비트랩 설치 등 공격의 대상이었고 망인은 귀국 후에도 훈련을 힘들어하는 등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 1971. 8. 16. 총기를 이용해 사망
■ 진정 제1613호 이상사 사건(1943년생, 진정인 망인의 부인)의 망인은 맹호부대 소속으로 1966. 6. 18.~1967. 6. 27. 1차 파병 및 1967. 10. 12.~1968. 11. 15. 2차 파병 중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에 참전하여 공로를 인정받았으나 귀국 후 성격이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가족들과 멀어졌으며 한밤중 악몽에 시달리다 비명을 지르고 술에 취하면 총을 쏘는 자세 또는 구르기 자세를 취하고 눈물을 흘리는 등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다가 1973. 9. 15.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 (88년, 2001년 재조사,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사건 2009년 10월 21일 취하 종결) 진상규명, 국방장관에게 순직으로 재심 청구
■ 진정 제1728호 이병장 사건(1947년생, 진정인 망인의 조카)에서 1968. 10. 7. 베트남 파병 후 이동외과병원 외래과 환자계에 배치되어 최전방 1차 응급치료 지원업무를 수행하던 망인은 작전 중 밀려드는 부상병들로 인한 수면 부족, 참혹한 시신과 외상환자를 일상적으로 목격하는 정신적 충격, 간혹 발생하는 적군의 박격포탄 투하 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와중에 취사장 관리 장교의 괴롭힘까지 더해지자 1970. 9. 5. 막사 앞에서 총기를 이용해 사망
출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5년 종합활동보고서
병사 사망이 다수인 군사망사건은 직계 존비속이 진정 제기하기 어려워
진정사건 중심의 신청주의 한계 언급해
진정인과 망인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부모 399건, 자녀 183건, 형제 836건, 친인척 221건, 배우자 83건, 부대 동료 51건 기타 14건을 차지하고 있다. 병사 계급의 사망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5-60년이 지난 사건의 경우 부모가 진정을 제기하기 어렵고 직계비속이 없을 가능성, 방계 신청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음은 한계로 지적된다. 위원회 진정사건(1,787건)의 진정인은 부모가 22%, 자녀가 10%, 배우자가 5%이며 형제자매가 47%, 친인척 12%, 기타 4%이다. 형제자매가 47%라는 점은 부모의 사망 또는 후손이 없다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진정인의 연령대는 80대 6%, 70대 21%, 60대가 40%, 50대 23%, 40대 6%, 기타 4%이다. 결국 유족의 진정제기에 의하여 조사를 시작하는 방식으로는 복무 중 사망한 군인에 대한 사망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적절한 예우를 하기에 부족하다. 위에 언급된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사건 진정인의 경우도 망인의 형제, 조카 등이 진정한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베트남전쟁 파병과 관련하여 일어난 사망 사건으로 직권 제24호 김상병 사건, 진정 제 1309호 임일병 사건, 진정 1451호 구병장 사건 등이 있다. 관련 사건들은 진상규명 결정하고 국방부 장관에게 순직으로 재심 권고하였다.
■ 진정 제1309호 임일병 사건(1944년생, 진정인 망인의 조카)은 1966. 7. 18. 03:30경 취침 중 탈영하였다가 1966. 7. 21. 17:00경 경기도 ○○군 ○○강 하류에서 민간인에 의해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군 수사결과에 대해
- 파병 훈련 과정이 일반 부대에서의 훈련 과정보다는 훈련의 강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
이고 베트남전쟁 참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베트남전에 참전하면 죽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매일 10~20여 명의 병사가 탈영하는 사례가 실제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망인
도 파병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전쟁 공포증을 이기지 못하고 탈영한 것으로 추정
- 또한 자해 혹은 사고에 의한 익사인지는 판단 불가
■ 진정 제1451호 구병장 사건(1946년생, 진정인 망인의 형)은 베트남전쟁 파병 중인 1969. 10. 26. 19:00경 무단이탈하여 토착 창녀와 동침 중 잭나이프를 휘두르면서 같이 죽기를 바란다고 위협하는 것을 관계자가 만류하다 밖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약 10분 후 수류탄의 폭음과 함께 하퇴부 및 머리 일대에 파편이 튀어 전신 타박상으로 현장에서 자해사망하였다는 군 수사결과에 대해
- 귀국 하루 전날 무단이탈 및 자해사망할 만한 사정을 특정할 수 없고 자해사망이라 하
더라도 매화장보고서 기재 내용만으로 망인이 칼을 휘둘렀다는 상황이 설명되지 않
으며 자해 목적으로 수류탄을 투척하였는지 또한 목격자가 없어 사망 경위를 특정할
수 없다는 판단
■ 직권 제24호 김상병 사건(1943년생, 진정인 망인의 동생)의 망인은 전역 후 학자금 마련을 위해 월남 파병을 신청했으나 인사장교가 “돈 벌어서 공부하겠다고 전쟁터에 나가는 놈이 무슨 군인이냐”라는 등 정당한 이유 없이 망인의 파병 신청을 거부하자 정기휴가 중인 1966. 2. 1. 자가에서 음독 사망
직권조사 사유: 위원회는 진정 제761호 정○○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망인의 사망 사건을 알게 되었다. 유가족은 망인이 자살할 이유가 없고, 매(화)장보고서의 사망원인 또한 전혀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며 사망원인에 대한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5년 종합활동보고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관련 사건의 경우
부실한 군 기록 실태와 고령의 참고인 조사 한계 밝혀
군사망사고의 개념적 한계에 대한 지적도
1451호 구병장 사건과 관련하여 해당 사건 조사관은 사망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진정서, 병적기록부, 매(화)장보고서, 인사명령지를 확인하고 간부 및 병사 64명의 병적기록표를 확보하여 사망자를 제외한 41명에 대한 통신자료를 조회하였고, 이 중에서 28명의 통신자료를 확보하여 개별적으로 전화통화를 시도하였으나 노환으로 인한 의사소통 불능 및 기억력 저하 등의 이유로 15명에 대하여만 대인조사가 가능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필드에서 참전군인을 만나며 느끼는 어려움 중 하나는 고령의 나이와 건강 문제이다. 다양한 변수도 작용했는데 코로나가 확산될 무렵 참전군인 모임이 드물어지고 사람과의 만남을 꺼리게 되면서 만남 자체가 어려웠던 경우도 있었다. 위원회 조사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부실한 조사기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참고인 조사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현재 국가보훈부가 집계하는 참전유공자 현황을 보면 2025년 10월 기준 164,142명이다. (6.25와 월남 참전 중복 인원 포함) 참전군인의 연령이 1945년생 전후 70대 후반 이후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참고인 조사를 폭넓게 진행하려면 하루속히 진상규명 활동이 시작되어야 한다.
또한 보고서는 ‘군인’이 아닌 자가 사망한 경우는 위원회의 조사 대상에 속하지 아니한다는 군사망사고의 개념적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군 복무 중 질병을 얻어 이로 인해 전역하거나 질병을 치료하지 못한 채 전역한 뒤 사망한 경우, 이는 군인의 신분을 잃은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므로 전역 후 사망은 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아니고 군에서도 순직 여부를 심사할 대상으로조차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전쟁과 관련하여 자해 사망의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는 PTSD는 군대를 전역한 이후 삶에서 지속되어 사회부적응, 상해, 사망 등에 이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구제 대책 없이 5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파병, 귀환, 제대로 인한 신분 변화 고려
전장의 운영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두루 포괄해야
파월한국군전사에 기록된 숫자에 대한 조사 필요
출처: 파월한국군전사 10
위원회는 베트남전쟁 참전군인과 관련하여 진정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 제한적으로 조사활동을 벌였지만, 전쟁과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상관 관계, 베트남전쟁 참전의 역사적 사건이 군 사망사고에 미치는 영향, 조사 활동 속에서 기록과 참고인 조사의 한계, 군사망사고 조사라는 특수성에 대한 한계도 함께 언급하였다.
베트남전쟁과 관련해 동원된 청년들의 피해에 대해 진실규명하기 위해서는 파병, 귀환, 제대와 같이 참전 단계별로 접근하고, 그들의 위치와 신분(군인과 민간인)의 변화를 고려해야 하며, 전쟁 동원과 베트남 현지 사건 사고, 전과와 상훈, 전쟁 물자와 PX 운영 등 전장의 운영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두루 포괄해야 한다. 조사의 범위와 활동을 설계하는데 <파월한국군전사> ‘연도별 범죄별 발생 현황’과 ‘한국군 손실 현황’은 참조할 만한 통계이다. ‘범죄별 발생 현황’ 죄과에는 강력범죄, 직무관계, 재산관계를 비롯해 자해행위도 등장하는데 표에 근거하여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자살자가 총 140명이었다. ‘한국군 손실 현황’도 베트남전쟁 참전 전사자 5,000명, 부상자 1만 명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통계에 따르면 월남 파병 기간 비전투손실이 3,736명으로 사상자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장교 177명-통계 숫자 ‘717’오기, 병사 3,559명) 이처럼 숫자로만 남은 전사상 통계와 전장의 사건, 사고, 죽음에 대해 규명해야 하는 것들을 진상규명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
「첨부1」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규명 토론회 자료집
「첨부2」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민간인 및 파병군인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특별법안 (민형배의원 대표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