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교육[탐방후기] 정전 70년, 평화로 걷는 용산 네 번째 프로그램 '해방촌을 가다'

찬바람재에서 해방촌을 바라보며


남산 3호 터널을 지나 반포대교로 향하는 길, 혹은 남산순환도로에서 급경사를 따라 굽이굽이 내려오며 무심코 지나쳤던 곳, 그곳에 해방촌이 있습니다. 해방촌은 1945년 해방과 함께 해외에서 돌아온 사람들과 북쪽에서 월남한 사람들,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인해 피난을 온 사람들이 정착하며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녹사평역 지하예술정원 <댄스 오브 라이트-유리 나루세 & 준 이노쿠마>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찬바람재’에 서서 터널을 빠져나오는 자동차의 행렬 위로 남산과 해방촌을 바라보았습니다. ‘찬바람재’는 수백 년 동안 이태원과 서빙고로 넘아가는 교통로로 이용되었다지요. 그곳에 서니 남산자락 아래 빽빽이 들어서 있는 해방촌이 한 덩어리로 보였습니다.

 

정전 70년이 되는 올해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우리가 자리한 이곳 용산에서 평화를 이야기하고자 ‘용산마을교육연구회’와 평화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총 5회로 진행되는 탐방프로그램은 지난 6월부터 매달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 한국전쟁실, 용산역에서 삼각지까지 걸으며 평화를 만나고 있습니다. 이번 탐방길은 네 번째 시간으로 해방촌을 함께 걸었습니다.


해방촌에서 바라본 남산타워


해방촌 이야기_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남산아래 첫 동네

소나무 숲이었던 이곳에 마을이 생겨난 것은 해방 직후였다.
일제강점기에 해외로 흩어졌다 귀국한 동포들과 종교와 정체체제 문제로 월남한 주민들은 움막을 짓고 공동우물을 파고 길을 내서 살기 시작했다. 특히 평안북도 선천 지역민들은 옛 경성호국신사 자리에 군민화를 이뤄 집단 거주시설을 형성하기도 했다.
산업화가 활발하던 60년대 이후, 해방촌은 일감을 찾아 서울로 모여든 서민들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였다.
당시 활발하게 일어난 니트산업으로 한때 해방촌에는 300여 개의 가내 공장이 운영되었고 생산된 상품들은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더욱 몰려들었고 시장은 번성했다.
각자의 고향을 그리던 사람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워 정신적으로 뿌리를 내렸고 대를 이어오며 해방촌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제 주민들은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며 늘어가는 다문화 가정과 다국적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방촌 2세대들과 젊은이들은 공방과 카페, 마을모임에서 조용하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해방타워’ 길거리 전시 중


미군부대 담장 옆 한신옹기를 지나 해방촌 입구에 들어서면 시간여행이 시작됩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판자집이 들어서기 시작하던 해방촌 초기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언덕길로 올라가다 ‘온지곤지’(https://ozgz.net/)에서 운영하는 해실공방에 들렀습니다. 대대로 해방촌 사람들은 니트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곤 했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곳곳에 공방이 들어서 있는데요. 온지곤지는 마을에 협동조합 형태로 지역주민이 참여하여 옷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해실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워낙 싸고 좋은 옷들이 많아 잠깐의 쇼핑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답니다.


온지곤지 '해실 공방'


찬바람재에서 해방촌을 조망하며 가운데 우뚝 솟아있던 해방교회를 만났습니다. 해방촌이 만들어지던 시기 들어선 이 교회는 지금까지 마을의 중심에서 이곳 정착민들의 삶과 함께했습니다. 인근 해병대사령부 초대교회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 교회는 군 공병대가 시멘트 블록과 양철지붕으로 1959년 짓기 시작했고 73년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며 교회기능을 상실했다가 2003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곳곳에 해방 이후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마치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지금은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신흥시장은 그 시절 해방촌 사람들의 애환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해방교회(왼쪽)와 해병대초대교회(오른쪽) 


해방타워를 아시나요? 해방촌이 생기며 평양에서 개교한 숭실학교가 이곳 해방촌에 터를 잡았습니다. 현재 해방타워 부지 일대가 당시 숭실학교가 위치했던 곳입니다. 숭실학교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된 곳이기도 합니다. 조만식, 황순원, 윤동주 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 이곳을 졸업했습니다. 숭실학교가 자리했던 이 터는 일제강점기에 경성호국신사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일제 신사가 있던 장소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가 터를 잡아 자리했던 것이지요. 신사에 오르는 계단이었던 108계단에 지금은 승강기기가 생겼습니다. 해방촌을 걷다 보니 100년의 역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을 걸으며 100년의 전쟁과 평화를 만났습니다.


해방타워와 108계단 승강기


'정전 70년, 평화로 걷는 용산' 참가자들




정전 70년, 평화로 걷는 용산

 

한반도에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한국전쟁 정전 70년을 맞는 해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휴전’과 ‘분단’은 여전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전 70년, 전쟁의 북소리가 멈추지 않는 세계, 우리가 마주한 전쟁을 기억하고 한반도 종전을 기원하는 평화 탐방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용산은 ‘철도’와 ‘군대’의 도시입니다. 용산 곳곳에 남아있는 흔적들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용산을 걸으며 ‘전쟁’과 ‘평화’,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만납니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한국사회가 겪은 폭력의 역사를 마주합니다. 용산 마을 투어와 강좌를 운영하는 ‘용산마을교육연구회’와 베트남전쟁을 중심으로 평화 활동을 펼쳐가는 ‘아카이브평화기억’의 콜라보!

2023년은 평화로 걷자! 


오는 11월 18일, 마지막 탐방길에 함께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 일정

1회 / 6월 17일 /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종료)

2회 / 7월 8일 / 전쟁기념관 한국전쟁실(종료)

3회 / 8월 19일 / 용산역에서 삼각지까지(종료) https://blog.naver.com/peacememo7/223187883814

4회 / 9월 16일 / 해방촌(종료)

5회 / 11월 18일 / 미군 장교 숙소 5단지

 

○ 대상: 어린이, 청소년, 시민, 누구나

○ 인원: 20명(회당 선착순 마감)

○ 참가비: 1인 기준 / 1회 1만 원, 전회차 참가 3만 원 (참가비 납부계좌 : 신한은행 100-034-254055 용산마을교육연구회 )

 

○ 신청링크: http://bit.ly/2023_0727

 

○ 문의: 

카카오톡 '용산마을교육연구회' / 010-7406-0727

아카이브평화기억 메일 주소 / peacememo7@gmail.com

 

○ 주최/주관: 아카이브평화기억, 용산마을교육연구회


https://online.mrm.or.kr/WDJeB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