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나의 할아버지를 이야기하다/다큐멘터리 <당신의 해방> '2023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이틴즈 부문 선정작'_노랭(박혜진)

나의 할아버지를 이야기하다


노랭(박혜진)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가

성미산학교 졸업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프로젝트 참여

[다큐멘터리] '당신의 해방' 감독

 

1. 전쟁, 폭력의 고리


2021년, 성미산학교 중등을 졸업하고 확장된 배움을 기대하며 포스트중등 과정에 진학했다. 그 전까지 나에게 전쟁은 나와는 먼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봄, 가을로 이동학습을 가며 군산과 제주 군사기지의 존재와 사드 배치로 삶의 터전을 빼앗긴 존재들, 싸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과거의 일인 줄만 알았던 전쟁은 활동가들의 삶을 통해 현재로 연결되었다. 전쟁과 폭력은 이미 일상적인 삶에 파고들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과의 만남으로 군사기지의 문제가 단지 지역과, 활동가 개인의 일이 아닌 한반도 전체가 군사기지화 되어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전쟁은 한번에 일어나지 않고 작은 일들과 준비 과정을 통해 시작되기 때문에 전쟁을 준비하는 작은 움직임들을 발견할 때면 ‘내가 전쟁이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구나’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전쟁,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되었다. 이를 통해 과거의 전쟁을 성찰하는 것의 중요성과 전쟁의 경험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제주와 군산에서의 만남



2. 내 할아버지는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이다


포스트중등에서는 한국 사회의 폭력의 고리를 성찰하며 여러 학살과 전쟁에 대해 공부하였고 그중 하나가 베트남전쟁이었다. 한국의 첫 해외 파병이었던 베트남전쟁은 1964년부터 73년까지 연인원 32만여 명의 한국군이 참전했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전까지 베트남전쟁의 이름도 알지 못했다. 때문에 그 전쟁이 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을 것이란 생각 역시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많은 한국군이 파병을 간 전쟁이니만큼 우리 안에서도 참전군인의 가족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이후 엄마에게 슬쩍 물어보니 할아버지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것이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가 참전군인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베트남전쟁을 공부하게 되었다. 피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 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고엽제의 피해를 입은 존재들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다. 더불어 한국 정부의 파병 결정과 그 뜻에 따라 폭력의 현장에 가게 된 참전군인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며 베트남전쟁에 얽혀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다층적인 입장을 접하게 될수록 베트남전쟁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나는 할아버지의 참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분명 나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고민은 속이 비어있었지만 조금 무거웠으므로 정리하지 않은 채 잠시 덮어두었고 그러던 중 한 해가 마무리되며 2022년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관심있는 주제별로 팀을 꾸려 한 해 동안 활동하는 ‘필드워크’를 진행하는데, 1학기는 마침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 시기에 나는 아카이브평화기억의 석미화(이하 ‘연두’로 칭한다) 평화 활동가가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이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연두는 이전부터 베트남전쟁을 지렛대 삼아 평화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활동가였고 학교 선배들과 꾸준히 관련 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어오기도 했었기에 관심이 생겼다. 

 


3.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이라는프로젝트는 가해와 피해를 넘어 참전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고 역사의 당사자로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활동이었다. 특히 전북 익산시 금마면 중심에 위치한 금마초등학교 1960년 졸업생을 중심으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과 그의 가족들, 마을사람들의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에 주뼜거리며 좋다고 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큰 공부가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팀이 꾸려졌고 아카이브평화기억의 활동가 연두, 금마국민학교 졸업생인 양정석 참전군인, 성미산학교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던 은결, 채원, 솔이 함께하게 되었다.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을 준비하며 나에겐 구술생애사라는 방식부터가 낯설고 새로웠다. 그렇기에 구술이라는 인터뷰 방식을 알아가는 것부터가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듣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하며 개인적으로 치부되는 삶의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발화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또한 베트남전쟁은 참전군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지만, 실제 파병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며 그들의 참전 전후의 삶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금마국민학교 동창생들의 파병의 기억을 찾아다녔고 나는 참전군인의 인터뷰 현장을 몸과 카메라로 담았다.

 

익산에서의 구술 (김정용 참전군인과)


익산에서의 구술은 예상 밖의 일 투성이였다. 고대하던 참전군인과의 만남이 30분만에 마무리되기도 했고, 익산 지역 월남참전비에서 우연히 발견한 동창생의 이름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만남을 불러오기도 했으며, 집 앞 나무 밑에 앉아 하루를 꼬박 이야기나누는 등의 경험을 했다. 특히 30분만에 마무리된 인터뷰 날에는 인터뷰어 모두가 심란했다. 어떠한 지점으로 인해 인터뷰가 마무리된 것일까 고민하다 보니 내 비언어적인 몸짓과 작은 말 하나가 참전군인이 마음을 닫는 찰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에게는 목표에 따라 한 해 안에 프로젝트를 마무리해야 하는 현실적 상황과 지역적, 시간적 한계가 존재했기에 앞으로의 구술이 정말 쉽지 않겠다고 느껴졌다. 특히 구술 초반의 과정에서 예외의 상황을 마주해 버리니 더욱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이 마무리된 지금에서는 목표에 따라 프로젝트를 무사히 진행해야 하는 한다는 생각을 줄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뾰족한 일 또한 우리의 구술 기록 활동의 일부임을 받아들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게 된다. 그렇다면 예상 외의 상황을 더욱 유연하게 마주해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구술은 예측할 수 없는 움직이는 현장 그 자체라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익산에서의 구술 (양상순 참전군인 가족과)


하지만 ‘인터뷰가 이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그 이후에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참전군인을 여럿 만났다. 참전군인들은 당산나무 밑에서 어린시적을 추억하며 마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참전 당시 군대PX에서 물건을 사다 되팔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다.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삶을 들으며 현재까지 몸에 남아 자식에게까지 영향을 준 고엽제의 흔적을 만나기도 했다. 이야기를 더 해 주고 싶은데 생각이 안 난다며 우리는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나는 익산에서의 여러 이야기들 중 무엇보다도 김정용 참전군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김정용 참전군인은 어릴적 여리고 소심한 성격 때문에 해병대에 지원하였는데 그렇게 월남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해병대에서의 이야기와 베트남전쟁 참전 이야기를 줄줄이 들려 주시고는, 결국 사람 심성은 변하지 않더라고 이야기하였다. 군대와 같이 남성성, 정상성에 끝을 달리는 집단을 겪어낸 후 들려주신 이야기라서 더욱 무게가 느껴졌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남성성’과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전쟁은 사실 죽이고 죽는 순간의 연속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매우 당연하지만, 참전군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참전군인은 감정을 말하는 것에 대해 낯설어했다. 이는 남성 옆에 따라오는 꼬리표의 영향도 있었을 테고, 군대가 가진 강인하고 이성적인 이미지와 대비되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다. 감정을 억제하고 약점으로 만들어 강화된 ‘남성성’은 어떤 존재들의 목소리와 죽음을 묻어내고 있나 생각하게 되었다. 여린 심성으로 군대와 전쟁을 겪어낸 힘듦은 가늠조차 할 수 없어 마음이 안 좋지만, 그럼에도 김정용 참전군인의 심성이 변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거대한 담론과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몸소 느끼게 되었다. 



4. 당신의 해방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에 함께하며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시기상 나는 성미산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졸업 학년은 졸업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진행할 수 있었다. 졸업 프로젝트를 기회로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할아버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는지 확인했다. 가족을 인터뷰하는 일은 어렵다는데 이렇게 뭣도 없이 무턱대고 찾아가도 될지 걱정이 앞섰다. 머뭇거리는 시간을 보내다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조치원에서 배와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 내가 7살이 되어 서울로 이사를 오기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조치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았다. 초등학생 때는 방학때마다 내려가 물놀이와 눈놀이를 꼬박꼬박 했지만 점점 빈도가 줄었고, 할아버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 역시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에게 베트남전쟁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니 할아버지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였는데 내가 모르는 ‘김시호’의 삶이 있다는 것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할아버지는 69년 12에 월남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군대에서 줄빠따 맞았던 이야기, 베트남에서 다른 지역에 보급품을 전달하러 갔다가 총을 도둑맞았던 이야기, 어쩌면 그간 얘기하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암과 암이 남긴 약봉지 또한 베트남전쟁의 고엽제와 닿아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인터뷰를 마친 어느 날에는 커피를 타는 할아버지의 등을 보며 거실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약봉지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혼잣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어서 카메라를 들어 “할아버지 뭐 했으면 좋겠다고요?” 되물었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내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것이 얼마나 힘든 경험이었는지 줄줄이 이야기했지만 결국에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을 마무리 짓곤 했다. 포 쏘는 소리로 귀가 찢어질 것 같이 아팠던 순간도 돌아보면 할아버지의 괜찮은 경험이 되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참전의 결말을 긍정하지 않는, 해방되고 싶다는 바람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졸업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당신의 해방>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를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서의 ‘당신’은 온전히 할아버지, 김시호를 칭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전쟁 중인 할아버지의 현재 삶을 들여다 보며, 폭력의 구조를 접한 당신과 나의 해방이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만들었다. 





다큐 <당신의 해방> 스틸컷



5. 참전군인과 나


익산의 참전군인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참전군인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너무 납작한 존재들이었다.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들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태극기부대’의 이미지만이 떠올랐다. 또한 군대와 참전 이야기는 “군대에서 이런 것까지 해봤다”는 무용담이나, 국가를 지키고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는 것들 뿐이었다. 그 이야기들은 나에겐 굳이 듣기 싫은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여러 참전군인들을 만나며 참전군인도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정체성 중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참전군인들도 그 정체성 외의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교차적인 존재였다. 나는 나를 정체화하는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어떤 정체성으로 이름 붙이기도 하였고, 그 정체성에 개인들이 가려지고 일반화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나는 내가 입체적인 사람으로 보여지길 바라면서도 참전군인은 납작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참전군인 삶의 이야기는 기존의 선입견을 녹여 참전을 삶의 일부로 만나게 했고 그 일부가 참전군인들의 삶에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는지 또한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일반화되지 않은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의 역사를 마주하게 되었다. 

 
익산에서의 구술 (임호영 참전군인과)

현재 나는 '아카이브평화기억'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한국사회가 겪은 전쟁과 폭력의 경험을 평화의 지렛대로 삼아 개인의 전쟁 기억과 삶을 구술 기록하며 평화와 관련한 기억을 찾아 만나고, 소통하고, 나누는 평화 활동 단체이다. 지난해 참전군인 구술활동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은 책으로 출간되었다. 나는 그 경험을 이어 올해에도 참전군인 구술을 진행하고, 평화 워크숍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할 예정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말을 통해 군대화되고 영웅화된 전쟁을 해체하여 거시적인 전쟁의 언어를 우리의 언어로 전환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싶다.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조금이나마 연결되어있길 바라며 앞으로도 많은 예외의 상황을 만나고 싶다.

 

 *이 글은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행하는 <오늘의교육> 7~8월 호에 수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