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카이브 평화기억이에요.
그간 우리는 전쟁기념관이 '기념'하는 베트남전쟁을 함께 보고,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하며 전쟁기념관을 여러번 방문하였어요.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프로젝트 구성원과 한 번, 류진성 참전군인과 한 번 총 두 번 방문하였지요.
두 번의 탐방을 모두 함께한 성미산학교 이응의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방문했다.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구술작업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한 번,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류진성 님과 또 한 번, 짧은 기간 동안 전시를 두 번 보았다.
첫 번째 방문, 기록하는 것과 기록하지 않는 것
전쟁기념관은 국방부가 기획, 구성, 운영하는 곳이다. 해외파병실 전시는 국방부가 ‘기념’하는 베트남전쟁, 해외파병 서사를 따르고 있다. 전쟁 당시 전략과 전투 방식, 무기들을 전시하고, 베트남전쟁을 통해 한국이 얻은 경제적 이익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전시물들은 성과 위주의 긍정적인 모습을 부각시킨다. 우리는 해외파병실을 방문해 국방부가 구성한 전시가 보여주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전시에서 삭제된 부분들을 발견했다.
전시의 마무리가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되기 시작한 때부터 기록된 전시는 남베트남이 전쟁에서 패망하였다는 이야기로 갈무리된다. 전쟁의 패망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남베트남 정부의 책임으로 적혀있었다. 훌륭한 지도자와 애국심 강한 국민들이 있는 북베트남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와 달리 내분이 있었던 남베트남이 패전했다는 논리다. 패전의 결과에 한국은 빠져있다. 한국도 남베트남 측에 군대를 보낸 패전국의 일부이지만, 전시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국방부는 ‘개선환영식’을 하는 군인들의 사진을 걸고 싸움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것 같은 위풍당당한 모습만 보여준다. 남베트남 정부가 그렇게 부패했었다면 한국군은 왜 그 정부에 협력했을까? 국방부는 전시장 벽에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문장을 적어두고 전쟁 범죄와 부수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전시물 중에는 베트남전쟁의 영웅인 군인들의 흉상이 있다. 동료를 위해 몸을 던졌거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재현해놓았다. 그러나 그곳에 인간은 없다. 전쟁 영웅이 된 군인만 있을 뿐이다. 흉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참전군인들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다. 숫자와 이름으로만 표기된 전사자들의 삶, 귀국 후 트라우마와 PTSD 등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참전군인들, 고엽제 피해 문제 같이 영웅적이지 못한 서사들은 국가의 기록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민간인 학살, 미국에서 일어난 전쟁 반대 운동, 국군 포로, 라이따이한, 난민 문제, 에코사이드 피해 등도 마찬가지였다.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전쟁 피해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전시를 보면서 전시물들이 굉장히 의도적으로 국위선양, 경제 발전, 업적들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라는 문구나 무기, 훈장, 전투 일색의 전시는 더 강한 군사력, 튼튼한 안보가 중요하고, 앞으로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관람객에게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자유 우방의 지원에 보답’, ‘세계 평화에 기여’ 같은 문구에 적힌 ‘자유’와 ‘평화’라는 단어는 국가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수호를 말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어두운 면을 감추려고 하는 전시였다. 전쟁기념관은 말 그대로 전쟁을 ‘기념’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전쟁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체감하지 못한다. 내가 경험하는 전쟁의 감각은 간접적이다. 나는 전쟁 장면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전쟁 당시 학살된 이들의 유골을 닦고, 전쟁에 사용될 전투기와 정찰기를 보고, 사격 훈련의 총성을 듣는다. 간접적인 경험이지만 그런 순간을 지날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 위압감, 슬픔, 답답함 같은 계열의 것이었다. 전쟁기념관이 전시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득이 되는, 숭고한, 거창한 종류의 것들은 아니었다. 이런 괴리가 전시를 어딘가 이질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전시가 표현하는 것 사이 이질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탐구하기 위해, 전쟁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에 대해 질문할 필요를 느꼈다.
질문하는 일은 국가가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 외면하는 것에 저항하는 일이다. 프로젝트 구성원들과 함께 해외파병실을 탐방하며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법한 내용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 방문, 한 참전군인의 관점을 통해
류진성 님과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돌아보았다. 류진성 님은 68년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피해에 대해 법정 증언을 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이다. 류진성 님은 전쟁을 ‘기념’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기념관 주위 공원은 자주 오지만 내부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우리와의 방문이 첫 방문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탐방이 끝나고 난 후에는 이곳에 굳이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류진성 님은 해외파병실 전시가 밝은 면만 나타내고, 이면의 어두운 부분들은 숨겨두어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했다. 전시에 거짓말들이 섞여 있다고도 했다.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고 적힌 흰색 표지판이나, 전쟁 영웅 흉상 등을 보며 한 말이다. 국방부는 민간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정의로운 한국군의 이미지 뒤에 숨겼고, 전쟁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나타내는 데 일조하는 영웅의 모습을 만들었다. 류진성 님은 전쟁은 즐거운 것도,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라며 명암을 모두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전시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전개할지는 관람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참전 당시에는 전쟁의 배경과 동기 등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전쟁 경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 류진성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전군인 당사자로서 전시를 보는 사람의 감정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어떤 이들에게 그곳은 자신이 한 일의 의미를 확인하는 곳일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 그곳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끌어 내는 매개일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업적을 되새기는 장소일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왜곡된 기억으로 다가갈 수 있다. 혹은 모두 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데에도 배움이 더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찾아내고 기록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일률적으로 구성된 국가의 거대한 서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언어로 전쟁의 기억을 다시 살피고 쌓으면 좋겠다. 국방부가 쓰는 ‘자유’와 ‘평화’라는 낱말을 다르게 사유할 방식을 찾고 싶다. 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번 구술 작업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찾고 기록해나가며 타인의 시선을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관점을 넘어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할 때 우리는 타인의 경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뭉뚱그려진 집단의 서사가 아니라 개인이 말하는 삶 이야기를 읽어내게 된다. 그 보통의 기억 속에서 고통, 감각, 감정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이응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11학년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구술활동 참가자
안녕하세요! 아카이브 평화기억이에요.
그간 우리는 전쟁기념관이 '기념'하는 베트남전쟁을 함께 보고,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길 기대하며 전쟁기념관을 여러번 방문하였어요.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프로젝트 구성원과 한 번, 류진성 참전군인과 한 번 총 두 번 방문하였지요.
두 번의 탐방을 모두 함께한 성미산학교 이응의 이야기를 소개할게요.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방문했다.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구술작업에 함께하는 사람들과 한 번,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류진성 님과 또 한 번, 짧은 기간 동안 전시를 두 번 보았다.
첫 번째 방문, 기록하는 것과 기록하지 않는 것
전쟁기념관은 국방부가 기획, 구성, 운영하는 곳이다. 해외파병실 전시는 국방부가 ‘기념’하는 베트남전쟁, 해외파병 서사를 따르고 있다. 전쟁 당시 전략과 전투 방식, 무기들을 전시하고, 베트남전쟁을 통해 한국이 얻은 경제적 이익을 자랑스럽게 드러낸다. 전시물들은 성과 위주의 긍정적인 모습을 부각시킨다. 우리는 해외파병실을 방문해 국방부가 구성한 전시가 보여주는 것,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전시에서 삭제된 부분들을 발견했다.
전시의 마무리가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전쟁에 한국군이 파병되기 시작한 때부터 기록된 전시는 남베트남이 전쟁에서 패망하였다는 이야기로 갈무리된다. 전쟁의 패망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남베트남 정부의 책임으로 적혀있었다. 훌륭한 지도자와 애국심 강한 국민들이 있는 북베트남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그와 달리 내분이 있었던 남베트남이 패전했다는 논리다. 패전의 결과에 한국은 빠져있다. 한국도 남베트남 측에 군대를 보낸 패전국의 일부이지만, 전시만 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국방부는 ‘개선환영식’을 하는 군인들의 사진을 걸고 싸움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온 것 같은 위풍당당한 모습만 보여준다. 남베트남 정부가 그렇게 부패했었다면 한국군은 왜 그 정부에 협력했을까? 국방부는 전시장 벽에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문장을 적어두고 전쟁 범죄와 부수적 피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전시물 중에는 베트남전쟁의 영웅인 군인들의 흉상이 있다. 동료를 위해 몸을 던졌거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을 재현해놓았다. 그러나 그곳에 인간은 없다. 전쟁 영웅이 된 군인만 있을 뿐이다. 흉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참전군인들도 없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는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았다. 숫자와 이름으로만 표기된 전사자들의 삶, 귀국 후 트라우마와 PTSD 등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참전군인들, 고엽제 피해 문제 같이 영웅적이지 못한 서사들은 국가의 기록에서 지워지고 없었다. 민간인 학살, 미국에서 일어난 전쟁 반대 운동, 국군 포로, 라이따이한, 난민 문제, 에코사이드 피해 등도 마찬가지였다.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전쟁 피해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전시를 보면서 전시물들이 굉장히 의도적으로 국위선양, 경제 발전, 업적들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라는 문구나 무기, 훈장, 전투 일색의 전시는 더 강한 군사력, 튼튼한 안보가 중요하고, 앞으로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관람객에게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자유 우방의 지원에 보답’, ‘세계 평화에 기여’ 같은 문구에 적힌 ‘자유’와 ‘평화’라는 단어는 국가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수호를 말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어두운 면을 감추려고 하는 전시였다. 전쟁기념관은 말 그대로 전쟁을 ‘기념’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무엇일까? 전쟁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체감하지 못한다. 내가 경험하는 전쟁의 감각은 간접적이다. 나는 전쟁 장면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전쟁 당시 학살된 이들의 유골을 닦고, 전쟁에 사용될 전투기와 정찰기를 보고, 사격 훈련의 총성을 듣는다. 간접적인 경험이지만 그런 순간을 지날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 위압감, 슬픔, 답답함 같은 계열의 것이었다. 전쟁기념관이 전시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득이 되는, 숭고한, 거창한 종류의 것들은 아니었다. 이런 괴리가 전시를 어딘가 이질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전시가 표현하는 것 사이 이질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탐구하기 위해, 전쟁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에 대해 질문할 필요를 느꼈다.
질문하는 일은 국가가 일부러 언급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 외면하는 것에 저항하는 일이다. 프로젝트 구성원들과 함께 해외파병실을 탐방하며 문제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법한 내용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두 번째 방문, 한 참전군인의 관점을 통해
류진성 님과 전쟁기념관 해외파병실을 돌아보았다. 류진성 님은 68년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피해에 대해 법정 증언을 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이다. 류진성 님은 전쟁을 ‘기념’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말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기념관 주위 공원은 자주 오지만 내부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우리와의 방문이 첫 방문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탐방이 끝나고 난 후에는 이곳에 굳이 다시 오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류진성 님은 해외파병실 전시가 밝은 면만 나타내고, 이면의 어두운 부분들은 숨겨두어 옳지 못하다고 이야기했다. 전시에 거짓말들이 섞여 있다고도 했다. ‘한국군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드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고 적힌 흰색 표지판이나, 전쟁 영웅 흉상 등을 보며 한 말이다. 국방부는 민간인 학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정의로운 한국군의 이미지 뒤에 숨겼고, 전쟁의 결과를 긍정적으로 나타내는 데 일조하는 영웅의 모습을 만들었다. 류진성 님은 전쟁은 즐거운 것도,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라며 명암을 모두 조명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전시에 대한 생각을 어떻게 전개할지는 관람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참전 당시에는 전쟁의 배경과 동기 등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 전쟁 경험을 새롭게 이해하게 된 류진성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참전군인 당사자로서 전시를 보는 사람의 감정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어떤 이들에게 그곳은 자신이 한 일의 의미를 확인하는 곳일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 그곳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끌어 내는 매개일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업적을 되새기는 장소일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왜곡된 기억으로 다가갈 수 있다. 혹은 모두 다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복잡함을 이해하는 데에도 배움이 더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찾아내고 기록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일률적으로 구성된 국가의 거대한 서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언어로 전쟁의 기억을 다시 살피고 쌓으면 좋겠다. 국방부가 쓰는 ‘자유’와 ‘평화’라는 낱말을 다르게 사유할 방식을 찾고 싶다. 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번 구술 작업에 대한 기대가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찾고 기록해나가며 타인의 시선을 통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관점을 넘어 ‘다른 이’의 이야기를 통할 때 우리는 타인의 경험,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뭉뚱그려진 집단의 서사가 아니라 개인이 말하는 삶 이야기를 읽어내게 된다. 그 보통의 기억 속에서 고통, 감각, 감정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이응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11학년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구술활동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