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2024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세미나_한국의 베트남전 참전,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2024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7월 공부 모임은 최정기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강유인화 「한국사회의 베트남전쟁 기억과 참전군인의 기억투쟁」 두 개의 논문 이야기입니다.


지난 7월 8일에 열린 세미나에서는 최정기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민주주의와 인권』 과 강유인화 「한국사회의 베트남전쟁 기억과 참전군인의 기억투쟁」, 『사회와 역사』, 한국사회사학회의 논문을 가지고 문제의식과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발제는 구술활동에 함께하고 있는 현정과 정원이 맡아 주었습니다.



최정기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현정 발제 中


"본 연구는 한국군의 베트남참전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 오늘날 한국에서 베트남전에 관한 기억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현재 베트남의 전쟁 관련 기념물에서 한국군에 대한 시설들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셋째, 양국에서 공식기억과 다른 대항기억들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논문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기억에 관한 굉장히 다양한 단어들이 등장하더라고요. 개인적인 기억, 피해자 기억, 당사자 기억, 국가의 기억, 공식 기억, 대안 기억, 집단적인 기억, 사회적인 기억 이런 것들이 나타나요. 이러한 기억들이 우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망각을 강요당하는 것보다는 주체적으로 기억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해를 했어요. 그런데 그 중 어떤 단위의 기억이 바람직한지는 조금 고민이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국가가 어떤 기억을 만들려고 할 때, 선택적으로 기억할 때의 한계도 이 논문 속에서 읽을 수 있었어요. 국가하고 사회하고 집단의 기억이 어떻게 차이가 나고 그럴 때 여기에서 나는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집단 기억이 언제나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가 바람직한 건지는 고민이 돼요. 그리고 저는 당사자 기억이라는 게 되게 재미가 있었어요. 특히 이 논문에서는 전두환 신군부 정권을 예로 들면서 이때 이 정권 안에 있던 사람들 본인들이 참전군인이었지만 이 사안에 관해서 적극적인 기억 만들기 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있었어요. 당사자들이 단지 어떤 공간에 같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당사자기억이 만들어지지 않는구나 싶었어요. 다양한 이유로 당사자가 될 수 있기도 또는 아닐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나였다’는 마음보다 ‘나일 수도 있었다’라는 마음이 더 당사자성에 가깝지 않을지 이런 고민도 들었습니다. 

 

기억하는 것에 중요한 점은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것일 텐데요. 기억되는 것에도 당사자 참전군인의 고통이 있지는 않은지 그런 고민은 사실 들었어요. 제가 난민 프로젝트를 하면서 거기서 난민 당사자분들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말씀을 들으면서 되게 죄송했거든요. 이분들한테는 정말 인생에서 너무 힘든 기억이었는데 그것을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잖아요. 계속 상기하는 데 치유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안전한 공간에서 되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 상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기억한다는 게 고통이 있진 않은지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기억의 중요성이 이 논문에서는 지향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까 국가기억의 어떤 폭력성이나 한계를 읽었기 때문에 무엇이 사회인지, 국민 정서라고 할 때 이 국민 안에는 뭐가 포함되는지 이런 고민도 들더라구요. ‘국민을’이라는 표현을 생각하거나 한국사 교과서 관련한 여러 논의들을 생각하면 국민은 공교육을 수료한 사람일까?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그런데 사실 학교에서 한 모든 교육을 누리고 정말 깊이 간직하는 것도 아닌가 싶어요. 


기억을 만들 때 매체의 역할은 무얼까 생각했어요. 

예전 같은 경우에는 모두가 저녁 먹고 TV를 보고 뭐 이런 것이 일반적으로 여겨졌다면 요새는 TV를 보는 사람도 있지만 OTT 서비스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보거나, SNS로 알고리즘에 뜨는 굉장히 짧고 다양한 콘텐츠들을 소비하는 상황에서 매체의 기억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무엇이 효과적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또 사회적인 기억이라고 하면 정치적 참여가 떠오르는데요. 시민단체나 아니면 정치 단체에 참여하는 게 어떤 사람 사람들한테는 친근한 일이고 또 어떤 사람들한테는 되게 먼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것에 관해서도 시민단체와 대중이 언제나 같은 곳에 있는지 이런 생각도 조금 하긴 했습니다. 뭔가 답이 없는 질문들인 것 같기도 해서 좀 웃긴데요. 그래도 이렇게까지 기억하려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이 논문이 어떤 상처나 고통에 대한 부분을 쓰진 않았어도 되게 인상 깊었거든요. 우선 피해자가 있었고, 고통이 있고, 그래서 좀 더 넓은 우리로써 우리에게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기억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반복하고 않고 싶으니까 평화를 위해서 기억이 필요한 거죠. 아카이브평화기억 소개에 전쟁 기억을 평화의 지렛대로 삼고자 한다는 말이 이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강유인화 「한국사회의 베트남전쟁 기억과 참전군인의 기억투쟁」

정원 발제 中


본 연구는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에게 국가유공자라는 지위변화를 가져온 참전기념물 건립운동에 주목하여 참전 기념에 내재한 모순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참전군인들의 기억투쟁 과정과 이를 야기한 베트남전쟁 기억의 다층적인 차원을 살펴보았다. 파병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전쟁에 관한 한국 정부의 기억은 국가안보와 경제발전을 이유로 참전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참전의 의의를 강조한 것과 달리 참전군인들은 오랫동안 잊혀진 존재였다. (중략)


그간의 참전군인 기억 투쟁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어요

참전군인들은 베트남전 파병을 정당화했던 정부의 참전 기억에 기대어 사회적 위상을 확립하고 전쟁이 가져온 피해를 인정받으려고 했어요. 전쟁 동원의 피해자이자 고엽제 피해자로 등장했던 참전군인들은 자신들을 배반했던 정부가 참전 기억을 반복하는 가운데 '전쟁피해자'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당당히 참전 용사이자 유공자로 인정받게 돼요. 그러니까 단순히 어떤 피해를 인정받는 것뿐만 아니라 정부가 참전 기억을 정당화했던 언어를 그들이 반복하게 된 것이죠. 논문은 발전에 기여한, 혹은 굉장히 남성적인 용사와 유공자로서의 위치성을 가지고 존경과 예우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참전군인들의 운동이 진행이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현재까지 참전 군인들의 기억투쟁 과정이 베트남 민간인 피해의 기억을 보호하지 못하고 이를 참전군인에 대한 명예훼손 문제로 치환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지점이에요. 또한 참전군인이 용사와 유공자이자 동시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 혹은 피해의 기억에 대한 인정이 충돌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이 부분이 그들의 기억 투쟁에서 조우하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참전기념비를 분석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전사자와 생존자의 이름이 뒤섞인 기념비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자를 추모하기보다 전쟁에 대한 탐구 여부를 확인하고 참전을 기념하는 장소로 기능합니다.' 그 말은 이제 전쟁 때문에 전사한 사람과 전쟁에 참여해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름이 추모비에 추모나 이제 반성의 의미로 적혀져 있는 것이 아닌, 참전 자체를 기념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전쟁으로 잃어버린 것을 추모하는 것이 아닌 전쟁에 참여를 했냐 하지 않았냐, 그리고 참전 자체를 기념하는 장소로 기능한다는 비판입니다. 이러한 기념물에는 전쟁을 성찰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기념물의 형상화된 전투병의 몸은 폭력 앞에 취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닌 두려움 없는 전사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전쟁의 고통스러운 피해자로 등장했던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은 전쟁의 가해자로 호명되던 불명예를 뒤로하고 국가의 안위를 지킨 영광스러운 의무의 이행자로 명예로운 전사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피해와 가해의 기억들은 삭제 봉합된 채 국가에 대한 유공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국가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과 참전 군인들의 기억투쟁이 맞물리다 보니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어떤 피해와 가해의 기억들은 배제된 채로 투쟁이 흘러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전을 기억하는 문제가 전쟁에 대한 참가를 명예화하는 문제로 치환될 때, '전장의 안과 밖' '전쟁 종결 선언 이전과 이후'에 전쟁 상흔이 역사화될 자리는 사라지고 만다 

참전을 기억하는 과정이 참전 군인의 경험을 명예화 하지도 삭제하지도 않으면서 전쟁의 상흔들을 치유하는 과정일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이 와닿았어요. 직접적인 국토 방위책이었다는 베트남전쟁에서 적은 도구였으며 위협의 실태는 무엇이었는가를 재사유할 때 참전 및 기억은 피해와 가해 모두를 껴안으면서 전쟁을 정당화하지 않는 평화와 연결될 것이다라고 마무리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이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참전을 기억하는 과정이 참전 군인의 경험을 명예화하지도 삭제하지도 않으면서 전쟁의 사연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저희가 구술 활동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전군인분들을 만나면서도 그리고 그 참전군인과의 소통에서 생길 수 있는 충돌 지점들에 대한 어떤 고민과 상통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생각 더하기


석미화 참전군인이라는 존재는 고엽제와 관련해서는 피해자의 위치를 갖고 있고 민간인 학살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해자의 위치성을 가지고 있어요. 두 논문에서 호명하는 참전군인이라는 존재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단체화된 참전군인 집단인가 아니면 개별적인 존재인가라고 했을 때 여러 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거든요. 그랬을 때 참전군인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구술 활동을 해나가야 할 것인지 질문이 생겨요. 참전군인이 가진 복잡하고 다양한 당사자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지점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나가야 된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그리고 이 전쟁이 한국의 전쟁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복잡해지는 겁니다. 한국의 위치성 또한 고민해 나가야 해요. 한국전쟁과는 또 다른 전쟁이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에 또 미국을 지원하러 간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의 당사자는 아니예요. 그랬을 때 이 전쟁에서 우리가 갖는 위치성, 한국과 참전 군인이 갖는 위치성이 무엇인가요. 베트남 현지에 가면 실제로 한국군을 미군으로 인식을 해요. 위령비에 한국군을 미군이라고 적어놓기도 하고요. 

그 안에서 드는 생각은 어떤 한국의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위상 속에서 우리는 이 역사 문제를 어떻게 인식해야 될까? 한국군 민간인 학살 문제도 얘기할 때 미국의 존재가 없어요. 그랬을 때 우리는 이 전쟁과 당사국인 미국을 어떤 위치로 인식하고 이야기해야 되는가는 빼놓을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한 민간인 학살을 규명하고자 하는 시민사회 활동과 참전 군인의 유공자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으려는 움직임은 이미 20년의 세월을 건너왔어요. 참전 군인이 본인들의 위치성을 유공자로서 전환하는 과정 속에 민간인 학살 문제가 어떻게 작용을 했을까라고 하는 질문이 있어요. 실제로 참전군인이 베트남 전쟁을 유공화하는 그 과정에 대해 이 활동을 하면서 고민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역사가 있다 했을 때 우리는 이 민간인 학살 문제라고 하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시민사회 활동과 그다음에 참전군인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왔고 현재 이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부분도 우리의 논의 속에서 고민을 해나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논문 자체는 우리가 참전 군인을 만날 때 어쨌든 역사적 사실과 참전의 배경과 참전 규모와 이런 숫자들과 정보들을 다 입력하고 만난다 하더라도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이냐의 문제에 있어서 그동안에 보도됐던 언론 보도에 등장한 참전 군인과 관련된 여러 가지 단어와 용어와 언어와 그런 어떤 보도들 이야기들 속에서 소통의 노력들을 어떻게 해나가야 되는지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논문이거든요. 이 논문을 보시면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참전 군인과 소통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그 시간만큼 여러 여기 계신 분들이 지금 이제 참전군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조금은 내가 거기에 대해서 얘기할 준비가 되었을까라고 하는 질문을 가져보시면 좋겠어요.


박내현 두 분 발제 너무 잘 들었고요. 이 논문을 작년에도 읽었던 것 같은데, 참전군인을 만나고 나서 또다시 읽으니 새롭게 읽히는 것 같아요.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실존하는 인물을 만나고 나서 이 글을 읽으니까 좀 다르게 읽히는 부분들이 확실히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고요. 사실 아까 이제 현정 쌤이 해주신 발제 중에서 국가의 기억과 개인의 기억, 그리고 사회의 기억이 서로 부딪칠 때 어떻게 바라봐야 될까 하는 이야기들을 해주셨는데 저도 그 부분이 고민이 많이 되더라구요. 사실은 대부분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들은 기억과 기억의 싸움인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근데 저희가 꼭 잘 들리지 않는 기억만 기록한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들리는 기억도 그 기억 안에 고통이나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고 다만 저는 제가 듣고 싶은 기억이 있어서 기록을 한다고 생각을 해요. 이게 잘 들리지 않는 기억이어서 내가 뭐 이걸 들어봐야지라고 한다기보다는 듣고 싶은 기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냐면 교향악단이 야외에서 오케스트라 합주를 하는 걸 제가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해외에서 오신 유명한 지휘자가 지휘를 하고 스타워즈 주제가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음악을 연주를 하고 있었거든요.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와서 듣고 있었는데, 중간에 그분이 애국가를 이제 갑자기 연주를 하신 거예요. 근데 갑자기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어나시더라고요. 저는 그게 굉장히 낯설었거든요. 어 이게 뭐지. 왜 누가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고 시도를 주지 않았는데 애국가 앞 소절이 나오자마자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일어나셨던 것 같아요. 일어나서 이제 그 애국가를 듣고 이제 자리에 다시 앉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 저는 뭔가 소름 끼치는 그런 느낌이 좀 있었어요. 언제부터인가 전 국기에 대한 경례라던가 아니면 애국가 제창을 할 때 같이 일어나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사람이기는 한데 그게 저한테 너무 익숙한 어떤 경험들인데 어느 순간에 우리는 굉장히 동일한 기억이나 경험, 습관을 가지고 한 덩어리가 되는구나라는 걸 우연한 기회에 느꼈어요.

저는 이제 베트남전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사실은 이 베트남전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사실로 알게 된 게 아니에요. 민간인 학살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베트남전을 만나게 됐고 거기에서 등장하는 참전군인들은 사실 그렇게 그닥 좋지 않은 이미지로 되게 폭력적이거나 소통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는 가스통 할아버지 같은 이미지로 표상되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랬기 때문에 저는 그 당사자를 좀 만나고 싶다. 이 사람은 왜 내가 이렇게 싫어하는 국가, 제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이 국가를 위해서 이 사람은 가서 싸우고 저렇게 자기 명예를 위해서 또 이렇게 막 화를 내고 이럴까 그게 너무 궁금해서 이 기록에 참여를 하게 됐던 거거든요. 

제가 만났던 참전 군인도 나이가 80이 다 돼 가시는 분인데 어 본인의 의지 아닌 약간 이렇게 누군가가 이분을 꼴 보기 싫어해서 월남으로 보내버린 거였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헤어지게 되는 그 장면을 팔십 먹은 노인이 지금도 이야기하면서 펑펑 우셨던 거를 저는 굉장히 당혹스럽게 기억이 되더라고요. 거의 60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기억이 되는구나. 러면 이 사람에게도 이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기억인데 그런데 또 이 사람에게 베트남 참전은 그렇게 고통스럽기 때문에 명예라도 없으면 너무 또 괴로운 기억인 거예요. 어 굉장히 이 사람도 굉장히 복잡한 마음으로 이 베트남 참전이라는 것을 해석하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좀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현정 쌤 발제를 들으면서 ‘당사자 되기가 무엇일까’라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여러 생각이 들었어요. 전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너무 얕고 저에게 아직도 베트남전은 너무너무 어렵고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좀 뭐가 더 깨져나오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 날 것 같은 그런 전쟁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너무 어려워요. 내가 감정적으론 동의하기 어렵지만 뭔가 맘에 안 드는 이야기를 하셔도 제가 그걸 막 논리적으로 반박하거나 혹은 뭐 다른 말을 이렇게 좀 사실 하기 어려운 그런 관계성을 가지고 구술하고 기록하는 과정들을 겪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사실은 더 해보고 싶은 기록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당사자 되기라고 하는 게 감히 그 사람의 입장에 내가 서거나 혹은 내가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라기보다는 그냥 지금도 내가 겪고 있는 국가폭력이라는 게 있잖아요. 분명히 내가 원치 않는데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는 이 국가라고 하는 존재를 해석하는 방식이 저에겐 당사자 되기인 것 같아요. 이 베트남전을 기록하는 것이 그렇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좀 드리고 싶었어요.

 


참전군인과 만나는 이들로서 우리는 민간인학살, 동원의 구조와 폭력, 베트남전쟁에 대한 사회의 기억에 대해 질문이 생겼어요. 더불어 멀게만 느껴지고, 아직도 어려운 이슈라는 생각도 공유했지요. 하지만 '당사자 되기'라는 논의를 통해 '우리는 이 전쟁과 폭력의 구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참전군인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문제의식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전쟁은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 현재와 연결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과정으로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세미나 마지막에는 본격적인 구술활동을 위한 팀을 꾸렸어요. 잦은 폭우와 습하고 더운 날씨가 연일 이어지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참전군인과의 만남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이 글 너머의 여러분들도 저희의 고민을 함께 나누어 가져 주신다면, 그리고 앞으로의 공론장 자리에 참여해 나누어 주신다면, 더욱 풍성한 논의로 확장될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 탈없이 잘 보내시고, '2024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 소식 드리겠습니다.


정리 글 노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