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공론장 후기글] '푸순의 기적'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것들: 허경아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지난 3년 동안 베트남 참전군인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누적되어 왔던 여러 가지 고민과 문제의식들을 좀 더 넓은 시야로 확장하고자 「병사들의 '전후'(戰後) 과정으로서의 책임과 해석」이라는 주제로 공론장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사례들을 접하면서 기존의 사고방식을 갱신하는 한편, 강좌에서 만나는 청중들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질문을 함께 만들어 갔다.


2024년 4월 30일에 열린 첫 번째 공론장은 「전쟁과 책임: 신중국 전범재판의 일본인 전범문제- 중국귀환자연락회의(중귀련)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과 박사과정 김수용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이야기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중국이 실시한 일본군 전범재판 정책은 연합군이 국제법에 따라 독일 전범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하고, 미국이 극동지역에서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주요 일본 전범들을 유화적으로 처리했던 것과 달리 매우 독특한 성향을 띠었다. 즉시 재판하기보다 1936년에 만주국이 만든 푸순(撫順)감옥을 개조한 푸순 전범관리소에서 전범들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인죄탄백(認罪坦白)과 사상교육이라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 중일전쟁의 가해자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 뒤 법정에서 이들의 죄상을 파악한 후 극소수인 중범죄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을 석방하는 매우 관대한 조치를 취했다.

 

논문은 신중국에서 이루어진 관대한 전범재판에 대해 단지 사회주의 중국의 특수성으로만 보지 않고, 1950년대 신중국의 대일외교와 동서냉전이라는 맥락을 반영해 해석한다. 그리고 일본군 전범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단순한 논리로 귀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중일전쟁 시기 중국공산당 산하 팔로군(八路軍)의 일본 포로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 조사에 따르면 기존 공산당이 지도하는 군대는 모든 병사를 교육하고 정치적으로 교화하는 것을 중요시했고,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 이후 일본군 포로에 대한 정책도 정치적인 교화를 목적으로 수립되었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심리작전에 호응한 일부 일본군 포로가 자발적으로 팔로군에 협조하여 사상교육의 조력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기초 위에서 전후 신중국의 관대한 전범 처리가 가능해졌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신중국의 일본인 전범사례의 특이성을 관대한 재판의 결과에만 한정하지 않고 이들이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의 삶, 그들이 펼친 활동과 일본 사회에 미친 영향도 추적한다. 많은 이들이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 1957년에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라는 단체를 설립하고 자발적으로 중일우호(中日友好)와 반전, 평화운동에 헌신했다. 특히 전범관리소에서 쓴 수기를 모아 《삼광》(三光)이라는 증언집을 통해 일본의 전쟁책임을 환기시켰고 1990년대 위안부 이슈가 일본 사회에 부상할 때도 적극적으로 발언해 우익 사관과 맞섰다. 그들의 활동이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푸순의 기적'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중귀련' 회원들의 노쇠로 활동이 점차 어려워지고, 2002년에 정식 해산하게 된다. 물론 그 이후 '푸순의 기적을 이어받은 사람들의 모임'이 발족해 중귀련의 활동을 이어가려는 작은 단체도 있지만, 이제 일본 사회에서는 누가 어떻게 그들의 역사 기억을 계승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미국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마리안 허쉬(Marianne Hirsch)는 ‘포스트메모리’(post-memory)라는 개념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앞선 세대가 겪은 역사적 사건을 직접 겪지 못한 후속세대들이 구술이나 역사 관련 아카이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상상력을 투입하여 자기 세대를 기반으로 하는 기억을 창조적으로 구축해 전 세대의 역사 기억을 계승하는 행위이다. 시간이 흘러 실제로 역사적 사건을 겪은 세대들이 점점 나이가 들고 세상을 떠나 당사자 증언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 후세대들이 어떻게 이 생생한 역사적 경험을 계승하고 보존하는지가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된다.

 

물론 신중국의 전범 정책은 중국과 일본의 공식 역사에서도 그리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 한국 대중 독자들에게도 매우 생소한 주제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 일본군 전범들이 인죄와 탄백이라는, 자기를 반성하는 방식을 통해 가해자성을 자각하는 과정은 현재 한국 사회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전쟁책임을 인식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주제는 충분히 한국 사회에서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중귀련의 계승자'처럼 한국에서 과거 역사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비체험세대'들이 어떤 식으로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경험을 전승해 그들의 '당사자성'을 획득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도 여전히 계속해서 떠안고 숙고해 나갈 과제이다.

 

 

허경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1945년 전후 한국과 대만의 인구이동, 

역사 기억과 관련된 문학과 문화적 생산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