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공론장 후기글] 증언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 증언을 듣는다는 것은 책임을 나눠 갖는다는 것 : 오뎅

중귀련(중국귀환자연락회), 그들은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으로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이었다. 참전 동기는 모르겠지만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했다. 그들은 중일전쟁이 끝난 후 소련군의 포로로 잡혀서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보내졌다. 중국의 전범 정책에 따라 전범 관리소에서 지냈는데 그곳에서는 일본군들의 문화와 습관을 존중하라고 하고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비교적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이런 관용은 일본군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을 인죄와 탄백이라고 한다.

 

전범 관리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사람 중에는 일본군에 인해 가족이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일본군은 원수였고 마주하기 어려운 관계였다. 하지만 상부에서는 그들과 함께 지내라고 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전과는 다르게 좋은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가해자를 증오하는 마음과 어길 수 없는 상부의 지시 간에 갈등이 많이 됐을 것 같다. 상부의 지시에 순응했더라도 은연중에 증오하는 마음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로도 나타나지 않았을까?

 

일본인 전범과 전범관리소 직원들이 같이 지내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가족이었던 직원들은 트라우마적 상황에 노출되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의 시간을 통과해야 했을 것이다. 일본인 전범이 스스로 잘못을 돌아보고 인정하는 과정은 필요했을지 몰라도 이렇게 또 다른 고통을 겪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중국의 전범 정책은 또다시 중국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관용에 기반한 전범 정책은 통했다고 한다. 전범 관리소 직원과 일본군이 다른 관계를 만들어 갔다고 한다. 증오와 복수를 넘어 다른 관계가 가능했다는 것은 ‘일본군’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지고 나니 그 자리에 인간이 남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군인이 되어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벗어나니 인간으로서의 자리를 자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군인이 되어 전장에서 누군가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폭력의 구조를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 구조에서 벗어나거나 저항할 수 없도록 강력한 제국주의가 군인 한 명 한 명의 삶으로 깊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전범 관리소에서 관용과 학습의 시간을 통해 그동안 삶을 지배했던 것들을 부정하고 가해 행위를 증언하고 성찰하기 시작했다. 다른 삶의 기회를 가지며 용기가 생겼던 것이다. 인죄와 탄백은 가해 사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식하고 반성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것은 단순하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구조에서 가해 행위를 저질렀던 자기방어와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며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과정이었다. 그 일은 매우 어렵고 한순간 이루어지는 게 아닐 것 같다. 그래서 증언을 한다는 것은 사과와 반성을 넘어서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 일에 직접 가담한 사람으로서 외면하지 않고 이 일의 진실을 알리고 사과하고 반성하는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증언을 한다는 것은 내가 결코 이 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림으로써 앞으로 계속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아닐까. 그리고 듣는 자리에 있는 이들이 그 역사적 책임을 나눠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뎅 

오다준,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