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눈과 발 사이]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 '평화'는 없었다 - 전쟁에 관한 국가 주도 기념물은 기록인가 정치 프로파간다인가 ①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오래도록 나는 베트남전쟁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내 어릴 적 베트남전쟁은 가장 먼저 월남치마를 떠올리게 한다. 알록달록한 문양의 긴 통치마가 인상적이었다. 더 강력한 기억도 있다. 김추자 노래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 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가사만 생각해도 멜로디가 머릿속을 맴돌고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행했다. 나는 여가수 얼굴이 김 상사처럼 가무잡잡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때가 아마도 국민학교 2, 3학년이지 않았나 싶다. 어린 시절의 월남전은 나와는 그다지 상관없이 마치 유행처럼 지나가 버렸다. 


월남전이 내 기억에서 멀어졌다가 잠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일본에서 유학 중이던 1990년 가을쯤이다. 일본인 친구가 졸업논문 주제로 월남전을 다룬 한국소설에서 라이따이한 문제를 보고 싶다며 내게 조언을 구했기 때문이다.

그때 여러 소설을 찾아보았는데 지금 기억에 남은 건 안정효의 <하얀 전쟁>이다. 유독 이 책이 기억에 남은 것은 언젠가 원작의 영화를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때 잠깐 조사해 본 베트남전쟁은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PTSD, 고엽제 문제가 메인 이슈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도움으로 조사한 것이라 아직 베트남전쟁은 내 연구 일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나는 내 연구 주제인 일본군위안소제도·'위안부' 문제에 천착하다가 다시 베트남전쟁과 만났다. 한국에서 1999년 <한겨레21>이 베트남 한국군 민간인 학살에 대해 연속 보도를 한 직후의 일이다.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한국 시민단체 운동이 일본정부의 국가책임을 요구한 것에 대항하여 일본 우익이 베트남 한국군 민간인 학살사건을 일본의 국가책임을 상대화하는 이슈로 끌어들여 시끄러웠던 때이다. 돌이켜 보면 이 시점이 내게는 베트남전쟁을 능동적으로 나와 연관시키기 시작했던 때인 것 같다.

2024년 아카이브평화기억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의 시민 활동에 지원하였다. 그 덕에 나는 어릴 적 나를 아껴주던 외척 아저씨가 월남 참전군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이야기한 전투와 1년의 참전에서 파생한 몸의 기억, 삶과 죽음, 신앙 등에 관해서 생각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는 여전히 말할 수 없거나 혹은 말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는 걸 짐작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나는 베트남전쟁과 더 많은 연관이 필요해졌다. 올해는 아카이브평화기억 동료들과 함께 (베트남)전쟁과 평화 관련 기념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정된 곳이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과 월남파병용사만남의장이다.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프로파간다가 여전한 21세기의 기념물들

답사 당일(6.20)은 춘천역에 내리자 비가 쏟아졌다. 우리가 처음 찾아간 곳은 춘천역 근처에 자리한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아래 공원)이다. 보통 대첩하면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나 이순신의 한산대첩은 들어 보았어도 춘천대첩은 처음이었다. 이 용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공원에 '춘천대첩' 전사(戰史)를 쓴 장순휘(육사 38기)라고 전한다.

일반적으로 춘천(지구)전투로 부르는 1950년 6월 25일부터 27일까지의 일련의 승전한 전투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승전'에 방점이 있다. 반면 대첩이라는 용어 사용을 경고하는 연구(이경구, '대첩 용어의 변천에서 본 역사용어의 공공성', <개념과 소통> 제35호, 2025.6)도 있다. 대첩은 "우리의 승리와 상대의 패배가 짝 지워진 영광과 굴욕의 용어"이다. 따라서 "'이민족의 침략에 대항하여 거둔 큰 승리'를 기준으로 제한"할 것을 제안한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려면 꼭 사유해야 할 지점이다.

공원은 한국전쟁 50주년을 기념하여 2000년 6월 26일에 조성되었다. 공원은 탁 트인 평지에 각종 기념물이 줄지어 서 있다. 공원 안에서 가장 중심 기념물은 '춘천대첩'을 재현한 조형물이다. 공원 정문은 마치 홍살문을 세우듯 도로에 면한 쪽에 돌문이 서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정중앙에 군인 뒷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공원에 세워진 여러 군인 조형물 중에 유일하게 북쪽(강쪽)을 향해 서 있다. 이 군인 조형물은 망원경으로 북쪽을 정찰하려는 모습이다. 북한의 '남침'에서 남한을 지킨다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 정찰병을 가운데에 두고 좌우 각 세 명씩 군인이 줄지어 배치되어 있는데, 무릎을 낮추고 수류탄을 던지거나 총을 겨눈 자세거나 또 완전 군장을 하고 행군하는 모습 들을 하고 있다. 이들 조형물의 왼편에는 대전차포를 쏘려는 군인 둘과 포탄을 들어 올리는 학도병이 서 있고, 조금 거리를 두고 군인들을 향해 포탄 지게를 지고 민간인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이 조형물은 "국군 6사단을 중심으로 애국시민, 학생, 경찰이 하나되어 (중략) 나라를 구한" 행위를 애국심으로 평가하고 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든 조형물인 셈이다. 조형물은 그곳에 적혀 있는 설명을 읽지 않더라도 한국인이라면 꽤 익숙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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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춘천대첩'에 관한 전사를 읽다 보면 군인의 참전 외에 "애국시민, 학생"이 별다른 고민 없이 들어가 있다. 아니 오히려 국가를 위한 숭고한 정신이라거나 애국심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미화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법이 정한 범주 내에서 국가가 국민을 전쟁에 징병할 수 있고, 또 법에 근거해 민간인을 동원할 수는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만들어진 전쟁 기념·추모 공원에서 여전히 민간인을 동원한 전투 행위를 아무런 성찰 없이 애국심으로만 미화하는 전시는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전쟁을 하는 데에도 지켜야 할 규칙과 선이 있다.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우리가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6.25 전투를 설명하면서 민간인의 전투 참여를 당연한 것처럼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여 온 게 아닐까.

이들 군인 군상과 함께 공원이 조성될 때 세워진 석비가 하나 있다. 건립 취지 글에는 1975년 "당시의 모습과 건립 취지를 영원히 간직하도록 빛나는 자취를 남겼"다고 적고 있다. 빗물에 젖어, 석비 위에 얹은 검은 대리석에 새겨진 탑 모형은 보이지 않았다. 이전(移轉)도 아니고 도시 개발에 밀려 철거해 버렸던 탑의 흔적을 왜 이제 와서 무엇을 수호하려고 과거로부터 소환한 것일까. 대답은 석비에 새겨넣은 이은상의 '잊지 않으리'라는 시구에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0, 70년대의 안보의식을 박제한 석비는, 지금 우리를 통일로 향해 걸어가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 우리의 발목을 잡는 족쇄나 철구(鐵球, 족쇄에 달린 무거운 쇳덩어리)처럼 활용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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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호의 탑’(2000.6.25. 건립) 1975년 ‘춘천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춘천시 6.25 전적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건립한 ‘격전의 땅 자유의 수호탑’이 1995년 소양 2교 확장사업 때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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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수호의 탑’(2000.6.25. 건립) 석비의 경사진 윗면에는 ‘자유수호의 탑’모형을 새겨놓았다고 한다. 측면에 이은상의 시와 건립개요가 있다



공원에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참전군인 중에 전공을 세운 무공수훈자들을 위해 건립된 '武功塔(무공탑)'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다. 이름에서 보듯이 전사자의 추모비가 아니다. 탑 기단에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춘천시지회 회원 생존자 총 327명과 고인 91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을 훑어보다가 마음이 먹먹해졌다. 전쟁에서 무공수훈이 빛이라면 그림자는 인간의 죽음일 것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자는 군인만이 아니다. 민간인도, 아군도, 적군 들의 죽음도 있다. 참전군인들의 죽음과 지난 전쟁 들에 대한 성찰 없이 우리는 빛으로만 새겨진 탑을 언제까지 자랑스럽게 후대에 전해 줄 수 있을까.

또한 춘천전투 기념물에 '북괴군' 또는 '적' 심지어 '붉은 무리'라고 지칭하며 반공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듯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조국 통일'과 '평화'를 외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무영탑의 '호국노병 김동기'가 쓴 '나의 사랑 조국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읽다 보면 평화보다는 분노와 적을 증오하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진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전해서 목숨을 잃거나 혹독한 체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그러나 우리는 1972년 독재정권 시절에도 7·4남북공동성명을 선언했고, 김대중 정권 시절의 햇볕정책, 6.15남북공동성명, 2018년 평양공동선언까지 하였다. 남북통일을 지향하자고 악수하고 돌아선 얼굴로 여전히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하는 것은 전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신호로 보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쟁을 체험하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안보를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통일과 평화를 지향한다면 반드시 고심해야 할 부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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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탑(2003년 건립)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 무공수훈자 이름이 함께 담긴 조형물이지만 6.25 참전군인의 글이 있음으로 인해 한국전쟁 관련 조형물처럼 보일 수 있다. 건립 취지에는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들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며 민족 정기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했다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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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탑(2003년 건립)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참전 무공수훈자 이름이 함께 담긴 조형물이지만 6.25 참전군인의 글이 있음으로 인해 한국전쟁 관련 조형물처럼 보일 수 있다. 건립 취지에는 “애국애족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시민들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며 민족 정기 선양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건립했다고 쓰여 있다.



이러한 취지와 목적의 기념물이 2025년까지 약 25년 동안 꾸준히 추가되어 지금과 같은 대형 기념공원이 된 것이다. 즉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이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가장 먼저 생겼고, 이후에 무공탑(2003.10.11), 육이오참전학도병기념탑(2004.6.30), 근화동 전적지(2010.6.25), 미군 추모석(2013), 월남전참전기념탑(2017.10.14), 충용의 터전(2019.4.30), 6.25참전유공자기념탑(2025.4.4.)이 덧붙여졌다. 2000년대 들어서 과거사 위원회 활동과 베트남 참전자들의 기억 투쟁 등이 활발해지면서 이러한 기념관이나 추모비 등의 건립도 빈번해졌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공원의 조형물은 총 8기인데, 춘천지구전투 관련 조형물이 6기이고, 연관성이 불분명한 것('충용의 터전')이 1기, 나머지 1기가 베트남전쟁 관련 조형물이다. 기념물이 추가된 취지나 방향성을 살펴보면 전체 공원의 취지가 참전군인의 죽음을 기억하면서도 아쉽게도 통일 지향적인 구성으로 조성되지는 않았다.

'충용의 터전'(첩보부대)처럼 건립 주체도 춘천전투와의 관련도 명시되지 않은, 이곳에서 가장 돌출적이고 애매한 성격의 석비도 있다. 미군 추모석이나 수호탑처럼 도시 개발에 밀려 옮겨지거나 또 특이사항 없이 동일 주제의 조형물('춘천대첩')이 25년의 시간 차에도 불구하고 내용에 큰 차이 없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미군 추모석의 경우는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미국 참전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취지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당초에 누가 왜 이들 14개의 동판을 만들었는지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현재로서는 (이미 있던) 동판을 강원도가 어린이회관 부지에 추모석으로 봉안, 관리하다가 춘천시가 2013년 이곳 공원으로 이전했다는 사실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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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부대의 ‘충용의 터전’ 석비와 미군의 추모석 석비에는 1,190명의 첩보대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추모석은 의암호 자전거도로 개설 공사를 하면서 2013년 이곳으로 옮겼다. 『3일간의 방어, 대한민국을 지킨 춘천대첩』(206쪽)에는 ‘6.25전쟁 참전 미군 전사 추모석’으로 실려 있다. 추모석(왼쪽 위 사진)은 ‘아래 고인을 추모하며’라고 시작하여 미군 제25보병사단이 멀빈 오 핸드리취(제5보병연대) 상사에게 서훈을 내렸다는 내용(영문과 한글)이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투 중 경남 마산 서쪽 서북산 부근에서 1950년 8월 26일에 사망하였다. 그는 춘천지구전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공원이 조성되고 25년 후에 '6.25참전유공자기념탑'이 추가로 건립되었다. 이름은 6.25지만 이전 것과 거의 비슷한 내용의 '춘천대첩' 조형물이다. 20년 전보다 자유 수호, 희생과 헌신, 투쟁을 강조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건립취지문). 공원 곳곳에 새겨진 '희생'과 '협력'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군·국가에 의해 전쟁에 동원된 국민의 죽음은 국가의 책임이다. 그런데 그 죽음을 희생과 협력이라는 서사로 만들면 국가의 책임은 드러나지 않고 애국심으로 미화되어 개인의 능동적인 판단과 책임이 강조되는 구조가 된다.

더하여 이러한 서사는 개인의 애국심으로까지 유도되기 쉽다. 참전군인에게는 명예와 보훈의 서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에게 국가책임을 성찰할 기회를 방해한다. 한편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조형물의 규모가 커지고 화려해졌다. 그런데 야외에 세워진 기념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기념물 앞에 머무는 시간이 통상 얼마나 될까? 비용(세금)적인 측면에서도 과하지 않게 추모·기억할 수 있는 형식에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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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유공자기념탑 기념탑 기단 위의 군상은 해군, 경찰, 청년방위군, 육군, 공군으로 군인 중심으로 재현되고 있다. 포탄을 나르는 민간인과 학도병, 여공의 ‘협력’을 애국심으로 강조하면서도 기념탑 위로 올라가는 동상에서는 이들 민간인은 빠져 있다.



2025년 기념물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여공의 존재였다. 안내판에는 '여공'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조형물에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전사를 설명하는 곳에서는 '민간인' 속에 가려졌고 안내판에는 '주먹밥을 전달하는 부녀자'로 둔갑하였다. 시각화된 화려한 황동색 부조인물상도 '부녀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사업은 대체로 어린 미혼여성 노동자의 비중이 높았으니 제대로 된 설명이라면 여공이라고 통일하는 게 적절하다. '춘천대첩'에서 춘천제사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의 "전투 지원" 사실은 이미 밝혀져 있다.

당시 6사단 7연대 2대대 6중대 화기소대 일등병이었던 안원흥의 증언이 춘천시청 소식지 <봄내>(2016년 6월호, 305호, 18쪽)에 실려 있다. "거 제사공장 댕기던 아가씨들이 전쟁이 났는데도 나와서 밥을 지어 가지고서 군인들한테 주먹밥을 만들어 가지고서 청년단들이 공급을 하고..." 당시 제16포병대대 장교였던 김운한은 "1950년 6월 25일 당시 춘천제사공장이 휴업중"이었다고도 증언한다('3일간의 방어, 대한민국을 지킨 춘천대첩' 186쪽).

이 공원의 총체적 문제는 아마도 사건에 대한 세세한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는 대신 부족한 부분을 그저 '애국심' '자유 수호' 등으로 채워버리려는 데 있다. 아니면 미성년이나 민간인의 국가 동원이라는 국가 책임 측면을 가려버리려는 의도인 걸까. 전쟁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한번쯤은 한국전쟁에서 민간인과 학생의 전쟁 동원을 지원, 애국심이라는 미명으로 외면하지 말고 국가책임이라는 측면을 직시하자.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평화는 추상명사에서 구체적인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 건립된 월남전참전기념탑은 '전쟁에 관한 국가 주도 기념물은 기록인가 정치 프로파간다인가②'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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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발 사이]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 '평화'는 없었다 - 전쟁에 관한 국가 주도 기념물은 기록인가 정치 프로파간다인가 ① (26.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