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눈과 발 사이] 죽음 이후에도 '총 든 군인'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 - 총을 내려놓은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강원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분단을 경험한 지역 중 하나이다. 미국과 소련은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나누어 점령했다. 춘천은 38선이 지나는 도시였고, 한국전쟁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지금도 춘천에는 전쟁을 기념하는 유적지가 많으며, 인근 화천에는 과거 베트남전쟁 참전군인들이 훈련받던 오음리도 있다.

한편, 강원도에서 멀리 떨어진 경상남도 남해군에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지난 2025년 문을 연 6.25·월남전 흔적전시관이다. 강원도와 남해군을 오가며, 전쟁과 군인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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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군인 시민들이 지나는 인도 옆에 총을 든 군인들의 동상이 서 있다.




흔적 1.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전(6월 20일),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춘천역 인근에서 함께 답사하는 동료들을 만나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으로 향했다. 이날의 답사에는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한 분이 동행했다.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은 춘천역에서 500미터 남짓 떨어진 대로변에 있다. 주택가 바로 건너편 의암호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기념탑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춘천대첩의 전투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이 보여 찾기 쉬웠다.

춘천대첩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에 이 지역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를 이르는 말이다. 38선이 지나는 도시였던 춘천은 전쟁의 고통을 가장 먼저 겪었다. 적은 수의 군인과 민간인들이 3일간 북한군에 맞서 싸우며, 필사적으로 이동을 저지한 일을 국가는 '춘천대첩'이라 부르며 기념한다. 전쟁의 고통을 압도하는 승리의 서사가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 승리의 서사는 군인들의 명예와 안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는 '평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투 중인 용맹한 군인의 형상만이 강조된다. 6·25참전 유공자기념탑, 육이오참전학도병기념탑, 무공탑, 월남전참전기념탑 등 공원의 시작부터 끝까지 늘어선 탑과 조형물들의 이미지는 한결같다. 군인들은 모두 총과 무기를 든 모습이다. 마치 무기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것처럼. 아무리 한때 군인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총을 든 모습으로만 그들을 기억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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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평화공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총과 무기를 든 군인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시종일관 '조국'과 '나라 사랑'을 강조하는 이곳이 지나는 시민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했다. 나와 동료들이 이곳을 답사하는 동안 등산복을 입은 관광객 몇 명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있을까, 호기심을 보이며 다가왔다가 이내 무심하게 사라졌다. 그들이 '조국'과 '나라 사랑'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몰라도, 수없이 반복된 전쟁과 군인의 전형적인 이미지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은, 다리 확장 공사로 '자유수호의 탑'을 이전하면서 2006년 개장했다. 이후 2017년 월남전참전기념탑이, 2025년에는 6·25참전 유공자기념탑이 조성되며 지금 모습을 갖추었다. 위풍당당한 기념탑이 늘어갈수록 세간의 관심도 집중되었을까? 그날 우리가 본 곳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이었다. 어쩌면 '총을 든 군인'의 모습으로 말하는 평화에서 외면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흔적 2.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춘천역에서 27킬로미터, 차로 30분만 가면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에 도착한다. 파월장병훈련소였던 제7보충교육단이 있던 곳으로, 산세가 험하고 38선과 가까워 해방 이후부터 군부대가 주둔했다. 베트남전쟁 참전기간 동안 이곳에서 수십만 명이 군사훈련을 받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에는 특수부대의 주둔지와 훈련장으로 쓰였다. 지난 2008년에는 이 자리에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들어섰다.

춘천을 벗어나 오음리에 가까워질수록 바깥 공기가 달라졌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에 운무가 드리웠다. 어느새 꽤 깊은 산속까지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차에서 내리며 낯선 한기를 느꼈다. 널찍하게 조성된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시설 안에는 주말임에도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고, 짙게 깔린 운무와 부슬거리는 비가 한기를 더 돋우었다.

문득 그 한기가 추위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쟁터로 가기 위한 훈련을 받으러 깊은 산속에 모인 청년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참전군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곳에 왔다. 설사 자원해서 왔다 하더라도 이곳에 발을 디딘 순간 비로소 전쟁터에 더 가까워졌음을 느끼지 않았을까? 설명하기 힘든 공포와 원한에 휩싸인다는 착각이 자꾸만 몸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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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훈련받던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깊은 산속. 이곳에 문을 연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은 참전군인들의 경험과 연결된 곳이면서도 세상과는 분리된 듯 보인다.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에는 3층 규모의 전시관이 있다.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한 분이 우리의 전시관 관람을 돕기 위해 예약된 시간에 맞춰 나왔다. 안내된 휴관일은 1월 1일과 설날, 추석뿐이었지만, 예약이 없다면 대개 비어 있으리라, 짐작되었다. 전시관 왼편 작은 동산에 마련된 월남파병용사추모비 옆에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강원지부에서 현충일 추모행사를 하며 다녀간 흔적이 현수막으로 남아 있었다.

전시관 내부 1층과 2층의 전시를 관람했는데, 대부분 베트남전쟁에 관한 정보와 훈련 당시의 상황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히 1층 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정보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무척 많았다.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전면 개입하게 된 계기이며 후에 조작되었다고 밝혀진 통킹만 사건, 한국이 파병하게 된 계기 등 이미 국제적으로 정보가 공개된 사건들을 버젓이 왜곡하여 전시해 놓았다.

왜 그런 왜곡이 필요했을까? 군인들의 명예를 지키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해야만 지킬 수 있는 명예가 위태롭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전쟁기념관이 계속 전쟁하기 위해 군인들의 죽음을 이용하는 공간이라면, 이곳은 참전을 위한 훈련이라는 군인들의 실제 경험을 활용하는 공간이다. 그들을 잊지 않기 위한 공간임을 강조했으나, 사실을 왜곡하여 만드는 명예는 이곳을 세상과 점점 더 분리하고 있었다.

함께 방문했던 참전군인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훈련 분위기는 어땠는지, 혹시 탈영병은 없었는지. 기다렸다는 듯 답이 돌아왔다. "한 달 동안 세 명", 60년 전 기억이 망설임 없이 소환되었다. "훈련이 혹독했어. 대충하면 월남 가서 죽는다고." 참전 이후 처음 오음리를 찾은 그는 전시에서 당시의 고통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억의 대상을 선별하는 전시관에 명예가 아닌 고통을 기억하는 자리는 없었다. 



흔적 3. 6.25·월남전 흔적전시관 


명예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군인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화천군의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이 오음리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시작된다면, 남해군의 '6.25·월남전 흔적전시관'은 참전군인들의 심리적 기억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참전군인은 초대된 손님이 아니다. 공간을 방문했을 때 우리를 맞아준 이는 서상길 사무국장이었다. 전시관을 지키고, 안내하는 다른 나이 지긋한 참전군인들처럼 그도 역시 참전군인이다.

6.25·월남전 흔적전시관에는 399명의 군인에 관한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에 참전했으며, 남해군과 인근 지역에 거주 중이거나 이미 사망한 군인들의 기록들이다. 서상길 사무국장이 남해군에 전시관 건립을 제안했다. 그는 이곳을 만들기 위해 전쟁이나 군인과 관련된 국내 기념관과 전시관을 두루 답사했다. 특정 인물 위주로 구성된 다른 공간의 전시와 달리 직접 참전한 개인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도록 공간을 기획했다.

직접 참전군인들을 만나 기록을 모은 이도 서상길 사무국장 본인이었다. 녹음한 음성은 문자로 기록되어, 작은 개인 전시 공간에 배치되었다. 단일한 거대서사로 모이지 않는 다양한 개인 서사들이 같은 공간에서 '흔적'이라는 이름으로 어울리게 되었다. 전쟁은 각 개인의 수만큼 각양각색인 이야기 주제였다. 각자 다른 사연과 감정을 담은 전쟁의 '흔적'에 매료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듣느라 흠뻑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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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월남전 흔적전시관 거대한 영웅 서사 대신 남해군 거주 참전군인들의 개인 기록을 남기는 일에 집중한 공간이다. 



'명예'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진, 그러나 '명예'라는 이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참전군인들의 서사를 이곳에서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 보낸 몇 해가 그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 말하고 싶은 동시에 말하고 싶지 않은 전쟁의 기억.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이 서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끝맺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기억은 다시 평화가 아니라 익숙한 '안보 교육'의 언어로 활용될 위험에 내몰린다.

다만 이곳이 그들을 단지 군인의 모습으로만 남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은 기억하고 싶다. 총을 든 모습은 물론이고, 군복을 입은 모습조차 많지 않았다. 낡게 빛바랜 결혼식 사진, 소탈하게 웃는 노부부의 사진은 그들을 우리와 비슷한 존재로 느끼게 했다. 우리가 하나의 정체성에 머무르길 원하지 않듯, 그들도 군인으로만 기억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테다. '총을 든 모습'으로만 기억될 만큼 한 사람에게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들이 총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이미 팔순이 넘은 참전군인들을 가끔 만난다. 팔십 년이 넘는 인생에 비하면, 그들이 전쟁터에서 보낸 시간은 아주 짧다. 그런데도 그들 삶 전체를 군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해야 할까? 세 군데의 흔적을 돌아보고 난 뒤 한 인간을 군인의 정체성으로만 묶어두는 일이 심각한 횡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한때 군인이었고, 실제로 총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니다.

무엇이 그들에게서 군인 아닌 삶을 빼앗고, 전쟁터에 묶어두려 할까? 전쟁기념관에서 이미 보았듯 국가는 살아있는 군인의 생명을 죽은 군인의 명예와 바꾼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은 고귀한 넋, '호국영령'이 이렇게 등장한다. 죽은 이후에도 그들은 총을 든 형상으로 남아 국가를 수호한다. 국가는 총과 평화, 명예와 기억을 한데 묶으며, 군인을 국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렇다면 군인들은 그만큼 시민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을까?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도 시민들은 대체로 군인들을 애틋하게 여기지 않는다. 누군가는 '총을 든 군인'의 형상이 명예를 상징한다고 여기겠지만, 사람들은 총이 손쉬운 살상 무기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총에서 비롯되는 명예는 언제나 폭력과 살육을 함축하기에,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다.

총은 평화로 연결되지 않는다. 늘 누군가의 죽음이 그 앞에 예상된다. 명백한 그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쟁을 잊고, 군인을 잊는다. 국가가 부여하려는 명예뿐만이 아니라 군인들의 고통, 공포, 후회 역시 외면한다. 군인들은 벗어나기 힘든 명예와 기억의 굴레 속에 갇혔다. 명예를 원한다면 기억되지 못하고, 명예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기억되고 싶다면 그들은 명예를,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

'총을 든 군인'의 형상이 군인들의 존재 자체를 외면하게 만든다면 어떤 군인의 형상이 필요할까? 6.25·월남전 흔적전시관에서 만난 군인들의 기록을 떠올려본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나 적을 죽인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적에게 느끼는 예상치 못한 동질감과 연민, 굶주림과 가난에 대한 부담,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동료에 대한 애틋함, 이 모든 것이 뒤섞인 그들의 기록.

총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뒤에 무엇을 하며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지, 호국영령이 아닌 자신들에 관해 말하고 싶어 했다. 전쟁이 남긴 고통을 전달하는 일을 넘어, 다른 이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존재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이 분명했다. 곧 죽음을 앞둔 혹은 이미 죽은 군인들의 기록 앞에서 총을 내려놓은 그들을 기억할 더 많은 공간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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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에서 평화로 아카이브평화기억이 안보와 명예가 아닌 평화와 기억을 말하며, 더 많은 참전군인들과 평화활동의 동료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아 남해의 '6.25 월남전 흔적전시관' 방명록에 이름을 남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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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발 사이] 죽음 이후에도 '총 든 군인'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 - 총을 내려놓은 그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26.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