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주한미군의 주둔지로 알려진 용산은 과거 일본과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국방부를 비롯한 군 관련기관이 밀집해 있는 이곳 용산에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두 개의 큰 기념관이 있다. 바로 전쟁기념관과 민주화운동기념관이다. 전쟁과 민주화운동이라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국가의 얼굴을 만났다.
전쟁기념관, 국가는 전쟁을 애도하는가

▲전쟁기념관 회랑 전사자들의 이름이 적힌 긴 회랑
전쟁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는 정문 양옆으로는 긴 회랑이 배치되어 있다. 회랑 양 벽에는 수많은 이름으로 빼곡한 전사자명비가 서 있고, 비석 앞에는 군데군데 꽃들이 놓여있다. 죽음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거나, 죽은 이들을 애도할 마음 없이 함부로 지나가기 힘든 곳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건물 오른편에 '대형무기실'이 보인다.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듯 바닥에 늘어선 전차와 공중에 매달린 전투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1층 왼편에는 '전쟁역사실'이 있다. 이곳의 전시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다. 석기와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어지는 무기의 발전, 국가의 성립과 멸망, 외세의 침입과 '조국'을 지킨 위인들. 우리가 역사라고 배워왔던 대부분이 이곳에 있었다. 국가 중심의 '역사'란 곧 '전쟁의 역사'이며, 모든 기술의 발전은 전쟁 무기의 발전으로 설명된다. 아무도 숨기지 않았으나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을 이곳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전쟁역사실'의 전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되찾으려는 '무장 독립투쟁'으로 마무리된다. 이 투쟁은 2층과 3층에 여러 공간으로 나뉜 '6·25전쟁실'의 전시로 이어진다. 해방과 분단, 북한군의 남침과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개입과 정전협정으로 이어지는 서사들. 유엔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이승만, 트루먼, 맥아더 등의 인물을 영웅으로 조명하기에 바빠 정작 전쟁의 원인을 성찰하는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

▲전쟁기념관 전시실 내부 전쟁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전쟁기념관에는 군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 대신 영웅의 명예만이 남는다. 관람자들은 공중에 매달린 전투기와 바닥의 전차를 관람하며 전쟁의 스펙터클에 익숙해지며, 전사자에 대한 애도와는 멀어진다.
"세상의 모든 일은 힘의 산물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목적을 달하려는 자는 먼저 그 힘을 찾을 것이다. 내가 이에 간절히 부탁하는 바는 이것이외다. 여러분은 힘을 기르소서, 힘을 기르소서."
전쟁기념관 3층 벽에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말이 적혀 있다. 어떤 피해자들은 고통의 이유를 가해자가 아닌 자신에게서 찾으려 한다. 식민주의의 피해자로 살았던 당시 사람들 또한 자신들이 약하기에 식민지가 되었다고 믿기도 했다. 그런 믿음이 지금에 와서 과도할 만큼 힘을 선망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그런 믿음이 힘을 선망하고 과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지금 우리와 무관할 리 없다.
만일 당시 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힘을 길러 식민지가 되지 않으면 그만이었을까? 그 강한 힘으로 다른 지역을 식민지로 삼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독립과 자주를 위한 힘은 과연 다른 국가에 무력을 행사하는 힘과 다른 힘일까? 3층에서 이어지는 '해외파병실'과 '국군발전실'의 전시는 식민지였던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대한민국의 강한 힘과 위상을 군사력으로 보여준다.
그 힘과 위상은 어떻게 마련되었을까? '해외파병실'의 전시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언급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였다. 일본이 한국전쟁을 통해 전후 국가 재건의 기반을 마련했듯, 한국은 베트남전쟁을 통해 현재의 국가 체계와 산업 기반을 확립했다. '해외파병'이라는 사건은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완하는 계기였고, 박정희 군부독재에도 모종의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에게 베트남전쟁은 그런 의미였다.
'해외파병실'의 전시는 베트남전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 전쟁이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전쟁이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베트콩'이라 부르며 적이라 여겼던 이들이 우리처럼 식민과 분단의 경험을 가진 이들임을 말하지 않는다. 미군을 대리하여 참전한 한국군 역시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죽거나 다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말은 오직 국가의 부와 군인들의 허울 좋은 명예뿐이다.
호국과 독립을 위해 힘을 기르라는 독립운동가의 말은 과연 얼마나 실현되었을까? '북한의 군사도발실' 전시는 북한의 상시 도발 가능성을 전제하며 시작된다. 이 위험한 적을 국군이 잘 조직된 군사 체계와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얼마나 빠른 시간에 제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전시는 마무리된다. 그 서사가 너무나 단순하고 확고하여 의문을 품을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렇게 우리가 강하다면, 왜 적을 두려워해야 할까?"
약함은 강함으로 상쇄되어야 한다는 듯이 전쟁기념관의 전시는 우리가 약한 동시에 강하다는 아이러니를 끊임없이 나열한다. 수많은 무명 전사자를 짓누르는 전쟁 영웅의 이름, 방금 본 전쟁의 참상을 압도하는 최신식 무기의 스펙터클, 죽음 위에 덧씌운 명예. 어쩌면 아이러니는, 우리가 호국과 독립을 위한 힘이 아니라 과거 식민주의자들처럼 어떤 '목적을 달하려는' 힘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전쟁을 이런 방식으로 기억할 때, 인류가 겪은 모든 전쟁을 긍정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모두가 자기 공동체와 국가에 이익이 되는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고 전쟁을 위한 힘 기르기에 몰두한다면,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람을 마치고 전쟁기념관 건물을 나와 다시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한 회랑을 걷는다. 애도가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을 지피는 땔감이 될 그들의 이름. 애도를 불가능하게 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민주화운동기념관, 국가는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는가
서울 한복판 지하철 1호선 남영역 뒤편, 현재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있는 곳은 오랫동안 세상에서 분리된 공간이었다. 과거 이곳은 <국제해양연구소>라는 낯선 간판을 단 채 두꺼운 철문과 높은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외부와 차단된 그곳은 간첩을 색출하겠다는 목적의 대공분실로 쓰였다. 2018년 경찰청으로부터 이 악명높은 대공분실 건물을 이관받은 행정안전부는 2025년 6월, 그 자리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개관했다.
대공분실 건물은 민주화운동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한 후에만 관람할 수 있다. 관람자와 동행한 전시 해설자가 동선을 따라 상세한 전시 해설을 들려준다. 전시 해설은 대공분실 건물이 마주 보이는 기념관 안 작은 정원에서 시작된다.
외관은 물론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조차 해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해설은 철저히 피해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이곳에서 겪은 불법감금과 고문, 살인 등 가혹행위가 해설의 중심이다.
전시는 시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피해자들의 공포와 고통에 이입하도록 설계되었다. 조명, 소리, 냄새를 통해 관람자는 공간 전체가 주는 압박을 온몸으로 느낀다. 시작은 소리다.
처음 대공분실에 끌려온 피해자는 눈을 가린 상태에서 두꺼운 철문이 열리는 굉음을 듣는다. 관람자도 철문 옆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 재현된 굉음을 듣는다. 굉음을 들은 피해자와 관람자가 마침내 대공분실 건물에 발을 들인다.

▲민주화운동기념관 내부 육중한 옛 철문을 들어서면 과거 대공분실 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입구는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던 조사실 내부는 물론이고, 건물 설계 당시 조사실의 배치 도면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밖에서는 입구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와 나선형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선형 계단에서는 무거운 발소리가 크게 울리고,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좁은 엘리베이터는 마음마저 위축시킨다.
대공분실 건물 1층에는 전화기만 놓인 공간이 있다. 어둑한 공간에 관람자가 들어서면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연행의 법칙, 피해자를 확인하는 벨소리다. 이 수화기를 드는 순간 관람자는 피해자의 입장이 된다.
낯선 공간이 주는 공포는 그대로 폭력이 주는 위압감으로 전환된다. 어떤 이들은 대공분실 건물 전체가 그 공포와 위압감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경찰청 보안수사대의 대공 업무를 위해 지은 이 건물은 1976년 10월 착공하여 1977년 11월 사용을 승인받았다. 승인 직후부터 불법감금과 고문에 이용되었으며,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이다.
여기서 고문을 당했던 리영희와 김근태 같은 유명인들의 증언이 마침내 이곳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공개된 대공분실은 끔찍하도록 정교한 곳이었다. 5층에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18개의 조사실은 맞은편 방이 보이지 않도록 문이 엇갈리게 열렸다. 용변을 볼 때조차 포함하여 모든 순간을 CCTV와 마이크가 감시했고, 깊숙한 이중창으로 외부와 단절된 방의 문에는 밖에서만 안을 볼 수 있는 외시경이 달려 있었다.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 내부와 외부 피해자들이 감금되었던 대공분실 5층 복도의 문은 맞은편 방에서 보이지 않도록 서로 엇갈리게 열린다. 창문은 길고 좁은 이중창이라 외부와 단절되며, 모든 공간은 CCTV와 마이크로 감시된다. 널찍한 앞마당과 연결된 건물 외부에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국가가 행정력과 자본, 유명 건축가의 역량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공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폭력의 극한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냈다. 전시 해설을 따라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돌아본 대공분실은 엄밀하게 계산된 체계로 운영되는 공간이었다. 국가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현시된다.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 폭력을 공개하고 해설하는 이는 누구인가? 국가가 아니라면 무엇이 국가를 현시할 수 있게 하는가?
국가는 과거의 국가 폭력을 비판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 폭력을 수행했던 주체이기도 하다. 전시 해설 속에서 피해자는 분명하지만, 폭력의 가해자는 명시되지 않는다. 폭력의 가해자를 고발하는 일을 넘어 국가 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더욱 이루어지기 힘들다. 지금 국가 폭력을 비판하고 '기념'하는 주체 역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지닌 태생적 모순이다.
관람자 입장으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에 이입했던 경험은 '민주화'에 대해 조금 냉소적인 기분이 들게 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홍보영상에서 민주화운동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분열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아니, 애초에 민주주의가 다양성을 옹호하는 정치체라면, 우리는 억지로 하나가 될 필요도 없다.
과거의 폭력을 원동력 삼아 통합된 미래로 가기 위한 어설픈 봉합. 지금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 아닌가? 좁고 어두컴컴한 대공분실 건물을 나와 다시 햇볕이 쏟아지는 잔디 정원에 발을 디뎠다. 이게 민주주의일까? 우리는 여전히 육중한 철문과 담장 안에 있다. 민주주의를 '기념'하기 전에 물어야겠다. 왜 국가는 과거의 국가 폭력조차 기념하려 할까?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일은 과연 국가의 몫일까?
국가는 왜 '기념'을 원하는가
전쟁과 민주화운동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기념의 공간을 하루에 모두 관람했다. 두 공간은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두 공간 사이 의외의 공통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전쟁기념관은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가, 민주화운동기념관은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사실상 두 기념관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공간인 셈이다.
국가는 두 공간이 취하는 태도만큼이나 전쟁이나 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국가는 하나의 얼굴만을 가지지 않는다. 국가는 전쟁과 민주화운동 모두를 기념한다. 대통령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동시에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위로한다. 그 추모와 위로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국가는 참전자들과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 모두에게 명예를 부여하며,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죽은 국민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국가의 힘, 그 힘이 바로 '기념'에서 나온다. '기념'을 통해 국가는 사실을 확정하고 해석을 독점하는 힘을 발휘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일은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 전쟁이 계속 필요하다는 망상으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은 폭력에 대한 고발을 넘어 민주주의는 이미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 국가 폭력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국가의 '기념' 속에서 우리는 이 죽음과 폭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마이뉴스 기사 보러가기
용산 기념관 두 곳을 걸으며 던진 불편한 질문들 - 전쟁기념관과 민주화운동기념관, 용산 두 기념관에서 발견한 국가의 두 얼굴과 의외의 공통점 (26.08.27)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주한미군의 주둔지로 알려진 용산은 과거 일본과 청나라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국방부를 비롯한 군 관련기관이 밀집해 있는 이곳 용산에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두 개의 큰 기념관이 있다. 바로 전쟁기념관과 민주화운동기념관이다. 전쟁과 민주화운동이라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기념'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두 공간에서 서로 다른 국가의 얼굴을 만났다.
전쟁기념관, 국가는 전쟁을 애도하는가
▲전쟁기념관 회랑 전사자들의 이름이 적힌 긴 회랑
전쟁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는 정문 양옆으로는 긴 회랑이 배치되어 있다. 회랑 양 벽에는 수많은 이름으로 빼곡한 전사자명비가 서 있고, 비석 앞에는 군데군데 꽃들이 놓여있다. 죽음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거나, 죽은 이들을 애도할 마음 없이 함부로 지나가기 힘든 곳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건물 오른편에 '대형무기실'이 보인다. 전쟁을 시뮬레이션하듯 바닥에 늘어선 전차와 공중에 매달린 전투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1층 왼편에는 '전쟁역사실'이 있다. 이곳의 전시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하다. 석기와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어지는 무기의 발전, 국가의 성립과 멸망, 외세의 침입과 '조국'을 지킨 위인들. 우리가 역사라고 배워왔던 대부분이 이곳에 있었다. 국가 중심의 '역사'란 곧 '전쟁의 역사'이며, 모든 기술의 발전은 전쟁 무기의 발전으로 설명된다. 아무도 숨기지 않았으나 미처 보지 못했던 사실을 이곳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전쟁역사실'의 전시는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국'을 되찾으려는 '무장 독립투쟁'으로 마무리된다. 이 투쟁은 2층과 3층에 여러 공간으로 나뉜 '6·25전쟁실'의 전시로 이어진다. 해방과 분단, 북한군의 남침과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개입과 정전협정으로 이어지는 서사들. 유엔 참전국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이승만, 트루먼, 맥아더 등의 인물을 영웅으로 조명하기에 바빠 정작 전쟁의 원인을 성찰하는 공간이 되지는 못한다.
▲전쟁기념관 전시실 내부 전쟁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는 전쟁기념관에는 군인의 죽음에 대한 애도 대신 영웅의 명예만이 남는다. 관람자들은 공중에 매달린 전투기와 바닥의 전차를 관람하며 전쟁의 스펙터클에 익숙해지며, 전사자에 대한 애도와는 멀어진다.
전쟁기념관 3층 벽에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의 말이 적혀 있다. 어떤 피해자들은 고통의 이유를 가해자가 아닌 자신에게서 찾으려 한다. 식민주의의 피해자로 살았던 당시 사람들 또한 자신들이 약하기에 식민지가 되었다고 믿기도 했다. 그런 믿음이 지금에 와서 과도할 만큼 힘을 선망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을까? 그런 믿음이 힘을 선망하고 과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지금 우리와 무관할 리 없다.
만일 당시 조선이 식민지가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힘을 길러 식민지가 되지 않으면 그만이었을까? 그 강한 힘으로 다른 지역을 식민지로 삼고자 했다면 어땠을까? 독립과 자주를 위한 힘은 과연 다른 국가에 무력을 행사하는 힘과 다른 힘일까? 3층에서 이어지는 '해외파병실'과 '국군발전실'의 전시는 식민지였던 100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대한민국의 강한 힘과 위상을 군사력으로 보여준다.
그 힘과 위상은 어떻게 마련되었을까? '해외파병실'의 전시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언급 없이는 불가능할 정도였다. 일본이 한국전쟁을 통해 전후 국가 재건의 기반을 마련했듯, 한국은 베트남전쟁을 통해 현재의 국가 체계와 산업 기반을 확립했다. '해외파병'이라는 사건은 한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완하는 계기였고, 박정희 군부독재에도 모종의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우리에게 베트남전쟁은 그런 의미였다.
'해외파병실'의 전시는 베트남전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 전쟁이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전쟁이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베트콩'이라 부르며 적이라 여겼던 이들이 우리처럼 식민과 분단의 경험을 가진 이들임을 말하지 않는다. 미군을 대리하여 참전한 한국군 역시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도 모르고 죽거나 다쳤다고 말하지 않는다. 남아 있는 말은 오직 국가의 부와 군인들의 허울 좋은 명예뿐이다.
호국과 독립을 위해 힘을 기르라는 독립운동가의 말은 과연 얼마나 실현되었을까? '북한의 군사도발실' 전시는 북한의 상시 도발 가능성을 전제하며 시작된다. 이 위험한 적을 국군이 잘 조직된 군사 체계와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얼마나 빠른 시간에 제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전시는 마무리된다. 그 서사가 너무나 단순하고 확고하여 의문을 품을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렇게 우리가 강하다면, 왜 적을 두려워해야 할까?"
약함은 강함으로 상쇄되어야 한다는 듯이 전쟁기념관의 전시는 우리가 약한 동시에 강하다는 아이러니를 끊임없이 나열한다. 수많은 무명 전사자를 짓누르는 전쟁 영웅의 이름, 방금 본 전쟁의 참상을 압도하는 최신식 무기의 스펙터클, 죽음 위에 덧씌운 명예. 어쩌면 아이러니는, 우리가 호국과 독립을 위한 힘이 아니라 과거 식민주의자들처럼 어떤 '목적을 달하려는' 힘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전쟁을 이런 방식으로 기억할 때, 인류가 겪은 모든 전쟁을 긍정하는 일도 가능해진다. 모두가 자기 공동체와 국가에 이익이 되는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고 전쟁을 위한 힘 기르기에 몰두한다면, 전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관람을 마치고 전쟁기념관 건물을 나와 다시 전사자들의 이름이 빼곡한 회랑을 걷는다. 애도가 아니라 또 다른 전쟁을 지피는 땔감이 될 그들의 이름. 애도를 불가능하게 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민주화운동기념관, 국가는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는가
서울 한복판 지하철 1호선 남영역 뒤편, 현재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있는 곳은 오랫동안 세상에서 분리된 공간이었다. 과거 이곳은 <국제해양연구소>라는 낯선 간판을 단 채 두꺼운 철문과 높은 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외부와 차단된 그곳은 간첩을 색출하겠다는 목적의 대공분실로 쓰였다. 2018년 경찰청으로부터 이 악명높은 대공분실 건물을 이관받은 행정안전부는 2025년 6월, 그 자리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개관했다.
대공분실 건물은 민주화운동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한 후에만 관람할 수 있다. 관람자와 동행한 전시 해설자가 동선을 따라 상세한 전시 해설을 들려준다. 전시 해설은 대공분실 건물이 마주 보이는 기념관 안 작은 정원에서 시작된다.
외관은 물론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조차 해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해설은 철저히 피해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이곳에서 겪은 불법감금과 고문, 살인 등 가혹행위가 해설의 중심이다.
전시는 시각과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피해자들의 공포와 고통에 이입하도록 설계되었다. 조명, 소리, 냄새를 통해 관람자는 공간 전체가 주는 압박을 온몸으로 느낀다. 시작은 소리다.
처음 대공분실에 끌려온 피해자는 눈을 가린 상태에서 두꺼운 철문이 열리는 굉음을 듣는다. 관람자도 철문 옆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 재현된 굉음을 듣는다. 굉음을 들은 피해자와 관람자가 마침내 대공분실 건물에 발을 들인다.
▲민주화운동기념관 내부 육중한 옛 철문을 들어서면 과거 대공분실 건물이 보인다. 건물의 입구는 정면에서 보이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감금되어 고문을 당했던 조사실 내부는 물론이고, 건물 설계 당시 조사실의 배치 도면도 그대로 남아 있다.
밖에서는 입구가 보이지 않도록 설계된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와 나선형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선형 계단에서는 무거운 발소리가 크게 울리고, 몸을 구겨 넣어야 하는 좁은 엘리베이터는 마음마저 위축시킨다.
대공분실 건물 1층에는 전화기만 놓인 공간이 있다. 어둑한 공간에 관람자가 들어서면 전화기의 벨이 울린다. 연행의 법칙, 피해자를 확인하는 벨소리다. 이 수화기를 드는 순간 관람자는 피해자의 입장이 된다.
낯선 공간이 주는 공포는 그대로 폭력이 주는 위압감으로 전환된다. 어떤 이들은 대공분실 건물 전체가 그 공포와 위압감을 목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경찰청 보안수사대의 대공 업무를 위해 지은 이 건물은 1976년 10월 착공하여 1977년 11월 사용을 승인받았다. 승인 직후부터 불법감금과 고문에 이용되었으며, 1987년 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건물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김수근이다.
여기서 고문을 당했던 리영희와 김근태 같은 유명인들의 증언이 마침내 이곳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공개된 대공분실은 끔찍하도록 정교한 곳이었다. 5층에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18개의 조사실은 맞은편 방이 보이지 않도록 문이 엇갈리게 열렸다. 용변을 볼 때조차 포함하여 모든 순간을 CCTV와 마이크가 감시했고, 깊숙한 이중창으로 외부와 단절된 방의 문에는 밖에서만 안을 볼 수 있는 외시경이 달려 있었다.
▲과거 남영동 대공분실 내부와 외부 피해자들이 감금되었던 대공분실 5층 복도의 문은 맞은편 방에서 보이지 않도록 서로 엇갈리게 열린다. 창문은 길고 좁은 이중창이라 외부와 단절되며, 모든 공간은 CCTV와 마이크로 감시된다. 널찍한 앞마당과 연결된 건물 외부에서도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국가가 행정력과 자본, 유명 건축가의 역량을 동원하여 만들어낸 공간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폭력의 극한을 구체적인 형태로 빚어냈다. 전시 해설을 따라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돌아본 대공분실은 엄밀하게 계산된 체계로 운영되는 공간이었다. 국가는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현시된다. 문득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이 폭력을 공개하고 해설하는 이는 누구인가? 국가가 아니라면 무엇이 국가를 현시할 수 있게 하는가?
국가는 과거의 국가 폭력을 비판하는 주체이면서 동시에 그 폭력을 수행했던 주체이기도 하다. 전시 해설 속에서 피해자는 분명하지만, 폭력의 가해자는 명시되지 않는다. 폭력의 가해자를 고발하는 일을 넘어 국가 폭력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는 더욱 이루어지기 힘들다. 지금 국가 폭력을 비판하고 '기념'하는 주체 역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지닌 태생적 모순이다.
관람자 입장으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에 이입했던 경험은 '민주화'에 대해 조금 냉소적인 기분이 들게 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홍보영상에서 민주화운동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분열된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닐 뿐이다. 아니, 애초에 민주주의가 다양성을 옹호하는 정치체라면, 우리는 억지로 하나가 될 필요도 없다.
과거의 폭력을 원동력 삼아 통합된 미래로 가기 위한 어설픈 봉합. 지금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이 바로 그런 일이 아닌가? 좁고 어두컴컴한 대공분실 건물을 나와 다시 햇볕이 쏟아지는 잔디 정원에 발을 디뎠다. 이게 민주주의일까? 우리는 여전히 육중한 철문과 담장 안에 있다. 민주주의를 '기념'하기 전에 물어야겠다. 왜 국가는 과거의 국가 폭력조차 기념하려 할까?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일은 과연 국가의 몫일까?
국가는 왜 '기념'을 원하는가
전쟁과 민주화운동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기념의 공간을 하루에 모두 관람했다. 두 공간은 매우 이질적이었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두 공간 사이 의외의 공통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전쟁기념관은 국방부 산하 공공기관인 전쟁기념사업회가, 민주화운동기념관은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사실상 두 기념관 모두 국가가 관리하는 공간인 셈이다.
국가는 두 공간이 취하는 태도만큼이나 전쟁이나 민주화운동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가진 듯 보인다. 그러나 국가는 하나의 얼굴만을 가지지 않는다. 국가는 전쟁과 민주화운동 모두를 기념한다. 대통령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동시에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위로한다. 그 추모와 위로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국가는 참전자들과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 모두에게 명예를 부여하며,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죽은 국민에게 명예를 부여하는 국가의 힘, 그 힘이 바로 '기념'에서 나온다. '기념'을 통해 국가는 사실을 확정하고 해석을 독점하는 힘을 발휘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일은 죽음에 대한 애도를 넘어 전쟁이 계속 필요하다는 망상으로,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은 폭력에 대한 고발을 넘어 민주주의는 이미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 국가 폭력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국가의 '기념' 속에서 우리는 이 죽음과 폭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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