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지난 6~7월, 수첩을 들고 길을 나섰다. 준비물은 수첩 한 권이면 충분했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 알맞은 펜을 꽂아 들고 길을 나서니 흰 종이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표지에는 커다랗게 아카이브평화기억 로고를 붙였다. 그럴듯한 모양이 흡족했다. 수첩을 펼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여덟 개의 체크리스트를 공들여 배치했다.
수첩을 들고 떠난 곳은 전국 각지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전쟁 이후 한국 사회 안녕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곳들이다. 첫날은 서울 용산 원효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두 개의 기념관, 전쟁기념관과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방문했다. 다음으로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을 걸었다. 세 번째는 경기도 화성 매향리 미군 기지 터에 화성시가 조성한 평화기념관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 운동을 펼쳐온 주체가 운영하는 평화역사관을, 마지막은 경남 남해군에서 조성해 지난해 말에 문을 연 6.25·월남전흔적전시관에서 수첩을 펼쳤다.
주말을 바삐 다녔다. 종일 비가 내린 날은 우산 하나 받치면 그만이었다. 남해에 가는 길은 하룻길로 어려웠다. 여유롭게 일정을 잡은 덕분에 고성에 사는 참전군인의 안부를 함께 살필 수 있었다. 때로 참전군인과 동행하여 길을 떠났다.

▲ 탐방수첩 ‘무엇을 기록하고(혹은 기록하지 않고) 있는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누가 이야기의 주인공인가’, ‘중심 서사가 무엇인가’, ‘어떤 교육적 목적을 갖고 있는가’, ‘전시 기법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평화의 관점으로 방향 제시, 의견을 낸다면’ 여덟 개의 질문이 우리의 생각을 이끌었다.
전쟁을 낭만화하지 않겠다
같은 곳을 걸으며 써 내려간 수첩에는 어떤 생각들을 담았을까. 서로의 수첩을 열어보니 여덟 가지 질문을 쫓아 현장에서 오고 간 말과 생각이 가득했다. 함께 다녔던 시공간의 냄새가 느껴지는 메모들 사이에서 붙잡은 화두는 '국가'와 '전쟁', '기억'과 '기념'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모두의 수첩에서 반복되었고, 이제는 탐구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전쟁에 대한 우리의 통념은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총을 쏘고, 포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전쟁 영화나 뉴스의 장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존재와 생명에 대한 애도는 그것만으로도 전쟁을 반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전쟁의 풍경은 충격적이고 강렬하며, 죽음과 결부되어 그 너머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관심 갖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전장(戰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전쟁은 평화가 깨진 예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든 현재든 전쟁은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다. 기억과 기념의 공간은 가까이 있으면서 전쟁 역사를 통해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내면화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 국가주의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끊임없이 상연하고, 국민을 그 무대의 영원한 인질이자 관객으로 붙잡아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기억의 공간에 서면 그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첫날 방문한 전쟁기념관의 전쟁 역사실은 국사 교과서와 판박이다. 배울 때는 미처 몰랐던 전쟁사 중심의 국가 성립 과정은 전쟁에 대하여 입장에 따라 '정벌' 혹은 '침략'이라는 상반된 언어를 등장시키며 전쟁 불가피론에 무게를 싣는다. 그리고 언제나 '이편'과 '저편'을 가른다. '국가'와 '공동체' 너머에 '적'과 '이방인'이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세금을 들여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라면 궁극의 가치는 '국가'로 귀결된다. 모든 희생과 헌신은 국가를 위한 것일 때 명예롭다. 국가는 모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선이자 덕목이다.
수첩을 들고 기억의 공간을 유랑하는 것은 '전쟁'을 추상의 영역이나 멀리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전쟁'이 국가의 통치 행위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되며, 일상 공간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전쟁 '기억'과 '기억의 공간'을 기념과 추모, 애도에 대한 수사로 말하는 것은 전쟁을 낭만화한다. 전쟁 이후, 기억을 둘러싼 전쟁에서 국가는 압도적으로 기억을 지배하고 통치한다. 언어화되고 제도화된 것들 못지않게 전국의 수많은 기억 공간에서 기억을 선별하고 배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작동하며 국가주의를 뿌리내리고 또 다른 전쟁을 생산한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린 독재 권력이 "전쟁은 평화(War is Peace)"라고 외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은 지극히 현실의 이야기이다. 국가주의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끊임없이 상연하고, 국민을 그 무대의 영원한 인질이자 관객으로 붙잡아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기억의 공간에 서면 그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전쟁은 익숙한 땅 위에서 친구와 이웃들이 거름을 줘서 자라는 것이며, 아들과 딸, 아내와 아버지들이 나서서 싸우는 것이다. 전쟁의 정체성을 양면적으로 자각하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이 지닌 양면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국가가 수행한 전쟁과 총체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대가를 치렀으며, 이익도 얻었고, 상처도 입었다. 그 전쟁이 지닌 고귀함이나 영웅적인 것 모두를 우리 안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사악함이나 끔찍함 역시 모두 우리 안에 있다."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베트남과 전쟁의 기억> 비엣타인 응우옌, 2019년, 더봄
한국은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
답사를 다니며 그동안 어렴풋하던 생각들이 또렷해졌다. 그중 하나는 이 땅에 남아 있는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해 서사 중심의 역사관에서 무기 생산과 판매, 경제와 이익의 논리로 전쟁의 폐해와 비극을 상쇄시키는 하위 제국주의(Sub-imperialism) 국가로서의 면모를 일깨우는 것이다. 하위 제국주의란, 강대국 아래 종속되어 자국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변 국가를 상대로 지배력과 착취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를 자각하는데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 역사가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6개월 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라는 대대적인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하였으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 그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강원도 화천 오음리로 파병 병사들의 훈련소가 있던 곳이다. 현재는 월남파병 용사 만남의 장이라는 이름으로 월남참전기념관과 기념탑과 추모탑, 월남재현마을 등이 들어서 있다.
국가보훈부 현충 시설로 지정된 이곳은 다른 기념 시설과 같이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명분과 명예를 중심 서사로 보여주고 있다. 병사들이 훈련받고 떠난 이곳은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기지의 역할과 파병 병사들의 일과, 정훈, 훈련, 사건(탈영, 자살, 사고), 기지 주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라지고 삭제되었다.
이곳 오음리로 가는 길은 참전군인 나동주가 동행했다. 그는 1971년 2월, 백마 29연대 의무 중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간 이후 55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 반세기도 더 된 일이니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터인데 그의 눈은 부지런히 그때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저 돌은 그때도 있었던 것 같은디' 차가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으로 향하는 경사진 길을 오르며 코너를 돌자 오른쪽 모퉁이에 서 있는 커다랗고 노란 돌기둥을 보고 그가 말했다.
참전군인 나동주는 오음리 훈련이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훈련받던 한 달여 기간 동안 탈영병이 세 명 있었고, 그 후로 그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오음리는 그런 기억의 조각들로 남아 있었다.
"오음리에 와 보니까 옛날에 여기서 훈련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지 더 전해 들어서 뜻있게 적어놔주면 좋을 텐데. 그런 점들을 하나도 준비 안 해 놓고 여기가 월남 가기 전에 훈련받았던 곳이라는 것만 덜렁 이야기해 주면, 그 의미를 많이 상실한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월남 가는 병사들이 훈련받던 곳이라는데 정작 전장으로 떠나는 이들이 겪은 이야기는 생략되었다. 베트남전쟁이 한국 사회에서 잊힌 전쟁이 된 것은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않을 뿐, 그 시간 동안 한국 땅은 베트남전쟁의 후방 기지였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는 장소가 오음리다.

▲아카이브기록전 시민참여 전시기획단 '눈과 발 사이' 답사를 다니며 그동안 어렴풋하던 생각들이 또렷해졌다. 그중 하나는 이 땅에 남아 있는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기도 화성 매향리는 2005년까지 미군이 운영하는 '쿠니 사격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는 현재 두 개의 전시관이 있다. 화성시가 만든 평화기념관은 미군 기지와 그 주변에 시비 200억 원을 들여 유명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디자인하여 큰 규모로 지어졌다. 떠들썩한 외관과는 달리 내용은 빈약하다. 마치 평화가 찾아온 듯 억지로 펼쳐놓은 서사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녹슨 포탄 더미가 산을 이루어 쌓여있는 곳, 정작 그 땅에 살던 생명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은 '평화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전만규 관장은 종일 답사단과 함께하며 매향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군 폭격장과 마을 주민의 투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 폭격장 폐쇄가 평화의 완성은 아닐 터인데, 서로 다른 주체가 운영하는 두 개의 공간에서 어떻게 평화를 마주해야 할까 생각했다.
쿠니 사격장은 베트남전쟁 시기에도 폭격 훈련장이었다. 평화역사관과 평화기념관이 맞닿은 넓은 잔디밭에, F-4E 팬텀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평화기념관 측에서 붙여놓은 빛바랜 설명은 전투기 이름과 성능만이 깔끔하게 적힌 것에 비해, 전만규 관장이 그 옆에 세 개의 종이를 덧대 세운 자료와 글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폭격을 증명하고 있었다.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사격 채점표, 미군사격장 경비부에서 매향1리 어촌계장(당시 전만규)에게 사전 공지하여 조업을 제안하던 통보서인 쿠니 전투기 사격장 시간표, F-4E 팬텀 전투기에 대한 마을의 기억이 적혀 있었다. 사격장 시간표에는 월~금까지 모두 오전 07시경~24시라는 숫자가 써 있었다. 종일 폭격 훈련이 있다는 알림이었다.
"'밤의 도깨비'라는 별명의 팬텀기가 매향리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66년, 월남전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미군은 이곳에서 네이팜탄 투하 훈련을 했고, 네이팜탄이 농섬에서 터지면 화산 용암처럼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이를 '불탄'이라 불렀습니다. 미군 조종사들은 이곳에서 '불탄' 투하 훈련을 받은 뒤 베트남 전쟁터로 파병되어, 베트남의 밀림을 같은 방식으로 불태웠습니다."
팬텀기에 대한 마을의 기억.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부터 운영된 매향리 폭격장은 민가에 인접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에 있는 미군 전투기가 폭격 훈련을 하러 모여들었다. 매향리에서 불탄 투하 훈련을 한 미군 팬텀기는 베트남으로 날아가 네이팜탄을 떨어뜨렸다. 매향리의 땅과 사람 모두 전쟁을 겪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매향리에서도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만났다.

▲매향리 평화역사관과 평화기념관이 맞닿은 곳에 전시되어 있는 F-4E 팬텀 전투기 평화기념관 측에서 붙여놓은 빛바랜 설명은 전투기 이름과 성능만이 깔끔하게 적힌 것에 비해, 전만규 관장이 그 옆에 세 개의 종이를 덧대 세운 자료와 글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폭격을 증명하고 있었다.
'국가주의'를 생략하고 전쟁을 이야기한다는 것
곳곳을 다니며 기억과 기록, 망각에 대하여 몸으로 느꼈다. 탐방단에 '눈과 발 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직접 '발'로 걸으며 '본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 사이의 '오류'와 '간극'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니 많은 것들이 또렷해졌다. 발로 다녀 보니 기억의 지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념과 기억의 공간을 다니며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뿌리내린 국가주의 서사를 만났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국가의 지배 서사에 길을 내어 다른 기억과 상상을 펼칠 수 있을까. 전쟁에 대한 낭만적 접근과 국가주의에 근거한 기념의 허울을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억으로 저항하기란 어떤 것인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수첩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그동안 다닌 곳을 넘나들며 수첩에 적은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씩 펼쳐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딘가에 메모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에게 생기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연재는 쓸모를 가지게 될 터다. 마치 전시를 관람하듯 글을 보며 공간을 상상하고 질문에 함께하길. 다시 수첩을 펼치는 것은 이 사회에 뿌리내린 국가주의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갈 기억, 망실된 기억을 찾아가는 저항 행동이다.
오는 10월, 연재를 마칠 때쯤 <아카이브기록전 '듣는 사이': 참전군인을 만난 시민들, 5년의 기록>을 연다. 기억의 현실을 탐색하며, 기록전이 어떤 기억의 현장이 되어야 할까 고민한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궁극의 자리를 국가에 내어주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 실로 '국가주의'를 생략하고 전쟁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러 복잡함 속에 '무관한' 당신을 듣는 자리에 초대하려 한다. 그 길에 '눈과 발 사이' 연재가 생각을 잇는다.
▼오마이뉴스 기사 보러가기
일상에 뿌리내린 국가주의와 공간들 - '전쟁'이라는 무대, '국가'의 호명, '국민'의 자리 (26.08.24)
우리가 사는 주변에는 규모 있게 혹은 알아차리지 못하게 당연한 듯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 있다. 이곳을 걸으며 이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 마주한다. 함께한 이들은 참전군인 구술 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이다. 때로는 베트남전 참전군인과 동행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올해로 5년째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을 만나고 있다. 평화 프로젝트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는 전쟁을 겪은 이들과 소통하며 갈등을 마주하고, 복잡한 가운데 연루됨을 알아차리며 평화를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연재 제목이자 답사단 이름으로 붙인 ‘눈과 발 사이’는 직립한 인간이 갖는 한계와 오류를 직시하고, 관점(觀點)을 달리하여 낯설게 보자는 뜻이다. 뜨거운 날 수첩 하나 손에 쥐고 발로 걸으며 깨진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글에 비끄러매었다. 유랑하며 기억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길을 내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연재를 시작한다.
지난 6~7월, 수첩을 들고 길을 나섰다. 준비물은 수첩 한 권이면 충분했다. 손바닥만 한 수첩에 알맞은 펜을 꽂아 들고 길을 나서니 흰 종이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표지에는 커다랗게 아카이브평화기억 로고를 붙였다. 그럴듯한 모양이 흡족했다. 수첩을 펼치면 바로 볼 수 있도록 여덟 개의 체크리스트를 공들여 배치했다.
수첩을 들고 떠난 곳은 전국 각지 기억과 기념의 공간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전쟁 이후 한국 사회 안녕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있는 곳들이다. 첫날은 서울 용산 원효대로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 두 개의 기념관, 전쟁기념관과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방문했다. 다음으로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을 걸었다. 세 번째는 경기도 화성 매향리 미군 기지 터에 화성시가 조성한 평화기념관과 매향리 폭격장 폐쇄 운동을 펼쳐온 주체가 운영하는 평화역사관을, 마지막은 경남 남해군에서 조성해 지난해 말에 문을 연 6.25·월남전흔적전시관에서 수첩을 펼쳤다.
주말을 바삐 다녔다. 종일 비가 내린 날은 우산 하나 받치면 그만이었다. 남해에 가는 길은 하룻길로 어려웠다. 여유롭게 일정을 잡은 덕분에 고성에 사는 참전군인의 안부를 함께 살필 수 있었다. 때로 참전군인과 동행하여 길을 떠났다.
▲ 탐방수첩 ‘무엇을 기록하고(혹은 기록하지 않고) 있는가’,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가’, ‘누가 이야기의 주인공인가’, ‘중심 서사가 무엇인가’, ‘어떤 교육적 목적을 갖고 있는가’, ‘전시 기법을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평화의 관점으로 방향 제시, 의견을 낸다면’ 여덟 개의 질문이 우리의 생각을 이끌었다.
전쟁을 낭만화하지 않겠다
같은 곳을 걸으며 써 내려간 수첩에는 어떤 생각들을 담았을까. 서로의 수첩을 열어보니 여덟 가지 질문을 쫓아 현장에서 오고 간 말과 생각이 가득했다. 함께 다녔던 시공간의 냄새가 느껴지는 메모들 사이에서 붙잡은 화두는 '국가'와 '전쟁', '기억'과 '기념'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모두의 수첩에서 반복되었고, 이제는 탐구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전쟁에 대한 우리의 통념은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총을 쏘고, 포탄이 터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전쟁 영화나 뉴스의 장면을 벗어나지 못한다.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존재와 생명에 대한 애도는 그것만으로도 전쟁을 반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전쟁의 풍경은 충격적이고 강렬하며, 죽음과 결부되어 그 너머에서 작동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관심 갖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전장(戰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전쟁은 평화가 깨진 예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든 현재든 전쟁은 국가를 유지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다. 기억과 기념의 공간은 가까이 있으면서 전쟁 역사를 통해 국가를 최고의 가치로 내면화하는 일상의 공간이다.
▲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 국가주의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끊임없이 상연하고, 국민을 그 무대의 영원한 인질이자 관객으로 붙잡아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기억의 공간에 서면 그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첫날 방문한 전쟁기념관의 전쟁 역사실은 국사 교과서와 판박이다. 배울 때는 미처 몰랐던 전쟁사 중심의 국가 성립 과정은 전쟁에 대하여 입장에 따라 '정벌' 혹은 '침략'이라는 상반된 언어를 등장시키며 전쟁 불가피론에 무게를 싣는다. 그리고 언제나 '이편'과 '저편'을 가른다. '국가'와 '공동체' 너머에 '적'과 '이방인'이 있다. 국가나 지자체가 세금을 들여 만들고 운영하는 곳이라면 궁극의 가치는 '국가'로 귀결된다. 모든 희생과 헌신은 국가를 위한 것일 때 명예롭다. 국가는 모두가 지향해야 할 최고의 선이자 덕목이다.
수첩을 들고 기억의 공간을 유랑하는 것은 '전쟁'을 추상의 영역이나 멀리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전쟁'이 국가의 통치 행위에 전방위적으로 활용되며, 일상 공간에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전쟁 '기억'과 '기억의 공간'을 기념과 추모, 애도에 대한 수사로 말하는 것은 전쟁을 낭만화한다. 전쟁 이후, 기억을 둘러싼 전쟁에서 국가는 압도적으로 기억을 지배하고 통치한다. 언어화되고 제도화된 것들 못지않게 전국의 수많은 기억 공간에서 기억을 선별하고 배치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작동하며 국가주의를 뿌리내리고 또 다른 전쟁을 생산한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린 독재 권력이 "전쟁은 평화(War is Peace)"라고 외치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은 지극히 현실의 이야기이다. 국가주의는 '전쟁'이라는 무대를 끊임없이 상연하고, 국민을 그 무대의 영원한 인질이자 관객으로 붙잡아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기억의 공간에 서면 그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한국은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
답사를 다니며 그동안 어렴풋하던 생각들이 또렷해졌다. 그중 하나는 이 땅에 남아 있는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피해 서사 중심의 역사관에서 무기 생산과 판매, 경제와 이익의 논리로 전쟁의 폐해와 비극을 상쇄시키는 하위 제국주의(Sub-imperialism) 국가로서의 면모를 일깨우는 것이다. 하위 제국주의란, 강대국 아래 종속되어 자국의 정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주변 국가를 상대로 지배력과 착취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를 자각하는데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 역사가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8년 6개월 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라는 대대적인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하였으나, 5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서 그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강원도 화천 오음리로 파병 병사들의 훈련소가 있던 곳이다. 현재는 월남파병 용사 만남의 장이라는 이름으로 월남참전기념관과 기념탑과 추모탑, 월남재현마을 등이 들어서 있다.
국가보훈부 현충 시설로 지정된 이곳은 다른 기념 시설과 같이 베트남전쟁 참전에 대한 명분과 명예를 중심 서사로 보여주고 있다. 병사들이 훈련받고 떠난 이곳은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기지의 역할과 파병 병사들의 일과, 정훈, 훈련, 사건(탈영, 자살, 사고), 기지 주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라지고 삭제되었다.
이곳 오음리로 가는 길은 참전군인 나동주가 동행했다. 그는 1971년 2월, 백마 29연대 의무 중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간 이후 55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 반세기도 더 된 일이니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터인데 그의 눈은 부지런히 그때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저 돌은 그때도 있었던 것 같은디' 차가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으로 향하는 경사진 길을 오르며 코너를 돌자 오른쪽 모퉁이에 서 있는 커다랗고 노란 돌기둥을 보고 그가 말했다.
참전군인 나동주는 오음리 훈련이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훈련받던 한 달여 기간 동안 탈영병이 세 명 있었고, 그 후로 그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오음리는 그런 기억의 조각들로 남아 있었다.
"오음리에 와 보니까 옛날에 여기서 훈련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지 더 전해 들어서 뜻있게 적어놔주면 좋을 텐데. 그런 점들을 하나도 준비 안 해 놓고 여기가 월남 가기 전에 훈련받았던 곳이라는 것만 덜렁 이야기해 주면, 그 의미를 많이 상실한 거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월남 가는 병사들이 훈련받던 곳이라는데 정작 전장으로 떠나는 이들이 겪은 이야기는 생략되었다. 베트남전쟁이 한국 사회에서 잊힌 전쟁이 된 것은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않을 뿐, 그 시간 동안 한국 땅은 베트남전쟁의 후방 기지였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는 장소가 오음리다.
▲아카이브기록전 시민참여 전시기획단 '눈과 발 사이' 답사를 다니며 그동안 어렴풋하던 생각들이 또렷해졌다. 그중 하나는 이 땅에 남아 있는 베트남전쟁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기도 화성 매향리는 2005년까지 미군이 운영하는 '쿠니 사격장'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는 현재 두 개의 전시관이 있다. 화성시가 만든 평화기념관은 미군 기지와 그 주변에 시비 200억 원을 들여 유명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디자인하여 큰 규모로 지어졌다. 떠들썩한 외관과는 달리 내용은 빈약하다. 마치 평화가 찾아온 듯 억지로 펼쳐놓은 서사가 불편하게 다가온다.
녹슨 포탄 더미가 산을 이루어 쌓여있는 곳, 정작 그 땅에 살던 생명들이 겪어야 했던 시간은 '평화역사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전만규 관장은 종일 답사단과 함께하며 매향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군 폭격장과 마을 주민의 투쟁은 어떻게 기록되어야 하는가. 폭격장 폐쇄가 평화의 완성은 아닐 터인데, 서로 다른 주체가 운영하는 두 개의 공간에서 어떻게 평화를 마주해야 할까 생각했다.
쿠니 사격장은 베트남전쟁 시기에도 폭격 훈련장이었다. 평화역사관과 평화기념관이 맞닿은 넓은 잔디밭에, F-4E 팬텀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평화기념관 측에서 붙여놓은 빛바랜 설명은 전투기 이름과 성능만이 깔끔하게 적힌 것에 비해, 전만규 관장이 그 옆에 세 개의 종이를 덧대 세운 자료와 글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폭격을 증명하고 있었다.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사격 채점표, 미군사격장 경비부에서 매향1리 어촌계장(당시 전만규)에게 사전 공지하여 조업을 제안하던 통보서인 쿠니 전투기 사격장 시간표, F-4E 팬텀 전투기에 대한 마을의 기억이 적혀 있었다. 사격장 시간표에는 월~금까지 모두 오전 07시경~24시라는 숫자가 써 있었다. 종일 폭격 훈련이 있다는 알림이었다.
"'밤의 도깨비'라는 별명의 팬텀기가 매향리에 처음 나타난 것은 1966년, 월남전이 한창이던 때였습니다. 미군은 이곳에서 네이팜탄 투하 훈련을 했고, 네이팜탄이 농섬에서 터지면 화산 용암처럼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주민들은 이를 '불탄'이라 불렀습니다. 미군 조종사들은 이곳에서 '불탄' 투하 훈련을 받은 뒤 베트남 전쟁터로 파병되어, 베트남의 밀림을 같은 방식으로 불태웠습니다."
팬텀기에 대한 마을의 기억. 한국전쟁 시기인 1951년부터 운영된 매향리 폭격장은 민가에 인접하고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에 있는 미군 전투기가 폭격 훈련을 하러 모여들었다. 매향리에서 불탄 투하 훈련을 한 미군 팬텀기는 베트남으로 날아가 네이팜탄을 떨어뜨렸다. 매향리의 땅과 사람 모두 전쟁을 겪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전쟁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매향리에서도 베트남전쟁의 흔적을 만났다.
▲매향리 평화역사관과 평화기념관이 맞닿은 곳에 전시되어 있는 F-4E 팬텀 전투기 평화기념관 측에서 붙여놓은 빛바랜 설명은 전투기 이름과 성능만이 깔끔하게 적힌 것에 비해, 전만규 관장이 그 옆에 세 개의 종이를 덧대 세운 자료와 글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폭격을 증명하고 있었다.
'국가주의'를 생략하고 전쟁을 이야기한다는 것
곳곳을 다니며 기억과 기록, 망각에 대하여 몸으로 느꼈다. 탐방단에 '눈과 발 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직접 '발'로 걸으며 '본다'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가 아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 사이의 '오류'와 '간극'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니 많은 것들이 또렷해졌다. 발로 다녀 보니 기억의 지형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기념과 기억의 공간을 다니며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뿌리내린 국가주의 서사를 만났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국가의 지배 서사에 길을 내어 다른 기억과 상상을 펼칠 수 있을까. 전쟁에 대한 낭만적 접근과 국가주의에 근거한 기념의 허울을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억으로 저항하기란 어떤 것인가.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수첩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앞으로 연재를 통해 그동안 다닌 곳을 넘나들며 수첩에 적은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씩 펼쳐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딘가에 메모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에게 생기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 연재는 쓸모를 가지게 될 터다. 마치 전시를 관람하듯 글을 보며 공간을 상상하고 질문에 함께하길. 다시 수첩을 펼치는 것은 이 사회에 뿌리내린 국가주의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갈 기억, 망실된 기억을 찾아가는 저항 행동이다.
오는 10월, 연재를 마칠 때쯤 <아카이브기록전 '듣는 사이': 참전군인을 만난 시민들, 5년의 기록>을 연다. 기억의 현실을 탐색하며, 기록전이 어떤 기억의 현장이 되어야 할까 고민한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궁극의 자리를 국가에 내어주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 실로 '국가주의'를 생략하고 전쟁 기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여러 복잡함 속에 '무관한' 당신을 듣는 자리에 초대하려 한다. 그 길에 '눈과 발 사이' 연재가 생각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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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뿌리내린 국가주의와 공간들 - '전쟁'이라는 무대, '국가'의 호명, '국민'의 자리 (2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