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눈과 발 사이] 1박2일의 남해, 오음리, 전쟁기념관, 그리고 매향리까지 '기억'과 '기념'을 마주한 시간들


비가 내렸다가 금세 그치고, 다시 습기가 훅 올라오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면 몸도 마음도 쉽게 늘어지지만, 올가을 열릴 아카이브 기록전을 준비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 바빠졌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을 필드워크와 함께 진행했어요. “오늘도 꽤 덥네요” 웃어 넘기면서도 푹푹 찌는 이 열기가 어쩌면 여름의 답사를 또렷이 기억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산 전쟁기념관과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과 화천 오음리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화성 매향리평화역사관과 매향리평화기념관, 그리고 남해에 위치한 6.25·월남전흔적전시관까지, 전국 곳곳을 다니며 전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다양한 공간을 만나보았습니다. 함께 다니며 나눈 생각들과 여러 장면을 모아 소식 전합니다.



(1) 용산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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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부터 전시를 둘러보고, 해외파병실에 들어가니 다른 전시실에 비해 조명과 패널 구성, 공간을 연출하는 데 힘을 덜 쓴 거 같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어요. 같은 건물 안에서 6.25전쟁실과 북한의 군사도발실, 6.25전쟁 지도자실 등은 무척 신경써서 꾸민 공간이라는 게 비교가 되더라고요.  공통적으로 전쟁 무기와 제복, 영웅 동상은 전시실이 바뀌어도 계속 등장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마치 객관적으로 보여준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어떤 정보가 선택되고 배열되는지 고민해보게 되었어요. 국가와 군대, 지도자의 시선으로 정리된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해볼 수 있을까요?"





(2) 민주화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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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전쟁기념관과 남영동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같은 날 이어서 걷고 나니, 두 공간이 전시를 통해 전쟁과 폭력, 평화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또렷하게 보였어요. 전쟁기념관은 강한 군대와 무기를 통해 안보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고, 민주화운동기념관은 국가 폭력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있었어요. 이 두 공간이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비워 두는지, 누구를 이야기의 중심에 세우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앞으로 우리가 준비할 아카이브 기록전의 방향을 생각하는 데 꽤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춘천월남참전기념탑과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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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는 춘천대첩기념공원과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탑과 비가 늘어나며 상징과 조형이 과잉 생산되는 공간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음리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처럼 전쟁과 직접 연결되는 장소성을 지녔음에도 방치된 공간이 있었습니다. 두 공간을 나란히 놓고 볼 때, 한국 사회가 참전을 조형물로 기념하는 방식에는 능숙하지만, 장소가 지닌 역사성, 당사자 이야기,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갱신되어야 할 기억 자체에는 둔감하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오음리에서 느낀 방치의 감각과 춘천에서 느낀 과잉된 감각은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두 공간 모두 기억을 다루는 데 있어 무관심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 매향리평화기념관 & 매향리평화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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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매향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닌 지금도 사람들의 몸과 말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현재형의 서사로 남았습니다. 정리된 패널과 도식이 폭격장의 역사를 과거형으로 묶어두려 할 때마다, 전만규 위원장은 그것이 여전히 진행 중인 삶의 문제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있었습니다. 전시는 그저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를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누군가 아직 끝나지 않은 고통과 책임, 평화를 말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자리였습니다. 매향리를 떠난 뒤 전만규 위원장의 목소리와 매향리평화역사관에 남은 포탄 더미가 생각났고, 평화를 말하는 일이 지금 해야할 과제라는 생각을 계속 떠올렸습니다."





(5) 남해 6.25 월남전흔적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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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평범한 이들의 기록’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개개인의 삶의 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명의 영웅 서사가 모든 것을 대표하는 대신, 수백 명의 얼굴과 이름이 함께 등장하는 전시 방식이 과연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남해 흔적 전시관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다시는 어떤 이유로든 청년들이 전쟁과 폭력의 한가운데로 쉽게 떠밀려서는 안 된다는 바람이 공간 곳곳에 스며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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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서 춘천으로, 오음리에서 매향리로, 그리고 남해까지 이어진 이번 여름의 필드워크는 각기 다른 전쟁 기억을 살펴보는 동시에 10월에 있을 아카이브 기록전의 방향성을 더듬어보는 과정이었습니다. 영웅 서사로 압축된 국가의 이야기 대신, 남해 흔적 전시관에서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현재가 드러나는 전시 방식을 상상하게 되었고, 매향리평화역사관의 뜨거웠던 관람 환경을 떠올리며 기억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작동하도록 만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행정 문서와 통계, 신문 기사로 구성된 공식 기록과 참전군인의 몸으로 붙들어 온 기억을 전시장 안에서 나란히 놓아 그 간극을 함께 읽어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10월의 기록전은 아직 부르지 못한 이름들과 쓰이지 못한 이야기들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글 지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