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6일 오후 7시, 전진상영성센터에서 책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북토크의 제목은 ‘강우일 주교와 함께 읽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는 어떻게 평화와 만나야 할까’입니다.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평화를 둘러싼 여러 생각들을 나누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강우일 주교님이 인상 깊게 읽은 책의 구절들을 낭독하고, 이와 연결된 전쟁과 군대, 종교에 대해 두루 이야기했습니다.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의 저자이자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대표가 함께하고, 알록출판사 안지혜 대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사회 안지혜
주교님 말씀 중 ‘전쟁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정당한 전쟁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설사 누군가를 지킨다라는 명목도 사실은 거짓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 시선을 갖고 계신 주교님이 이 책을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합니다.
강우일 주교
이 책에 오경렬이라는 분이 한 말이 있어요. 낭독해 보겠습니다.
저한테는 잊혀진 전쟁이고 또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추악한 전쟁이에요.
추악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베트남전쟁의 이모저모를 알게 되면서부터예요.
즉, 내가 이 전쟁에 그러니까 전투병으로 참여를 하게 되고 하나의 구성원이었다는 게
그런 상황을 알고 난 이후부터 너무 부끄러운 거죠.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참전군인 오경열의 말
영문도 모르고 정신없이 전투에 참가하고 돌아와 보니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느끼게 되었고, 다시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지만 말을 해야 한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은 국가라는 큰 시스템에 의해서 간 사람들이고, 그런 부분에서는 피해와 가해, 두 가지 성격을 다 지닌 사람들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이 누구나가 다 그렇지만 100퍼센트 선한 사람도 없고 100퍼센트 악한 사람도 없듯이 말이죠.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주교님이 나눠 주신 말씀은 베트남 평화운동 안에서도 첨예한 주제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참전군인의 위치성이 가해의 자리에 있지만 또한 국가의 시스템 안에 동원된 존재로서 피해자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은 곧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무너뜨려서 모두가 다 피해자라고 하는 거 아니냐' 라는 고민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참전군인에게 피해의 위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다', 하는 우려와 걱정이 이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고 느끼는데요. 이 지점은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살펴봐야 하는 주제인 것 같아요.
그러는 한편, 저는 가해와 피해라고 하는 프레임이 베트남 평화 운동의 큰 화두인 상황에서, 이것 바깥에, 혹은 이것이 아닌 다른 관점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있어요.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의 결괏값으로서 가해나 피해라고 하는 자리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전체 맥락과 구조, 개개인의 서사와 모순을 좀 더 바로 직면해야하지 않는가 싶은 거죠. 그래서 그 노력으로 참전군인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강우일 주교
제가 조금 더 첨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누구나가 다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죠. 이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영혼 전체의 균형과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걸 스스로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고 또 얘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그거를 제주에 가서 굉장히 절실히 느꼈어요.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80년이 다 됐는데 그때 4.3을 겪은 분들 중에 그 긴 세월을 두고서 자녀 세대에게 자기가 무엇을 겪었는지 그걸 증언을 안 했어요. 제가 제주인들에게, 대개 한 50대에서 60대 분들에게 당신이 직접 경험을 못해도 당신의 부모님 세대에서 분명히 겪었을 테니까 부모들로부터 뭐를 들었는지 그 증언이 있으면 좀 나한테 알려달라고 했는데 거의 못 들었다고 그래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도 자기가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근데 가해자로서 남을 해쳤다면 그것은 정말 기억하기조차 싫을 거고 누구에게도 발설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제가 제주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어떤 참전군인 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저 세상에 가서 아무래도 내가 좋은 데 못 갈 것 같다.' 그러면서 굉장히 침통한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또 참전군인인데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 참전 군인들이 아무한테 얘기도 못하고 각자가 다 속으로 힘들게 몇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 책 70쪽에 보면 류진성 참전군인의 구술이 있는데 이거는 한번 읽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분이 1968년 2월 베트남 1번 국도변에 있는 마을을 지날 때 본 장면이었습니다.
내가 첨병이니까 첨병이라는 거는 부대가 행진해서 갈 때 맨 앞서서 가는 사람이 얘기야.
내가 첨병이니까 도로 정찰할 때도 맨 앞에서 갔지. 10m 간격씩 일렬 종대로 가.
근데 저쪽에서 마을 사람들이 막 그냥 울부짖고 소리치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래 한 200명 모여 있었을 거야.
우리가 가니까 막 삿대질하고 그래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 아마 욕을 했겠지.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있는가 몰랐어. 비켜주지를 않으니까 총 개머리판으로 맞대응하면서
눈 부릅 뜨고 지나갔지. 개머리판으로 밀어내면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거기서 그냥 뭐 뒤에서 칼로 찔러 버리면 죽는 거지. 막 독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데 등골이 오싹하고
정말 순간적으로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그때 보니까 마대 위에 시체들이 쭉 놓여 있었어.
나중에 도로 정찰 마무리하고 돌아올 때는 싹 치워져 있더라고. 그래서 알았어.
부대가 시끄러웠지. 월남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항의해서 조사단 나오고
그때 중대장이 조사도 많이 받고 그랬어... 이게 전쟁이구나. 그게 엄청난 전쟁 범죄지
그렇지만 남의 나라에 의존해서 국가를 방어하고 그런 처지의 베트남 사람들이
어디에다 항의할 수 있었겠어. 그래서 어떤 경우든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거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 6.25 때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냐고
그래도 제대로 항의 한 번 했냐고. 전쟁이라는 것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지
전쟁은 일으켜서는 안되는 인류 최고의 범죄야.
그게 15개월 월남전 생활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야.
내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야.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참전군인 류진성의 말

사회 안지혜
두 분 말씀은, 참전군인을 국가에 의해서 동원된 사람들로 여기고 트라우마를 앓는 피해자로만 보는 것이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지운다는 시선에 대해, 그러니까 총을 들었던 행위를 합리화하는 거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그것도 계속 고민해 봐야한다 하시면서도, 특히 주교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아요. 피해 경험뿐만 아니라 가해 경험도 말할 수가 없는데, 특히 가해 경험은 당당하지도 않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는데, 그들을 말하는 자리로 끌어내야 하는 활동의 의미, 말하는 자리로 불러오는 의미를 말씀해주신 거구나 라고 저는 지금 이해했어요. 저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을 편집하면서는, 참전군인을 뭉뚱그려서 총을 든 사람들로만 납작하게 보지 말고, 가해 자리에 있었던 개인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우리 모두의 배움의 자리로, 평화의 도구로 만들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는데요. 지금 말씀을 들으면서 책임의 자리를 고민하게 돼요. 어쨌든 그 분들을 말의 자리로 불러와야 책임의 자리도 같이 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강우일 주교
참전한 분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구술을 하도록 권유를 받으면 생각하게 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리를 하게 되죠. 전쟁은 절대 안 된다든지 이런 얘기를 아마 스스로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니까 그냥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아니라, 우리가 가서 저지른 일들이 과연 어떤 일이었는지를 피해자 입장에서 전해주고, 국가가 보내서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엄청난 비극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면서 확산이 되고 하면은 우리 국민의 전쟁에 대한 의식이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참전군인을 만나면 본인도 (전쟁에 대해) 잊고 살다가 얘기를 하니까 그게 계속 재현이 되면서 머릿속에 그 기억들이 계속 자리가 커진다, 그 얘기를 하고 나면 그날 밤에는 잠을 잘 못 잔다,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저희는 사실 너무 가볍게 혹은 그냥 그분이 그거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한 고려를 깊이 하지 못하고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듣지만 그분한테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죠. 그것은 폭력의 경험이 어느 자리에 있던 그런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이 말씀을 드리면서 저도 이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과 아카이브평화기억의 활동이 참전군인들의 어떤 개개인의 전쟁 기억들을 공적인 말의 자리로 끌고 와서 이야기 나누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이 베트남전쟁이라는 역사 자체가 국가 서사로만 기억이 되고 있고 이후로는 망각이 되어버린 전쟁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전쟁은 그냥 갔다 와서 우리가 외화벌이를 많이 해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고 또 6.25 전쟁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얻었다면 베트남전쟁으로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보은을 하는 전쟁이다라고 하는, 자유 수호의 십자군이라고 하는 그런 전쟁의 서사를 갖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막상 참전군인을 만나보니 그들의 전쟁 이야기 속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건 죽음과 가난이더라고요.
전쟁경험이 너무 달라서 전쟁터라는 것을 못 느끼고 돌아온 분들도 많고, 그걸 지금도 느끼지 않는 분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베트남전쟁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전쟁을 성찰하는 표현을 한다거나 내가 이 전쟁에 갔던 걸 후회한다라거나 이런 표현들을 마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근데 우리는 그분들을 만날 때 뭔가 자꾸 가해라고 하는 어떤 그 폭력의 어떤 현장이라고 하는 그 상상력 속에서 이분들에게 기대하는 혹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거거든요. 그랬을 때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참전군인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또 참전군인 한 분을 여러 차례 만나고 그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글과 말로 전달해야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의 문제도 쉽지 않은 문제거든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 말을 듣고 전할 것이냐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이 운동이라고 하는 거는 참전군인의 말이 나를 통해서 가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하고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되는 자리인 것 같아요. 그것은 민간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일도 내가 왜 베트남에 가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거기에 대해서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 안지혜
사전 질문이 들어온 게 있는데 한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베트남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은데 한국군은 모두 민간인학살을 저지른 가해자로만 보게 될까 봐, 그러니까 한쪽은 가해자 한쪽은 피해자로만 보게 될까 봐 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스럽다라는 질문을 주셨거든요.
강우일 주교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다 직접적인 가해자나 피해자도 아니고 두 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근데 그것보다도 저는 글쎄요. 학생들한테 베트남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 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해줄 필요도 있겠지만, 이 전쟁이라는 게 왜 일어났는지 그게 의미가 있었는지 그 후에 베트남전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 그런 것을 미리 성찰을 하시고 학생들한테 다가가셔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까 류진성 씨도 그랬고 오경열 씨도 그랬지만 전쟁이라는 게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의 폭력이거든요. 그래서 국가가 과연 그런 폭력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가. 구체적인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작동했다는 것을 아이들하고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에 우리 민족이 국가 폭력에 대해서 수차례 당하고 고통을 겪었고 하니까 거기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서 작년 12월 3일 날 여의도에 모두 몰려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역량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젊은이들하고 전쟁을 논할 때 역사상에 일어난 전란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베트남전쟁을 이해하는 데도 좋지 않을까. 특히 베트남전쟁은 그야말로 조국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때 당시에 미국의 요청 또는 박정희 대통령의 야심이었죠. 또 대한민국이 고속도로 닦으면서 아주 단기간에 경제적인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베트남전쟁과 상당한 연결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학생들 스스로가 판단하게끔 하는 게 선생님이 답을 가지고 제시하는 것보다 좋지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저도 짧게 보태면 베트남전쟁과 관련 주제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있어요. 저는 이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여러 시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이 전쟁이 한국 해외 파병의 시작점에 있기 때문에 왜 우리는 파병 국가가 되었고 파병이라는 게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지 그게 사실 베트남전쟁을 공부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시사점이 나와요. 사실상 용병으로 간 것이고, 그랬을 때 전쟁 동원은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마치 조국을 위한 전쟁, 애국이라는 표현으로 포장을 하지만 실제 현대 전쟁은 용병들이 하는, 기업이 하는 전쟁이잖아요. 갈수록 더 하고요. 그리고 가난한 자식들일수록 전쟁에 끌려갈 가능성이 더 커지고 이 베트남전쟁을 봐도 그렇고요.
그리고 사람만이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에코사이드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고엽제라고 하는 거는 모든 것을 죽여버린 겁니다. 전쟁이 일어난 그 시간에 국한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고, 베트남에서 지뢰 제거 작업 지금까지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전쟁이라는 게 그 시간과 공간에 없었던 존재들한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현지에 간 병사와 노동자들로 인해서 현지 여성들과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또 살아가는 이야기 등 굉장히 많습니다. 어느 전쟁이든 군인보다 많이 죽는 게 민간인입니다. 약자들이 더 비참한 게 전쟁이거든요. 그랬을 때 작은 존재들에 대한 피해와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맞겠고요. 그렇기 때문에 찾아보면은 정말 저희가 얘기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고 또한 우리가 미국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제국주의 아래서 꼬마 제국주의 전쟁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우리가 자꾸 피해 가해라고 하는 그런 인식 안에 가두지 않고 우리 또한 그 옆에서 계속 뭔가 그걸 통해서 물질을 얻어내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이런 것들은 그러면 옳은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 등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사회 안지혜
전쟁이나 여러 국가폭력, 4.3 등을 생각하면 도대체 국가는 무엇인가.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은데요.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약간 국가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베트남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는 국가, 베트남전쟁 피해자뿐만 아니라, 참전군인에게도 말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거기에 같이 책임을 져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할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 주교님의 그간 활동과 말씀을 보면서, 송구한 마음이지만 계속 주교님한테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기는데요. 그리고 또 하나 사전 질문이 있었어요. 평화가 너무 어렵다. 어떤 분이 주교님 평화가 너무 어렵습니다. 내 안에 평화 찾기도 너무 어렵다. 주교님은 평화를 찾는 비법이 있으신지 물어보셨는데요.

강우일 주교와 함께 읽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강우일 주교
그런 비법은 절대로 없을 것 같고요. 제가 오늘 강정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왔어요. 강정의 거리 미사를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지냅니다. 강정에 평화센터가 있어요. 그곳에서 점심 먹고 왔는데 그 평화센터 1층 복도에 언제 써붙여놨는지는 모르지만 짤막하게 쓰인 글이 있어요. 내용이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그렇게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서 제가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작전을 짜 가지고 이런 일을 하고 저런 일을 하면 언젠가는 평화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야기를 하신 분의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평화가 길이다' 하는 말은 평화를 위해서 지금 평화를 살아야 된다는 그런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평화를 살기 위해서는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세력이나 현상에 대해서 맞서서 싸운다고 할까,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길밖에 없는 게 아닌가.
저는 제가 천주교 성직자이기 때문에 항상 돌아가는 최종 결론은 예수님 말씀인데요. 예수님이 언젠가 이제 막바지에 가서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난 불을 주려고 왔다.' 불을 주려고 한다는 그러니까 많은 신앙을 찾는 사람들이 교회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렇게 말씀들을 하거든요. 근데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교회 가는 것은 예수님이 바라신 길이 아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불을 주려고 왔다는 말씀은 '지금 마음이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을 해라' 그런 말씀이고 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아픔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말아라' 하는 말씀으로도 들리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찾아가는 길을 찾지 마시고 지금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도 말을 하고, 평화라는 말이 정치에서도 굉장히 여러 현장에 등장하는 단어잖아요. 그러니까 평화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평화라는 걸 우리가 너무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때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평화는 구체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땅에 발을 딛고 그 평화가 뭔지 구체로 계속 접하고 이야기하고 그걸 마주하는 게 변질되지 않는 방법인 것 같거든요. 그리고 힘든 건 맞는 것 같아요. 그 길을 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고 그게 고요하지도 않고요. 사람들은 평화가 고요하고 잔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저는 평화는 그 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가면 갈수록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전쟁이라는 것을 결국 평화로 이해하는 방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쟁 기억을 그 구체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 아닐까. 결국 전쟁이라는 걸 평화로 이야기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가톨릭 군종제도와 군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강우일 주교님은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현대전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의로운 전쟁이란 더 이상 없다는 가톡릭 교회의 논쟁과 흐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군종제도가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있다는 의견도 나누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군대에 대한 생각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나는 인류의 역사를 지배해 온 배경에 군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군대가 없어지지 않을 거로 알지만 희망과 기대, 그리고 기도를 놓지 않겠습니다.
그런 내용을 이사야서에 나온 말씀으로 들려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이사야서 2장에 보면 이게 이제 메시아 그러니까 세상을 마지막으로 구원하실 분이 오시면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하는 거를
이야기하는 구절이거든요. 이사야서 2장 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분께서 (그분께서 라는 메시아가 오시면, 그 구세주가 오시면)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앞으로도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북토크는 계속 이어집니다!

글 정리 석미화 / 사진 조한결
2025년 11월 26일 오후 7시, 전진상영성센터에서 책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북토크의 제목은 ‘강우일 주교와 함께 읽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는 어떻게 평화와 만나야 할까’입니다.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평화를 둘러싼 여러 생각들을 나누었는데요. 이 자리에서 강우일 주교님이 인상 깊게 읽은 책의 구절들을 낭독하고, 이와 연결된 전쟁과 군대, 종교에 대해 두루 이야기했습니다.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의 저자이자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대표가 함께하고, 알록출판사 안지혜 대표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날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강우일 주교
이 책에 오경렬이라는 분이 한 말이 있어요. 낭독해 보겠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정신없이 전투에 참가하고 돌아와 보니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느끼게 되었고, 다시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지만 말을 해야 한다고 느끼신 것 같아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은 국가라는 큰 시스템에 의해서 간 사람들이고, 그런 부분에서는 피해와 가해, 두 가지 성격을 다 지닌 사람들이 아닐까요. 우리 인간이 누구나가 다 그렇지만 100퍼센트 선한 사람도 없고 100퍼센트 악한 사람도 없듯이 말이죠.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주교님이 나눠 주신 말씀은 베트남 평화운동 안에서도 첨예한 주제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참전군인의 위치성이 가해의 자리에 있지만 또한 국가의 시스템 안에 동원된 존재로서 피해자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것은 곧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무너뜨려서 모두가 다 피해자라고 하는 거 아니냐' 라는 고민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참전군인에게 피해의 위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다', 하는 우려와 걱정이 이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 안에 있다고 느끼는데요. 이 지점은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살펴봐야 하는 주제인 것 같아요.
그러는 한편, 저는 가해와 피해라고 하는 프레임이 베트남 평화 운동의 큰 화두인 상황에서, 이것 바깥에, 혹은 이것이 아닌 다른 관점은 없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있어요.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위의 결괏값으로서 가해나 피해라고 하는 자리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행위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전체 맥락과 구조, 개개인의 서사와 모순을 좀 더 바로 직면해야하지 않는가 싶은 거죠. 그래서 그 노력으로 참전군인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강우일 주교
제가 조금 더 첨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누구나가 다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죠. 이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영혼 전체의 균형과 질서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걸 스스로 다시 상기하고 싶지도 않고 또 얘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그거를 제주에 가서 굉장히 절실히 느꼈어요. 제주 4.3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80년이 다 됐는데 그때 4.3을 겪은 분들 중에 그 긴 세월을 두고서 자녀 세대에게 자기가 무엇을 겪었는지 그걸 증언을 안 했어요. 제가 제주인들에게, 대개 한 50대에서 60대 분들에게 당신이 직접 경험을 못해도 당신의 부모님 세대에서 분명히 겪었을 테니까 부모들로부터 뭐를 들었는지 그 증언이 있으면 좀 나한테 알려달라고 했는데 거의 못 들었다고 그래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들도 자기가 피해를 당했다는 것은 얘기를 할 수 있을지 몰라요. 근데 가해자로서 남을 해쳤다면 그것은 정말 기억하기조차 싫을 거고 누구에게도 발설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제가 제주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어떤 참전군인 분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저 세상에 가서 아무래도 내가 좋은 데 못 갈 것 같다.' 그러면서 굉장히 침통한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하더군요. 또 참전군인인데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그 참전 군인들이 아무한테 얘기도 못하고 각자가 다 속으로 힘들게 몇십 년을 살아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겁니다. 이 책 70쪽에 보면 류진성 참전군인의 구술이 있는데 이거는 한번 읽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분이 1968년 2월 베트남 1번 국도변에 있는 마을을 지날 때 본 장면이었습니다.
내가 첨병이니까 첨병이라는 거는 부대가 행진해서 갈 때 맨 앞서서 가는 사람이 얘기야.
내가 첨병이니까 도로 정찰할 때도 맨 앞에서 갔지. 10m 간격씩 일렬 종대로 가.
근데 저쪽에서 마을 사람들이 막 그냥 울부짖고 소리치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래 한 200명 모여 있었을 거야.
우리가 가니까 막 삿대질하고 그래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지. 아마 욕을 했겠지.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있는가 몰랐어. 비켜주지를 않으니까 총 개머리판으로 맞대응하면서
눈 부릅 뜨고 지나갔지. 개머리판으로 밀어내면서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거기서 그냥 뭐 뒤에서 칼로 찔러 버리면 죽는 거지. 막 독기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데 등골이 오싹하고
정말 순간적으로 별 생각이 다 들더라고. 그때 보니까 마대 위에 시체들이 쭉 놓여 있었어.
나중에 도로 정찰 마무리하고 돌아올 때는 싹 치워져 있더라고. 그래서 알았어.
부대가 시끄러웠지. 월남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항의해서 조사단 나오고
그때 중대장이 조사도 많이 받고 그랬어... 이게 전쟁이구나. 그게 엄청난 전쟁 범죄지
그렇지만 남의 나라에 의존해서 국가를 방어하고 그런 처지의 베트남 사람들이
어디에다 항의할 수 있었겠어. 그래서 어떤 경우든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거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 6.25 때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했냐고
그래도 제대로 항의 한 번 했냐고. 전쟁이라는 것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이지
전쟁은 일으켜서는 안되는 인류 최고의 범죄야.
그게 15개월 월남전 생활 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야.
내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야.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참전군인 류진성의 말
안지혜 알록출판사 대표
사회 안지혜
두 분 말씀은, 참전군인을 국가에 의해서 동원된 사람들로 여기고 트라우마를 앓는 피해자로만 보는 것이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지운다는 시선에 대해, 그러니까 총을 들었던 행위를 합리화하는 거 아니냐라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 그것도 계속 고민해 봐야한다 하시면서도, 특히 주교님께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 같아요. 피해 경험뿐만 아니라 가해 경험도 말할 수가 없는데, 특히 가해 경험은 당당하지도 않고, 말할 수 있는 자리가 없는데, 그들을 말하는 자리로 끌어내야 하는 활동의 의미, 말하는 자리로 불러오는 의미를 말씀해주신 거구나 라고 저는 지금 이해했어요. 저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을 편집하면서는, 참전군인을 뭉뚱그려서 총을 든 사람들로만 납작하게 보지 말고, 가해 자리에 있었던 개인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우리 모두의 배움의 자리로, 평화의 도구로 만들 수 있는지가 고민이었는데요. 지금 말씀을 들으면서 책임의 자리를 고민하게 돼요. 어쨌든 그 분들을 말의 자리로 불러와야 책임의 자리도 같이 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고민이 되는 것 같아요.
강우일 주교
참전한 분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구술을 하도록 권유를 받으면 생각하게 되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정리를 하게 되죠. 전쟁은 절대 안 된다든지 이런 얘기를 아마 스스로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니까 그냥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아니라, 우리가 가서 저지른 일들이 과연 어떤 일이었는지를 피해자 입장에서 전해주고, 국가가 보내서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엔 엄청난 비극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면서 확산이 되고 하면은 우리 국민의 전쟁에 대한 의식이 조금씩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참전군인을 만나면 본인도 (전쟁에 대해) 잊고 살다가 얘기를 하니까 그게 계속 재현이 되면서 머릿속에 그 기억들이 계속 자리가 커진다, 그 얘기를 하고 나면 그날 밤에는 잠을 잘 못 잔다,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저희는 사실 너무 가볍게 혹은 그냥 그분이 그거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한 고려를 깊이 하지 못하고 질문을 하고 이야기를 듣지만 그분한테는 그것을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죠. 그것은 폭력의 경험이 어느 자리에 있던 그런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이 말씀을 드리면서 저도 이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과 아카이브평화기억의 활동이 참전군인들의 어떤 개개인의 전쟁 기억들을 공적인 말의 자리로 끌고 와서 이야기 나누는 것에 의미가 크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이 베트남전쟁이라는 역사 자체가 국가 서사로만 기억이 되고 있고 이후로는 망각이 되어버린 전쟁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전쟁은 그냥 갔다 와서 우리가 외화벌이를 많이 해서 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을 했고 또 6.25 전쟁으로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얻었다면 베트남전쟁으로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보은을 하는 전쟁이다라고 하는, 자유 수호의 십자군이라고 하는 그런 전쟁의 서사를 갖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막상 참전군인을 만나보니 그들의 전쟁 이야기 속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건 죽음과 가난이더라고요.
전쟁경험이 너무 달라서 전쟁터라는 것을 못 느끼고 돌아온 분들도 많고, 그걸 지금도 느끼지 않는 분들도 많고,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게 베트남전쟁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전쟁을 성찰하는 표현을 한다거나 내가 이 전쟁에 갔던 걸 후회한다라거나 이런 표현들을 마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근데 우리는 그분들을 만날 때 뭔가 자꾸 가해라고 하는 어떤 그 폭력의 어떤 현장이라고 하는 그 상상력 속에서 이분들에게 기대하는 혹은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거거든요. 그랬을 때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참전군인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또 참전군인 한 분을 여러 차례 만나고 그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글과 말로 전달해야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전달할 것이냐의 문제도 쉽지 않은 문제거든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그 말을 듣고 전할 것이냐를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이 운동이라고 하는 거는 참전군인의 말이 나를 통해서 가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하고 바라보고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되는 자리인 것 같아요. 그것은 민간인 학살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일도 내가 왜 베트남에 가서 미안하다고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거기에 대해서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회 안지혜
사전 질문이 들어온 게 있는데 한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베트남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은데 한국군은 모두 민간인학살을 저지른 가해자로만 보게 될까 봐, 그러니까 한쪽은 가해자 한쪽은 피해자로만 보게 될까 봐 좀 걱정이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스럽다라는 질문을 주셨거든요.
강우일 주교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이 다 직접적인 가해자나 피해자도 아니고 두 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데요. 근데 그것보다도 저는 글쎄요. 학생들한테 베트남전쟁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로 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해줄 필요도 있겠지만, 이 전쟁이라는 게 왜 일어났는지 그게 의미가 있었는지 그 후에 베트남전으로 인해서 어떤 결과가 생겼는지 그런 것을 미리 성찰을 하시고 학생들한테 다가가셔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아까 류진성 씨도 그랬고 오경열 씨도 그랬지만 전쟁이라는 게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국가의 폭력이거든요. 그래서 국가가 과연 그런 폭력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가. 구체적인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 국가의 폭력이 어떻게 작동했다는 것을 아이들하고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에 우리 민족이 국가 폭력에 대해서 수차례 당하고 고통을 겪었고 하니까 거기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서 작년 12월 3일 날 여의도에 모두 몰려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역량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젊은이들하고 전쟁을 논할 때 역사상에 일어난 전란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베트남전쟁을 이해하는 데도 좋지 않을까. 특히 베트남전쟁은 그야말로 조국을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때 당시에 미국의 요청 또는 박정희 대통령의 야심이었죠. 또 대한민국이 고속도로 닦으면서 아주 단기간에 경제적인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베트남전쟁과 상당한 연결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 구체적인 사실을 가지고 학생들 스스로가 판단하게끔 하는 게 선생님이 답을 가지고 제시하는 것보다 좋지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저도 짧게 보태면 베트남전쟁과 관련 주제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있어요. 저는 이 전쟁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여러 시사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이 전쟁이 한국 해외 파병의 시작점에 있기 때문에 왜 우리는 파병 국가가 되었고 파병이라는 게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로 작동하는지 그게 사실 베트남전쟁을 공부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시사점이 나와요. 사실상 용병으로 간 것이고, 그랬을 때 전쟁 동원은 계급의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마치 조국을 위한 전쟁, 애국이라는 표현으로 포장을 하지만 실제 현대 전쟁은 용병들이 하는, 기업이 하는 전쟁이잖아요. 갈수록 더 하고요. 그리고 가난한 자식들일수록 전쟁에 끌려갈 가능성이 더 커지고 이 베트남전쟁을 봐도 그렇고요.
그리고 사람만이 피해를 입은 것이 아니라 에코사이드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지만 고엽제라고 하는 거는 모든 것을 죽여버린 겁니다. 전쟁이 일어난 그 시간에 국한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고, 베트남에서 지뢰 제거 작업 지금까지도 하고 있거든요. 그런 것처럼 전쟁이라는 게 그 시간과 공간에 없었던 존재들한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현지에 간 병사와 노동자들로 인해서 현지 여성들과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이 또 살아가는 이야기 등 굉장히 많습니다. 어느 전쟁이든 군인보다 많이 죽는 게 민간인입니다. 약자들이 더 비참한 게 전쟁이거든요. 그랬을 때 작은 존재들에 대한 피해와 희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맞겠고요. 그렇기 때문에 찾아보면은 정말 저희가 얘기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고 또한 우리가 미국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제국주의 아래서 꼬마 제국주의 전쟁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우리가 자꾸 피해 가해라고 하는 그런 인식 안에 가두지 않고 우리 또한 그 옆에서 계속 뭔가 그걸 통해서 물질을 얻어내고 경제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이런 것들은 그러면 옳은 것인가라고 하는 질문 등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사회 안지혜
전쟁이나 여러 국가폭력, 4.3 등을 생각하면 도대체 국가는 무엇인가. 회의적인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은데요. 오늘 두 분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약간 국가에 대한 기대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베트남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지는 국가, 베트남전쟁 피해자뿐만 아니라, 참전군인에게도 말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거기에 같이 책임을 져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국가가 할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 주교님의 그간 활동과 말씀을 보면서, 송구한 마음이지만 계속 주교님한테 그런 자리를 만들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기는데요. 그리고 또 하나 사전 질문이 있었어요. 평화가 너무 어렵다. 어떤 분이 주교님 평화가 너무 어렵습니다. 내 안에 평화 찾기도 너무 어렵다. 주교님은 평화를 찾는 비법이 있으신지 물어보셨는데요.
강우일 주교와 함께 읽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강우일 주교
그런 비법은 절대로 없을 것 같고요. 제가 오늘 강정에 가서 미사를 지내고 왔어요. 강정의 거리 미사를 한 달에 한 번씩 가서 지냅니다. 강정에 평화센터가 있어요. 그곳에서 점심 먹고 왔는데 그 평화센터 1층 복도에 언제 써붙여놨는지는 모르지만 짤막하게 쓰인 글이 있어요. 내용이 '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길이다' 그렇게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그 글을 읽으면서 제가 참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작전을 짜 가지고 이런 일을 하고 저런 일을 하면 언젠가는 평화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야기를 하신 분의 뜻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평화가 길이다' 하는 말은 평화를 위해서 지금 평화를 살아야 된다는 그런 얘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평화를 살기 위해서는 평화를 깨뜨리는 모든 세력이나 현상에 대해서 맞서서 싸운다고 할까,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 길밖에 없는 게 아닌가.
저는 제가 천주교 성직자이기 때문에 항상 돌아가는 최종 결론은 예수님 말씀인데요. 예수님이 언젠가 이제 막바지에 가서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난 불을 주려고 왔다.' 불을 주려고 한다는 그러니까 많은 신앙을 찾는 사람들이 교회에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렇게 말씀들을 하거든요. 근데 정말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교회 가는 것은 예수님이 바라신 길이 아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불을 주려고 왔다는 말씀은 '지금 마음이 고통스럽고 힘들더라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을 해라' 그런 말씀이고 또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아픔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말아라' 하는 말씀으로도 들리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찾아가는 길을 찾지 마시고 지금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또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답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도 말을 하고, 평화라는 말이 정치에서도 굉장히 여러 현장에 등장하는 단어잖아요. 그러니까 평화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평화라는 걸 우리가 너무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때 '평화를 위해서 전쟁을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평화는 구체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땅에 발을 딛고 그 평화가 뭔지 구체로 계속 접하고 이야기하고 그걸 마주하는 게 변질되지 않는 방법인 것 같거든요. 그리고 힘든 건 맞는 것 같아요. 그 길을 가는 게 쉽지 않은 것 같고 그게 고요하지도 않고요. 사람들은 평화가 고요하고 잔잔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저는 평화는 그 반대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가면 갈수록 들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전쟁이라는 것을 결국 평화로 이해하는 방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쟁 기억을 그 구체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거 아닐까. 결국 전쟁이라는 걸 평화로 이야기하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가톨릭 군종제도와 군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강우일 주교님은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현대전에 대해 이야기하며 정의로운 전쟁이란 더 이상 없다는 가톡릭 교회의 논쟁과 흐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군종제도가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갖고 있다는 의견도 나누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군대에 대한 생각을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