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일다] 태극기와 성조기 깃발 아래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서평 김은화 | 2025-09-19


구술기록자로서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구술자들은, 이야기를 듣기도 전부터 옹호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보다 앞선 시대를 살아낸 선배 여성들의 이야기, 특히 어머니들의 삶을 옹호하기란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고 한탄하게 되었다. 물론 시비를 걸 지점도 많아서 그때마다 걸려 넘어지며 때로는 피 토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쏟아내곤 하지만, 그것 또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이야기는 어떤 자세로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참전군인이라고 하면 근 10년간 광화문에서 목격해온, 극우 기독교인들과 결합한 군복 입은 남성 노인들의 무리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무슨무슨 전우회가 적힌 깃발과 태극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노인들. 나와 정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가진 남성들.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이야기라니, 책을 들춰보기도 전부터 방어적인 자세가 된다.

 

그래도 한번 들어는 보고 싶다. 어쨌든 책 제목 그대로 이들은 ‘전쟁에 동원된 남성들’이니까.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전에 파병을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남의 나라 전쟁터에 가서 총을 들 일이 뭐 있었겠는가. 그것도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말이다. 국가가 안내한 길 위에 전쟁터가 있었고 거기서 20대 남성들은 무기를 들었다. 그들이 80대가 되어 지난날을 회고한다. 참전군인들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고, 의미화하고 있을까.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아카이브평화기억 기획, 석미화, 이재춘, 박혜진, 최여울, 노예주, 박정원, 이현주, 김엘림 글, 2025, 알록출판사) [사진-출판사 제공]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와 ‘민간인 학살’, 그 너머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에는 여섯 명의 참전군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1940~1950년 사이,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태어났다. 지독한 가난에 쫓겨 베트남전에 자원한 사람이 둘이다. 유성원은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나 두 동생과 홀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려 직업 군인이 되고서 파병을 신청했다. 안익순 씨는 가뭄 피해가 심각했던 고향 집에 입 하나 덜기 위해 베트남에 갔다. 이와는 달리, 직업 군인으로서 빨리 진급하기 위해 파병을 신청한 경우도 있다. 송금술과 최홍희가 그렇다. 이들은 전쟁 후반기에 베트남에 도착했고, 위험이 높은 전쟁 초반에는 주로 군인들을 강제로 차출해갔다. 오경열도 차출, 해병대 출신의 류진성도 형식은 자원이지만 국가 차원에서 군대 생활을 못견디게 만들었기에 차출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이들이 베트남에 가게 된 경로만큼이나 돌아온 이후의 행로도 가지각색이다. 그리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의견도 조금씩 다르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이 책의 참전군인들은 이렇게 정의한다. ‘민간인인지 베트콩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국군을 건드리면 인근 마을에 찾아가 주민 모두를 살해하고 복수함으로써 한국군 전체의 안전을 도모하는 행위.’ 국제법에 의하면 이것은 전쟁범죄다. 그러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글의 공포를 경험해본 참전군인들은 쉽게 단정 짓지 못한다.

 

유성원은 윤리적으로 이를 “옹호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서도 “그렇게 하면 군 피해는 줄어들었을 것”이라며 효용을 일부 인정한다. 한편 최홍희는 생존 논리를 내세우며 한국군을 적극적으로 편든다. “누가 봐도 인간이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솔직히 누가 적군인지 아군인지 모르는데 나 같아도 쏘지 관두겠냐고. 잘못하면 내가 죽겠는데.”라면서 개인이 아닌 정부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부가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들은 ‘옳음’과 ‘효용’ 사이 어딘가에서 주춤거린다.

 

반면 ‘해병대 상남자’ 류진성은 시원하게 말한다. “우리가 잘못했지. 사과해야지.” 1968년 2월 그는 청룡부대 일원으로 한 마을을 지나가던 중 시체더미 앞에서 한국군을 향해 오열하며 달려드는 민간인들을 마주한다. 15개월 남짓한 파병 생활에서 트라우마로 남은 이 기억에 대해 2018년 시민평화법정(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서 진술했다. 그는 이 진술로 인해 주변 동료들을 잃고, 그토록 원하던 상이군경회 회장 자리에서도 영영 멀어졌다. 침묵이 더 쉬웠을 텐데 그는 왜 사람들 앞에 나가 진실을 말했을까.

 

공교롭게도 류진성을 비롯해 베트남전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참전군인은 모두 전라도 출신이다. 이들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한번은 가해의 자리에서, 또 한번은 피해의 자리에서 국가폭력을 경험했다. 그래서 안다. 피아를 식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고 죽여야 한다는 논리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없어서 마을 전체를 불태운다는 논리는, 빨갱이와 시민을 구분할 수 없으니 지역을 봉쇄하고 거리에 보이는 족족 모두 죽인다는 전두환 신군부의 결정과 닮아 있다. 퐁니․퐁넛 마을의 비극은 한국의 현대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제주 4.3이 그러했고, 6.25 시기 골짜기마다 자행된 양민 학살이 그러하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모두 이어져 있다. 한국군 입장에서는 누가 베트콩이고 민간인인지 구분할 수 없으니 모두를 적으로 본다면, 베트남 사람들 입장에서는 누가 가해를 저지른 한국군이고 그저 지나가는 부대원인지 알 길이 없으므로, 그들 눈에는 한국 군복을 입은 모두가 학살자로 보일 것이다. 이로 인해 파병된 한국군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학살에 연루된다. 여기서 무관할 수 없었던 류진성은 그래서 “우리가 잘못했지. 사과해야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여러 범죄에 대해 참전군인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에서 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지만, 류진성을 영웅시하는 것은 경계하고 싶다. 생존을 위한 자기보호 논리보다 공존을 위한 윤리가 값어치 있게 여겨지는 세상에서라면, 본 대로 진실을 말하는 게 기본값이었을 테니 말이다.

 


 

 

▲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 너머에서 만난 베트남전쟁 참전군인의 목소리”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아카이브평화기억 기획, 2025) 출간기념 북토크가 2025년 6월 26일 서울 마포에 위치한 ‘플랫폼P’에서 열렸다. (주최 및 촬영: 알록출판사)




살아온 이야기를 듣다 보면 참전군인을 결코 악인으로 바라볼 수 없다.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지닌 최홍희의 이야기조차도 듣고 있으면 화도 나는데 왠지 안쓰럽다. 이 책을 읽다가 고엽제 관련 단체명이 고엽제 ‘환우회’가 아니라 ‘전우회’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미군의 고엽제 살포로 인해 병을 얻었으니 환우회가 붙는 게 자연스러운데, 여기에 전우회를 붙인 것은 후유증조차 참전의 영광스러운 상처로 여긴다는 의미인 걸까. 자식들에게 낙인이 될까 두려워 2세, 3세로 이어지는 고엽제 후유증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처사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참전군인에게 고통과 슬픔과 괴로움에 대해 말할 자리를 허하고 있는가. 미국에서는 그 흔한 참전군인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연구가 한국에서는 관련 통계조차 없다.

 

보수 정권에서는 지금껏 정치적 목적으로 군인들의 모임을 관변 단체로 육성하고 돈을 뿌리며 활용해왔다. 극우적이고 보수적인 목소리만 돌고 돌아 멀리 퍼지는 사이,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마침내 사라진다. 침묵의 나선효과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스팔트 우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전쟁에 동원된 남성들은 모두 다른 역사를 지닌 인간이다.

 

구술자, 채록자, 그리고 독자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참전군인들의 구술만큼이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저자들의 후기가 상세하게 수록돼있다. 이재춘은 베트남 참전군인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 다른 참전군인의 구술을 받아 적으며 고엽제 후유증을 앓는 2세로서 본인의 존재를 드러낸다. 기록 활동을 함께 하는 이들의 살아있는 고민, 그리고 이 활동을 기획한 아카이브평화기억 석미화 대표의 글로 이어지는 흐름 덕분에, 참전군인들의 구술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다만 몇몇 글에서는 저자들의 자세가 너무 조심스러운 게 아쉽다. 전쟁을 경험한 여든 넘은 노인의 말에 딴지를 걸고 이견을 제시하기가 어렵다는 걸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구술 작업은 궁극적으로는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나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현장에서는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적어도 글쓰기 과정에서라도 그 다름을 명확하게 드러냈더라면, 구술자와 채록자가 시차를 두고서라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나선 저자들의 용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을 읽으며 내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국제 정세를 잘 모르니, 책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인터넷을 뒤져 공부하며 읽었다. 지금까지 내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주워들은 것이라고는 국가 주도의 미화된 애국 서사, 혹은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가해자인 참전군인 이야기 정도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잃어버린 그들의 목소리가 있다. 누군가는 그 전쟁을 자랑스러운 과거로 여길 수도,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역사로 여길 수도 있다. 삶의 여적을 들여다보면 동의할 수 없는 주장임에도 그 심정이 이해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그건 아니라며 질문을 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만나야 하는 건 그런 자리가 아닐까. 광장의 태극기와 성조기 깃발 아래서는 만날 수 없는, 한 인간의 고유한 역사가 이 책에 있다.


 

[필자 소개] 김은화.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서사를 말함으로써 남성 중심 서사를 전복하는 책을 펴내는 딸세포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딸이 엄마의 삶을 듣고 기록하는 모녀 구술생애사집 『니는 딸이니까 니한테만 말하지』를 기획했으며,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를 쓰고 펴냈다.


* 이 글의 원문은 페미니즘 저널 일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