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7일, 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2023년 2월 7일 이루어진 1심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끼친 손해에 대해 30,000,100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청구를 이행해야 한다.
이 사건은 베트남전쟁 시기 참전 한국군에 의해 1968년 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대한민국 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 중 일부 인원이 1968년 2월 12일 퐁니 마을에서 작전 수행 중 고의로 비무장 민간인인 원고와 그의 가족에게 총을 쏴 상해를 가하고 살해하였으며 이로 인해 원고 응우옌티탄이 입은 정신적 고통과 충격이 크므로 이에 대한 위자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응우옌티탄의 가족 외 이 마을 사람 70여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1중대 2소대원으로 작전에 참여한 류진성은 2021년에 이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섰다. 언론은 베트남 파병 군인의 첫 증언이자 양심선언으로 보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4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항소심 판결 이후 베트남전쟁문제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 주최로 23일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전군인 류진성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자회견을 이틀 앞둔 21일 그와 재판 결과에 대한 소회를 나누기 위해 긴 통화를 했다. 그는 기자회견이 있는 날 병원 예약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그 자리에 함께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으냐고 먼저 질문해 보았다.
류진성
물어보는 걸 얘기해 주는 거지. 내가 뭔 얘기를 자랑삼아서 할 일도 아니고. 내가 경험했던 거 그런 걸 얘기하니까 똑같은 얘기지. 이것저것 얘기 꺼내서 한두 번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고. 물어보는 얘기는 내가 대답하지.
석미화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법정에서 증언까지 하셨네요.
류진성
자꾸 그냥 또 떠올리고 그러면은 아무리 그냥 잊어버렸다 해도 마음의 부담이 있지. 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마음의 빚은 조금 갚는 것 같아. 짐을 하나 더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생전에 이런 좋은 결과를 보고 간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야지. 재판 결과를 엊그저께 들으면서 옛날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필름이 다시 돌아오더라고.
석미화
만났을 때라고 하면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류진성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인연이 시작된 시점이 청와대거든.
석미화
청와대 앞에서부터 생각이 나셨어요?
류진성
그렇지 거기서부터 내가 왜 그렇게 나서 가지고 이런 고통의 길을 걸어왔는가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거야. 회상을 해보니까. 근데 이게 또 운명처럼 느껴지네. 그런 그 우연한 만남이. 예상했던 것도 아니고 기다렸던 것도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게 왔잖아. 이것이 어떤 하늘의 계시가 아닌가 그런 여러 가지 복잡하고 아주 미묘한 생각이 드는 것 같아. 그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또 그런 베트남에서의 그런 민간인들 그 살려달라는 절규 몸부림 그리고 이제 죽음을 보면서... 참 지금까지 세상 살아오면서 트라우마가 없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조금씩 잊고 살았었는데. 우리가 만나면서 자꾸 그게 자리가 커지는 거야. 그 트라우마 그런 이제 생각들이 다 떠오르고. 그때 나와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이 참 이게 묘한 거야. 그렇지 않아?
석미화
벌써 한 7-8년 전이에요.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라.
류진성
엊그저께 같은데 나는 그 시간이 마치 50년 같이 느껴져. 내가 겪은 갈등 또 여러 가지 내가 굳이 나서야 되느냐 하는 그런 내 마음속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 같은 것도 있어 왔고.
석미화
그런 마음의 갈등을 어떻게 다 물리치고 증언까지 하신 거예요?
류진성
그게 이제 내 가슴속에서 양심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 피하느냐. 그래도 피해자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입을 안 열면 더 열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이거를 묻고 가는 것보다는 밝히자, 이제 그런 갈등 속에서 그 마음이 이긴 거지. 그래서 이제 내 생활의 몰락이 시작된 거야. 그때부터 많은 것을 잃어버렸으니까 내가.
석미화
무얼 잃어버리셨어요.

류진성 참전군인 (사진: 김보람)
류진성
내가 그동안 꿈꾸고 노력했던 상이군인회 회장, 그것도 내가 실패했고 완전히 그때부터 그냥 낙인이 찍혀버린 거야. 나는 그냥 좌파로 그렇게 매도당했다니까. 그러니 그게 표를 얻을 수가 있겠어? 그러다 보니까 사업을 할 수가 있나 무슨 혜택을 볼 수가 있나 그 큰 걸 잃어버리니까. 이제 아주 현실적인 그런 피해가 큰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어. 근데 재판 결과를 보면서 이게 보상으로 느껴져. 다 잃어버리고 그나마 그게 조금 보람이 있는 거야. 이걸 얻었구나. 역시 내가 결정을 잘했다. 고생은 했지만, 손해는 많았지만, 그래도 또 이런 걸 얻음으로써 내 양심이 스스로 회복되고 그런 조그마한 자부심을 건진 거 같아. 결정을 내려준 재판부에도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참 좋은 방향으로 나라가 가는구나. 지금 윤석열이 탄핵 사태를 보면서 사법부가 썩은 것이 아니구나. 이런 판사들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2%의 염분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2%라고 하면 사법부에서 섭섭하겠지만은 그래도 2%는 살아 있구나. 나는 내 생에 이런 판단이 안 나올 줄 알았어.
석미화
기대를 안 하신건가요?
류진성
그래 국가가 항상 지는 이 재판은 시간을 무한정
석미화
끈다 이거죠.
류진성
내가 많이 봤는데 나도 그렇게 끝낼 줄 알았더니. 그래도 상당히 더 빨리 그나마 내가 살아 있을 때 이걸 보게 돼서 나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
석미화
아직 완전히 끝난 거는 아니잖아요.
류진성
근데 나는 90%는 됐다고 봐. 법률적 하자가 없는데 대법에서 어떻게 다시 내려보내겠어. 이제 상소하겠지만 기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석미화
사실 재판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고 기쁜일이지만 사실은 선생님이 그걸 위해서 고뇌하고 애를 썼던 그 시간이 결과와는 무관하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던 거잖아요. 만약에 이런 결과가 아니었다면.
류진성
파멸이지. 자기가 모든 걸 바쳐서 싸우고 했던 그런 것들이 다 그냥 모래성이 돼버리잖아.
그러면 희생만 남는 거야.
석미화
지금 서 계신 자리가 같은 동료들한테 외면당한 아픔도 있었고, 사실은 박수받고 환호받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류진성
아니에요. 이게 비난은 막 폭풍처럼 쏟아지는데 잘했다 칭찬은 (없지) 관심도 없고. 그거 ‘아이고 용기 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 소리를 어디 가서 할 사람도 없고. 그런 거 들을 데도 없고. 그냥 내 스스로 생각을 한 거지. 그나마 이게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그래도 참 내가 그나마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는 거야.
석미화
그러니까 사회적 인정이나 격려를 그동안에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던 거잖아요.
류진성
그거를 받은 거는 이제 시민단체 관련된 사람들한테 받은 거지.
참, 앞으로 이제 대법에서도 빨리 결정을 해서 피해자들한테 보상도 내가 살아 있을 때 다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어.
석미화
그거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류진성
가능할 거야. 한 10년은 내가 못 버티겠어?
석미화
100세까지 가능하실 것 같은데. 이렇게 건강하신데.
류진성
아니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건 아니고 내 그동안에 겪어온 고통 뭐 이런 거를 아마 하늘에서 그 정도는 보상해 주지 않겠어? 좋은 결과 보고 오라고 시간을 줄 것 같아. 하늘에서.
석미화
증언을 준비했던 과정도 저는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증언 준비한다고 변호사들하고 주말마다 만나고 증언대에 오르기 전에 여러 우여곡절도 많이 있었고. 그런 시간들도 떠오르더라고요. 항상 유쾌하게 말씀을 하시고 이런 얘기를 길게 하신 적은 없잖아요. 고뇌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라는 표현을 하셔서, 분명히 그런 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우리가 살피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전쟁기념관 청룡부대 전사자명비 앞에서 류진성 참전군인이 동료의 이름을 찾고 있다.(사진: 둘리)
류진성
좋은 결과가 나온 걸 보면서 이제 그런 추억들을 다시 한번 떠올린 거야. 돌아봤고 쭉 떠오르는 거야. 주위 동료들이 많이 떠났는데... 나는 한 세계를, 파트너를 다 잃어버린 거야. 그런 게 참 보여줄 수도 없고, 다시 부를 수도 없고.
석미화
이 판결이 너무 반갑고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짓누르는 게 있어요.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라고 하는 단어의 조합이 참전군인을 가해 집단으로 획일화하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하는 거죠.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단죄가 집단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심히 살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참전군인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참전군인을 만나 듣는 이야기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려는 것이냐는 말도 나와요.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학살과 가해자라는 연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류진성
그러니까 그게 참전 자체를 이제는 숨기려고 하지.
석미화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있잖아요. 우선 원고인 응우옌티탄이 있고 함께 한 시민사회가 있고 또 참전군인 동료도 선생님의 고뇌에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일 텐데 그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류진성
피해자분들한테는 그저 할 수 있는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고 그저 죄송한 마음이고. 그게 돈으로 보상한다고 또 다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 마음의 상처라는 거는 항상 참 죄스럽고 미안하고 그러지. 그래서 빨리 이런 모든 문제가 완결이 돼서 그나마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좀 해서 그분들이 노후에라도 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고. 그리고 이제 나는 잘못된 거는 잘못한 대로 털어놓고 다시 진정한 화해를 통해서 새 출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는 낫지 않겠냐는 그런 판단에서 진실을 밝히는 쪽을 선택했는데 또 다른 (참전군인) 동료들은 나와 상반된 그런 생각들을 가진 동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친구들한테는 내가 참 미안하지. 미안하지만은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부탁도 하고 싶고. 나는 이것이 소위 요즘 말하는 국격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니까. 아니 나라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욕되게 하려고 그런 선택을 했겠나. 나는 이게 차라리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한 길이다라고 생각해서 내 양심대로 행동을 한 거니까. 이런 점을 좀 깊이 헤아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어.
석미화
시민사회에는요. 함께한 사람들.
류진성
잊혀져가는 거, 감추어진 거, 이런 거를 들춰내서 우리 사회를 위해 참 많은 악조건 속에서 자기 인생들 젊음을 바쳐가면서 일하는 모습을 볼 때 나도 안 나설 수도 없어. 그런 데에서 이제 우리 사회가 좋은 것만 알려지고 계속해 나가는 것보다는 어둡고 불편하고 그랬던 부분도 우리가 숨김없이 밖으로 끄집어 내주고 또 그거를 같이 고민하고 치유해 가는 그런 과정 속에서 밝은 사회로 가는 거 아닌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데가 시민단체다. 내가 다시 한번 비유하지만 바다의 2% 소금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시민단체다 보고 있어요. 그 활동가들을 보면서 든든해지는 느낌도 있어요.
석미화
제가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선생님이 해왔던 이 평화 활동, 그리고 시민사회와 더불어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가요?
류진성
나는 지금 앞으로 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은 내가 살아온 과정 또 겪은 여러 가지 일상들 이런 것들이 어느 구석이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면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 또 일어나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 만들어보도록 노력을 할 거고요. 이제는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이라든지 이런 거를 후배들에게 자꾸 남겨주고 가는 거지. 그래서 나는 이제 내 개인 욕심 없고 부탁도 없고 나에 대해서는 고민들 하지 말아요. 전화 너무 오래 하면 안 돼.
석미화
지금 1시간 됐어요. 저도 얘기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계속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가는 게 좋을까 고민해요.
류진성
여기(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이 한국과 베트남의 전쟁 피해에 대한 그 한정된 영역을 넓힌다고 내가 평가해. 내가 세상은 변한다고 하잖아. 그렇게 더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어.
인터뷰·글 석미화
2025년 1월 17일, 응우옌티탄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2023년 2월 7일 이루어진 1심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끼친 손해에 대해 30,000,100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는 청구를 이행해야 한다.
이 사건은 베트남전쟁 시기 참전 한국군에 의해 1968년 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대한민국 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제1대대 제1중대 소속 군인들 중 일부 인원이 1968년 2월 12일 퐁니 마을에서 작전 수행 중 고의로 비무장 민간인인 원고와 그의 가족에게 총을 쏴 상해를 가하고 살해하였으며 이로 인해 원고 응우옌티탄이 입은 정신적 고통과 충격이 크므로 이에 대한 위자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응우옌티탄의 가족 외 이 마을 사람 70여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1중대 2소대원으로 작전에 참여한 류진성은 2021년에 이 사건을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섰다. 언론은 베트남 파병 군인의 첫 증언이자 양심선언으로 보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4년 여의 시간이 흘렀다. 항소심 판결 이후 베트남전쟁문제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 주최로 23일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전군인 류진성도 함께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자회견을 이틀 앞둔 21일 그와 재판 결과에 대한 소회를 나누기 위해 긴 통화를 했다. 그는 기자회견이 있는 날 병원 예약이 있어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 그 자리에 함께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 같으냐고 먼저 질문해 보았다.
류진성
물어보는 걸 얘기해 주는 거지. 내가 뭔 얘기를 자랑삼아서 할 일도 아니고. 내가 경험했던 거 그런 걸 얘기하니까 똑같은 얘기지. 이것저것 얘기 꺼내서 한두 번도 아니고, 하고 싶지도 않고. 물어보는 얘기는 내가 대답하지.
석미화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법정에서 증언까지 하셨네요.
류진성
자꾸 그냥 또 떠올리고 그러면은 아무리 그냥 잊어버렸다 해도 마음의 부담이 있지. 재판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마음의 빚은 조금 갚는 것 같아. 짐을 하나 더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생전에 이런 좋은 결과를 보고 간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야지. 재판 결과를 엊그저께 들으면서 옛날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필름이 다시 돌아오더라고.
석미화
만났을 때라고 하면 언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류진성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인연이 시작된 시점이 청와대거든.
석미화
청와대 앞에서부터 생각이 나셨어요?
류진성
그렇지 거기서부터 내가 왜 그렇게 나서 가지고 이런 고통의 길을 걸어왔는가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거야. 회상을 해보니까. 근데 이게 또 운명처럼 느껴지네. 그런 그 우연한 만남이. 예상했던 것도 아니고 기다렸던 것도 아니고 아주 자연스럽게 왔잖아. 이것이 어떤 하늘의 계시가 아닌가 그런 여러 가지 복잡하고 아주 미묘한 생각이 드는 것 같아. 그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또 그런 베트남에서의 그런 민간인들 그 살려달라는 절규 몸부림 그리고 이제 죽음을 보면서... 참 지금까지 세상 살아오면서 트라우마가 없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조금씩 잊고 살았었는데. 우리가 만나면서 자꾸 그게 자리가 커지는 거야. 그 트라우마 그런 이제 생각들이 다 떠오르고. 그때 나와 그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이 참 이게 묘한 거야. 그렇지 않아?
석미화
벌써 한 7-8년 전이에요. 2017년에서 2018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이라.
류진성
엊그저께 같은데 나는 그 시간이 마치 50년 같이 느껴져. 내가 겪은 갈등 또 여러 가지 내가 굳이 나서야 되느냐 하는 그런 내 마음속에서 자중지란(自中之亂) 같은 것도 있어 왔고.
석미화
그런 마음의 갈등을 어떻게 다 물리치고 증언까지 하신 거예요?
류진성
그게 이제 내 가슴속에서 양심과의 싸움이었던 것 같아. 피하느냐. 그래도 피해자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입을 안 열면 더 열 사람이 없잖아. 그래서 이거를 묻고 가는 것보다는 밝히자, 이제 그런 갈등 속에서 그 마음이 이긴 거지. 그래서 이제 내 생활의 몰락이 시작된 거야. 그때부터 많은 것을 잃어버렸으니까 내가.
석미화
무얼 잃어버리셨어요.
류진성 참전군인 (사진: 김보람)
류진성
내가 그동안 꿈꾸고 노력했던 상이군인회 회장, 그것도 내가 실패했고 완전히 그때부터 그냥 낙인이 찍혀버린 거야. 나는 그냥 좌파로 그렇게 매도당했다니까. 그러니 그게 표를 얻을 수가 있겠어? 그러다 보니까 사업을 할 수가 있나 무슨 혜택을 볼 수가 있나 그 큰 걸 잃어버리니까. 이제 아주 현실적인 그런 피해가 큰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겠어. 근데 재판 결과를 보면서 이게 보상으로 느껴져. 다 잃어버리고 그나마 그게 조금 보람이 있는 거야. 이걸 얻었구나. 역시 내가 결정을 잘했다. 고생은 했지만, 손해는 많았지만, 그래도 또 이런 걸 얻음으로써 내 양심이 스스로 회복되고 그런 조그마한 자부심을 건진 거 같아. 결정을 내려준 재판부에도 고맙다는 생각도 들고. 이게 참 좋은 방향으로 나라가 가는구나. 지금 윤석열이 탄핵 사태를 보면서 사법부가 썩은 것이 아니구나. 이런 판사들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2%의 염분으로 생명력을 유지하듯이 2%라고 하면 사법부에서 섭섭하겠지만은 그래도 2%는 살아 있구나. 나는 내 생에 이런 판단이 안 나올 줄 알았어.
석미화
기대를 안 하신건가요?
류진성
그래 국가가 항상 지는 이 재판은 시간을 무한정
석미화
끈다 이거죠.
류진성
내가 많이 봤는데 나도 그렇게 끝낼 줄 알았더니. 그래도 상당히 더 빨리 그나마 내가 살아 있을 때 이걸 보게 돼서 나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라.
석미화
아직 완전히 끝난 거는 아니잖아요.
류진성
근데 나는 90%는 됐다고 봐. 법률적 하자가 없는데 대법에서 어떻게 다시 내려보내겠어. 이제 상소하겠지만 기각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이 들어요.
석미화
사실 재판 결과가 잘 나와서 다행이고 기쁜일이지만 사실은 선생님이 그걸 위해서 고뇌하고 애를 썼던 그 시간이 결과와는 무관하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던 거잖아요. 만약에 이런 결과가 아니었다면.
류진성
파멸이지. 자기가 모든 걸 바쳐서 싸우고 했던 그런 것들이 다 그냥 모래성이 돼버리잖아.
그러면 희생만 남는 거야.
석미화
지금 서 계신 자리가 같은 동료들한테 외면당한 아픔도 있었고, 사실은 박수받고 환호받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류진성
아니에요. 이게 비난은 막 폭풍처럼 쏟아지는데 잘했다 칭찬은 (없지) 관심도 없고. 그거 ‘아이고 용기 내줘서 고맙습니다’ 그런 소리를 어디 가서 할 사람도 없고. 그런 거 들을 데도 없고. 그냥 내 스스로 생각을 한 거지. 그나마 이게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그래도 참 내가 그나마 보람이 있구나 생각하는 거야.
석미화
그러니까 사회적 인정이나 격려를 그동안에 거의 받아본 적이 없었던 거잖아요.
류진성
그거를 받은 거는 이제 시민단체 관련된 사람들한테 받은 거지.
참, 앞으로 이제 대법에서도 빨리 결정을 해서 피해자들한테 보상도 내가 살아 있을 때 다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어.
석미화
그거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류진성
가능할 거야. 한 10년은 내가 못 버티겠어?
석미화
100세까지 가능하실 것 같은데. 이렇게 건강하신데.
류진성
아니 건강하다고 오래 사는 건 아니고 내 그동안에 겪어온 고통 뭐 이런 거를 아마 하늘에서 그 정도는 보상해 주지 않겠어? 좋은 결과 보고 오라고 시간을 줄 것 같아. 하늘에서.
석미화
증언을 준비했던 과정도 저는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증언 준비한다고 변호사들하고 주말마다 만나고 증언대에 오르기 전에 여러 우여곡절도 많이 있었고. 그런 시간들도 떠오르더라고요. 항상 유쾌하게 말씀을 하시고 이런 얘기를 길게 하신 적은 없잖아요. 고뇌하고 고통스러웠던 시간이라는 표현을 하셔서, 분명히 그런 시간들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우리가 살피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류진성
좋은 결과가 나온 걸 보면서 이제 그런 추억들을 다시 한번 떠올린 거야. 돌아봤고 쭉 떠오르는 거야. 주위 동료들이 많이 떠났는데... 나는 한 세계를, 파트너를 다 잃어버린 거야. 그런 게 참 보여줄 수도 없고, 다시 부를 수도 없고.
석미화
이 판결이 너무 반갑고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을 짓누르는 게 있어요. ‘한국군 민간인 학살’이라고 하는 단어의 조합이 참전군인을 가해 집단으로 획일화하는 현상에 대해서 우려하는 거죠.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단죄가 집단을 매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심히 살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이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참전군인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고, 참전군인을 만나 듣는 이야기가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려는 것이냐는 말도 나와요.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학살과 가해자라는 연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이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류진성
그러니까 그게 참전 자체를 이제는 숨기려고 하지.
석미화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있잖아요. 우선 원고인 응우옌티탄이 있고 함께 한 시민사회가 있고 또 참전군인 동료도 선생님의 고뇌에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분들일 텐데 그분들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류진성
피해자분들한테는 그저 할 수 있는 얘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릴 수 없는 것이고 그저 죄송한 마음이고. 그게 돈으로 보상한다고 또 다 끝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 마음의 상처라는 거는 항상 참 죄스럽고 미안하고 그러지. 그래서 빨리 이런 모든 문제가 완결이 돼서 그나마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좀 해서 그분들이 노후에라도 좀 경제적으로 도움이 됐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고. 그리고 이제 나는 잘못된 거는 잘못한 대로 털어놓고 다시 진정한 화해를 통해서 새 출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는 낫지 않겠냐는 그런 판단에서 진실을 밝히는 쪽을 선택했는데 또 다른 (참전군인) 동료들은 나와 상반된 그런 생각들을 가진 동료들이 많이 있고. 그런 친구들한테는 내가 참 미안하지. 미안하지만은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부탁도 하고 싶고. 나는 이것이 소위 요즘 말하는 국격에도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니까. 아니 나라고 대한민국 국민인데 국가를 망치고 국민을 욕되게 하려고 그런 선택을 했겠나. 나는 이게 차라리 미래를 위해서 바람직한 길이다라고 생각해서 내 양심대로 행동을 한 거니까. 이런 점을 좀 깊이 헤아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어.
석미화
시민사회에는요. 함께한 사람들.
류진성
잊혀져가는 거, 감추어진 거, 이런 거를 들춰내서 우리 사회를 위해 참 많은 악조건 속에서 자기 인생들 젊음을 바쳐가면서 일하는 모습을 볼 때 나도 안 나설 수도 없어. 그런 데에서 이제 우리 사회가 좋은 것만 알려지고 계속해 나가는 것보다는 어둡고 불편하고 그랬던 부분도 우리가 숨김없이 밖으로 끄집어 내주고 또 그거를 같이 고민하고 치유해 가는 그런 과정 속에서 밝은 사회로 가는 거 아닌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데가 시민단체다. 내가 다시 한번 비유하지만 바다의 2% 소금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시민단체다 보고 있어요. 그 활동가들을 보면서 든든해지는 느낌도 있어요.
석미화
제가 이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선생님이 해왔던 이 평화 활동, 그리고 시민사회와 더불어 앞으로 무엇을 함께 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가요?
류진성
나는 지금 앞으로 내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은 내가 살아온 과정 또 겪은 여러 가지 일상들 이런 것들이 어느 구석이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면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한 또 일어나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 만들어보도록 노력을 할 거고요. 이제는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이라든지 이런 거를 후배들에게 자꾸 남겨주고 가는 거지. 그래서 나는 이제 내 개인 욕심 없고 부탁도 없고 나에 대해서는 고민들 하지 말아요. 전화 너무 오래 하면 안 돼.
석미화
지금 1시간 됐어요. 저도 얘기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계속 어떻게 활동을 해 나가는 게 좋을까 고민해요.
류진성
여기(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이 한국과 베트남의 전쟁 피해에 대한 그 한정된 영역을 넓힌다고 내가 평가해. 내가 세상은 변한다고 하잖아. 그렇게 더 확장해 나갔으면 좋겠어.
인터뷰·글 석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