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기억 이야기[후원회원 인터뷰_나동주 참전군인] 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뭔가 있겠지

“저 돌은 그때도 있었던 것 같은디.”

 

차가 월남파병용사만남의장으로 향하는 경사진 길을 오르며 코너를 돌자 오른쪽 모퉁이에 서 있는 커다랗고 노란 돌기둥을 보고 참전군인 나동주가 말했다. 반세기도 더 된 일이니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터인데도. 그의 눈은 부지런히 그때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지난 6월,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리는 아카이브평화기억이 참전군인과 만난 5년의 시간을 기록전으로 준비하며 추진 중인 시민참여기획단 ‘눈과 발 사이’의 두 번째 탐방 장소다. 이곳은 과거에 전장으로 가는 병사들의 훈련소가 있던 곳이다. 현재는 ‘월남파병용사만남의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월남참전기념관, 재현한 월남마을과 각종 추모탑과 위령탑이 들어서 있다. 국비와 도비, 군비 총 179억 원을 들여 2008년에 조성되었다. 

답사에는 55년 전 이곳에서 훈련받고 베트남으로 떠난 참전군인 나동주가 동행했다. 그는 1971년 2월, 백마 29연대 의무 중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갔다. 오래전 이곳을 다녀간 후 처음 찾는 발길이 그를 다른 시간으로 데려다 놓은 듯했다. 오음리로 가기 전에 소양강가 의암호 인근에 서 있는 춘천월남참전기념탑에 들렀다. 다른 곳의 참전탑과 달리 춘천역과 부산항 제3부두의 환송 인파로 붐비는 사진이 탑 둘레로 서 있었다. 가만히 사진 앞에 서 있는 그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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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 참전군인과 춘천대첩평화공원 내 춘천월남참전기념탑 앞에서(2026.6.20.) 사진 조한결


참전군인 나동주를 만난 건 2024년 외대역 앞 도꼬마리 공간에서다. 한 해 전인 2023년부터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에 함께하고 있는 도꼬마리 활동가이자 기록작가 박내현은 마을 기록 사업 결과물로 나온 구술기록집 주인공 중 한 명인 그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참전군인 나동주는 구술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만나고 활동에 함께하고 있다. 2024년과 2025년 구술활동공유회에 그의 이야기가 소개되었고, 그는 공유회 자리에도 함께하며 생각을 나누어 주었다.

 

2024년 구술활동공유회 <그의 전쟁가방을 열다>

2025년 구술활동공유회 <전쟁과 쌀포대>



"여기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뜻있게 적어놔주면 좋을텐데..."


그날은 비가 와서 그런가, 주말인데도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월남참전기념관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국가 발전과 애국을 강조하고 있지만, 용산 전쟁기념관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이곳이 병사들의 훈련소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들르는 이도 적고 관심갖는 이도 적은  곳이기 때문일까, 파병 간 병사들이 쓴 글귀와 함께 전장의 고통과 두려움을 담은 편지도 전시하고 있다. 2층 제3전시실에는 위문편지, 참전수기를 비롯해 참전자들의 전장 경험을 담은 글들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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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참전기념관 탐방(2026.6.20.) 사진 조한결


1층 제1전시실 전시 말미에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 제목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쓰여 있다. “다른 나라의 군인들과 달리 한국군의 파병은 개인이 지원한 것이라 하더라도 국민개병의 병역제도에 따라 국가의 명령으로 파병된 것이다. 그들의 대부분이 국가의 명에 따라 풍토와 문화가 전혀 다른 외국에서 국위선양을 위한 애국을 몸으로 실천한 것이다. 따라서 특별한 잘못이 없는 한 참전용사 모두를 영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회적 시선을 의식한 듯한 짧은 글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참전군인 나동주는 이곳의 전시를 어떻게 보았을까.

그는 오음리 훈련이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가 훈련받던 한 달여 기간 동안 탈영병이 세 명 있었고, 그 후로 그들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오음리는 그런 기억의 조각들로 남아있었다. "오음리에 와 보니까 그쪽에다가는 그냥 그렇게 해 놓을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옛날에 여기서 훈련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지 더 전해들어서 사실적인 것을 조금 어디다가 어떻게 해 놓든지간에 글로 적어서 어려움에 대해서 그런 것을 뜻있게 적어놔주면 뒤에 가는 사람들도 아 여기가 그런곳이었구나 조금 느껴보고 그럴텐데 그런 점들을 하나도 준비 안 해 놓고 여기가 오음리라는 월남 가기 전에 훈련받았던 곳이다 이것만 덜렁 이야기해주면 나는 별 그 의미가 많이 상실해버리고 있지 않느냐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


[영상스케치] 참전군인 나동주와 함께한 월남파병용사만남의집 탐방 (8분21초, 촬영편집 전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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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을 읽고서 참전군인 나동주가 짧은 글을 보내왔다. 

글에는 전쟁과 평화를 생각하며 망설이는 마음이 담겨있다.    (사진, 글: 나동주 참전군인)


"저한테는 제목부터가 느끼게 하는 게 힘든 제목인 것 같다. 책을 읽을수록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그런 제목인 것 같다. 한 인생의 초라함을 느끼게 하는 그러한 제목이 아닌가. 자기 목숨 연장과 집안의 안녕 행복 이게 모두의 소망인가. 아님 자기 도피의 한 방법인가. 월남에 간 동창생들을 찾아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어떠타고 정의를 내릴 수 있고 내가 생각하는 평화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한 사람으로서 정의로도 못 내리겠고 답답하게만 쌓여 표현이 나오지 않는 이 시간들. 책을 읽고 한탄할 뿐이다. 나도 월남을 갔다 온 군인으로서 만약 내가 다시 월남을 갔다 온다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나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이 없다. 평화와 전쟁 그 한가운데 서서 망서릴 뿐 어느 것이 정의란 것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월남으로 간 동창생을 찾아 나선 시간_돌작가 나동주


“막걸리 한 병 시켜도 될란가요?”

 

정해진 예산에 맞춰 식비를 지출하려니 빠듯한 살림을 아는 듯 그가 물었다. 점심은 춘천역 인근 기사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월남파병용사만남의장에서 십여 킬로미터 떨어진 막국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그는 식사 때마다 늘 막걸리로 반주를 즐긴다. 말하자면 막걸리가 유산균 역할을 해서 소화가 잘 된다는 게 그가 반주로 즐기는 이유다. 덕분에 그와 마주 앉은 상에는 종종 막걸리가 오른다. 일정의 마무리이고, 소감을 나눠보자는 생각에 예산과 별도로 막걸리를 시켜 한 잔씩 따르고 잔을 부딪쳤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해 춘천역을 들러 오음리까지 바쁘게 답사를 다녀서 그런가 막걸리 한 잔이 꿀맛 같았다. 목을 축인 후 앞자리 동료에게 그가 한  음절씩 숨을 섞어가며 천천히 물었다. 

“어떻게 해서 여기 '아카이브'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는 우리 단체이름 아카이브평화기억을 ‘아카이브’라고 줄여 부른다. 앞사람이 단체와의 인연을 중심으로 소개하니, 바로 옆 사람에게 눈길을 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저녁 자리에서야 마주 앉아 차례로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종일 함께 다닌 이들이 궁금했던 것 같다. 순서가 되자 그는 구술활동에 몇 년도부터 참여하고 어떤 계기로 답사에 함께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고는 아카이브평화기억 회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서로가 동료의 한 사람으로 그렇게 자기 소개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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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주 참전군인과 우리를 반겨준 댕댕이


“젊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뭔가 있겠지.”


참전군인 나동주는 '아카이브'의 열혈 회원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나아가 그가 참여하고 있는 고엽제전우회 동대문지회를 소개하고, 구술 활동 현장에도 함께한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구술 활동이든, 답사든, 공유회든, 글쓰기든 참여하고 생각을 나눈다. 그는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이 참전한 이들의 생각을 잘 담아 나가길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다. 우리는 그와 동행한 오음리 답사의 추억을 갖고 연이은 답사 일정을 마쳤다. 남해 6.25 월남전흔적전시관에 가서는 그가 함께 왔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그와 함께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앞으로도 그가 건강하게 청년들과 더불어 생각을 나누고,평화 활동의 동료로 나아가면 좋겠다.


며칠 후, 글을 마무리하고는 참전군인 나동주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글을 읽고 이렇게 답을 주었다.

"저는 '아카이브'를 좋아합니다. 거기다 진짜 좋아합니다. 저는 내년이면 80입니다. 늙은이를 친구처럼 대해주니 .. 저도 회원이면서 어디까지 답해야 하나 사실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월남 가기 전 훈련받았던 곳 설명이 너무 빈약한 것 같아요. 이런걸 더 부각시켜 뒤에 보는 참전군인들의 생각을 상기시키는 장이 되었으면 더 좋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는 오음리 답사를 다니며 고생스럽게 훈련받았던 기억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월남가는 병사들이 훈련받던 곳이라는데 정작 전장으로 떠나는 이들이 겪은 이야기는 생략되었다. 베트남전쟁이 한국 사회에서 잊힌 전쟁이 된 것은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보지 않을 뿐, 그 시간동안 한국 땅은 베트남전쟁의 후방 기지였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는 장소가 오음리이다. 오음리 월남파병용사만남의 장은 베트남전쟁의 후방 기지로서의 역사를 보여줘야 한다. 그곳에서 훈련하고 다치고, 죽고, 사라져간 수많은 병사들의 이야기까지 포함하여.


※ 이 글은 2026년 6월 20일, 참전군인 나동주와 함께 베트남전장으로 가는 병사들이 훈련받았던 장소에 조성된 월남파병용사만남의장을 탐방하며 나눈 대화를 중심으로 작성하였습니다.



글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대표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