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씨가 참 변덕이다. 이번 호 소식지에는 그림책작가 지연을 만났다.
우리 단체 이사이면서 후원 회원인 지연은 바퀴가 달린 작은 캐리어 가방을 끌고 전국을 바삐 돌아다닌다.
그는 그림책으로 어린이부터 청소년, 어르신,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와 만나 신나게 평화를 나눈다.
인터뷰 핑계로 누구보다 바삐 사는 지연과 아카이브평화기억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날도 그는 작은 캐리어 가방 끌고 숨가쁘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평화시장 앞에서, 김지연 작가 @ 김지연 제공
노랭 안녕하세요 지연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지연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책 만들고 있는 김지연입니다. 그림책을 만들고, 그림책과 관련된 여러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또 등산 하는 취미가 있어요. 너무 재밌게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구미 강의에 가면 금호산 올라갔다 오고, 강원도 강의에 가면 치악산 갔다 오고, 제주 가면 한라산 한번 갔다 오고 이런 식으로 다녀오고 있어요. 안 그러면 놀 수가 없어서요.(웃음) 올라가면서 잡생각이 사라지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여기에 있으면 잡생각이 많은데 산에 가면 생각조차 안 하고 내 본능에 충실하니까 원점으로 세팅돼서 돌아오는 느낌이 좋습니다.
노랭 삶에서 에너지를 얻는 지연님만의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 힘이 모여서인지, 그림책을 여러 권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는 「평화시장」이라는 그림책을 내셨는데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아기포로」도 그렇고 평화를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고 계세요.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그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지연 제가 만든 「백년아이」란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저희 할머니를 모티브로 만든 이야기예요. 저희 할머니가 1919년에 태어나시고 97세로 돌아가셨는데 제가 할머니의 출생연도를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안 거예요. 세상에, 할머니가 그 험난한 시절을 다 지나오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고 맛있는 거 해달라고만 했던 거예요.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이 역사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근현대사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백년아이」란 책도 1919년에서 2019년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다룬 이야기예요.
노랭 저도 할아버지가 참전군인인데요. 주변 이들의 역사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정말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하시면서는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지연 맞아요. 책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 땅에 너무나 힘든 일이 많았더라구요.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너무 안 가르치거나 짧게 가르쳐요. 저는 착한 학생이었으니까(웃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배웠던 거죠. 학교에서 알려 주지 않는 것들을 같이 공부하고 펼쳐봐야 되겠구나를 느끼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한국전쟁 때 거제도 포로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거죠. 또 평화시장도 역시나 한국전쟁 이후에 생긴 시장이에요. 피난민들이 만든 시장이고요. 우리나라가 분단 국가다 보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겠구나 해서 만들었어요. 공부한 게 자꾸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노랭 그러게요. 역사라는 게 전부 연결돼 있잖아요. 시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흐르며 의제와 역사와 사람이 연결되니까요. 해결되지 못한 것들은 또 다른 비극으로 반복되는 것 같아요.
지연 그렇죠. 그리고 제 삶과도 연결이 돼요. 할머니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진짜 근현대사는 눈물 없이 볼 수가 없고 가슴이 너무 아프고 심지어 공부하다가 구토가 날 정도로 심한 일이 많아요.
노랭 이야기의 주제들이 할머니로부터 연결돼 왔네요. 지연님은 어떻게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전하게 되셨어요?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림책은 금방 친구가 될 수가 있어요
김지연 작가의 그림책 원화 사진 @ 김지연 제공
지연 그림책이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책이거든요. 그러니까 짧은 장면 안에 이야기를 함축하기가 너무 좋아요. 만약에 글로만 쓰면 읽고 싶지 않으면 안 읽어버리면 되는데 그림책은 이미지가 있단 말이에요. 읽고 싶지 않아도 눈에 보여요. 눈에 보이면 궁금하니까 글이 따라와서 이게 무슨 내용인지 보게 되거든요. 저희는 두 페이지를 한바닥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주로 그림을 그리는데 16장면 안에 이야기가 다 들어가야 돼요. 너무 어려워요. 그 대신에 독자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금방 친구가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사람과 함께 하기에 이만큼 좋은 매개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랭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수업을 진행할 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잖아요. 저는 평화워크숍을 준비하면서 그게 너무 어려웠거든요.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전달하지? 나는 몇 년 해도 이렇게 힘든데 오신 분들은 두 시간만에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말이에요. 지연님은 그런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연 저는 압축하는 연습을 되게 오랫동안 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압축하느라고 「백년아이」 그림책을 만드는데 3년이 걸렸거든요. 책은 주름이에요. 주름을 지어 놓고 펼칠 수가 있는 거예요. 저는 어떤 장면이 나와도 1시간 얘기할 수 있어요. 그만큼 힘이 들죠.
노랭 그러게요 1을 전달하려면 100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지연님은 그림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시잖아요. 연령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하다고 들었어요. 만남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지연 좋았던 건 너무 많아요. 왜냐면, 책이 정말 신기한 게 이런 거예요. 제가 압축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여기에 정말 오롯이 짧은 글과 단어, 상징성을 지닌 이미지들이 몇 개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날 이 책을 보신 분들에 따라 내용을 다 다르게 해석하는 거예요. 어떤 독자는 막 철학책으로 보구요. 어떤 독자는 재미난 시각 이미지를 지닌 책으로 보구요. 어떤 독자는 이야기로 보게 돼요. 그러니까 생각이 다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을 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그림책은 이게 매력이에요.
1919년생 우리 할머니와 나
김지연 작가 @연두
노랭 이야기를 나누며 지연님의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확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조금 이야기를 틀어서 우리 단체에 관한 질문을 해 볼게요. 지연님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지연 옥수동에서 한베평화재단과 같이 작업실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작업실에 베트남전쟁 관련된 자료들이 막 있으니까 보면서 혼자 야금야금 안 거예요. 그러다가 「일곱 시」라는 만화책을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게 되었어요. 베트남전쟁에 관한 내용을 7명의 사람들이 같이 공부하고 만들었는데 그때 공부를 많이 했어요. 저는 책을 만들 때 현장에 답사를 가는 습관이 있어요. 가보지 않고 여기서 자료랑 컴퓨터로 아는 게 진실과 멀지 않을까 의심해보는거죠. 문제는 그 당시에 코로나가 심해서 어디든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베트남 사람들 인터뷰도 제대로 못 해보고 그냥 자료로만 책을 만드는 게 저한테 너무 불편한 일이었어요. 저는 「일곱 시」라는 책에 베트남 여성사를 정리해서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어요. 베트남 신화로 시작해서 전쟁을 겪은 할머니, 그다음에 그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딸, 그리고 지금 희망인 손녀가 등장해요. 우리나라에 베트남 여성이 엄청 많이 들어와 있잖아요. 그들이 여기서 자기 나라 이야기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전쟁으로 피해 입은 여성이 아니라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사는 건강한 여성 이야기를 말이에요.
노랭 그러네요. 어떻게 보여질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미지가 굳어지기도 하니까요. 가난하거나 빈곤하거나 아픔을 가진 면만 비추는 것도 문제의식이 있지요.
지연 맞아요. 맞아요.
노랭 어느 이슈든 다양한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연 그러니까요. 덕분에 그때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노랭 연두(석미화 대표)랑도 그때 인연이 닿은 거네요.
지연 맞아요. 그렇게 이 시기가 맞았어요.
노랭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에 대한 연구」(2021 / 석미화, 최나현 / 세종PNP) 보고서를 열심히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평화의 주체로 참전군인을 바라보고 있는 연구잖아요, 보고서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지연 우선 저는 참전군인 스스로가 어떤 의미로 참전을 정리하셨는지가 제일 궁금했어요. 시대가 그런시대였잖아요. 살기 바쁘기도 했고, 그런 시대 젊은이가 삶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어떻게 정리하셨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읽었어요. 사실 읽고 나서는 참전 이후에 참전군인들의 실태를 조사하거나 도움을 드리는 일을 국가나 시민들이 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컸어요. 그렇게 참전군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노랭 지연님은 저희 단체 이사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관심이 지금과 연결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단체 이사를 맡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지연 저는 일단 그 이사란 이름이 너무 거대한 이름이어서 진짜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 같아요. 저는 석미화 선생님을 오랫동안 봐왔잖아요. 그래서 이분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왜 그러냐면 정말 우직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 흔들림 없이 가세요. 그리고 사실은 도와드리는 게 아니라 제가 더 많이 배우죠. 그리고 또 아카이브평화기억과 함께하며, 더더욱 평화에 대해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다 선순환인 거예요. 물려 돌아갔으나 나중에 선하게 될 확률이 높잖아요. 하하. 그래서 더 잘 살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제가 단체 이사로 부끄럽지 않으니까요. (웃음)
노랭 (웃음) 지연님은 아카이브평화기억이 주최하는 공론장에도 자리해 주시잖아요. 그 자리에서 어떤 배움과 느낌을 가지고 가시나요?
지연 우리 단체가 진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난번 공론장은 '전쟁과 책임'이라는 주제로 일본인 전범에 대한 신중국의 전범정책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었어요. 한쪽에 앉아 이야기 들으며 아 이게 좀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우리끼리 연구하고 모이고 하니 어떻게 하면 확산될까 고민이 들죠.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이야기 들을 때마다 너무 감동스러워요. 그래서 들었던 이야기를 제가 강의 가서 다시 얘기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사실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잖아요. 현장에 그걸 가져가서 제가 다시 알려드리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데 직접 그 목소리로 들으면 얼마나 더 좋으시겠어요. 그리고 또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육성으로 이런 이야기 듣는 거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언론매체들은 다루지 않는 이야기이고요. 계속 많이 확산되고 얘기가 돼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죠.
노랭 맞아요. 저도 어떻게 우리의 활동에 많은 이들을 초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요. 평화워크숍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평화 감수성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말이에요.
지연 평화를 고민하며 갖는 가장 사소한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잖아요. 우리는 전쟁기념관 이름 하나만 가지고도 할 얘기가 많아요. 전쟁을 어떻게 기념하지? 이런거죠. 근데 알 수 있는 계기가 없으니까 다들 그런 생각을 펼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끊임없어 하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 생각해요. 저도 제 위치에서 평화를 전할 방법을 고민하고요. 저는 제가 활동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책이 누군가에게는 문학이지만 그 문학을 만난 사람은 다 자기 해석으로 내용을 변환시키기 때문에 저는 그걸 돕는 거죠.
노랭 이야기를 들으며 지연님은 그림책을 매개로 하는 활동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 단체의 이사로써 후원해주는 분들과 소식지를 받아 보시는 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지연 이사로서는 제가 너무 부족하죠. 하지만 제가 열심히 사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들어요. 제가 자리를 잘 잡아서 제 발언이 아카이브평화기억에 힘이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잘 활동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이 소식을 보시는 분들에게는 너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왜냐구요? 요즘 세상에 이런 소식지를 읽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너무 감사하고 이 소식지를 보고 계시는 자체가 저희와 함께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가 평화에 한 발짝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읽고 있는 이 순간에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노랭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가 @연두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이 역사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근현대사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나 또한 참전군인 할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아닌 한 역사를 가진 인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역사와 연결되는 과정. 보는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16바닥의 이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강연 끝에는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을 소개해요."
그의 애정어린 이야기에 나 또한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평화로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본다.
인터뷰 글 노랭
여름 날씨가 참 변덕이다. 이번 호 소식지에는 그림책작가 지연을 만났다.
우리 단체 이사이면서 후원 회원인 지연은 바퀴가 달린 작은 캐리어 가방을 끌고 전국을 바삐 돌아다닌다.
그는 그림책으로 어린이부터 청소년, 어르신,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와 만나 신나게 평화를 나눈다.
인터뷰 핑계로 누구보다 바삐 사는 지연과 아카이브평화기억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날도 그는 작은 캐리어 가방 끌고 숨가쁘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평화시장 앞에서, 김지연 작가 @ 김지연 제공
노랭 안녕하세요 지연님!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지연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책 만들고 있는 김지연입니다. 그림책을 만들고, 그림책과 관련된 여러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또 등산 하는 취미가 있어요. 너무 재밌게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구미 강의에 가면 금호산 올라갔다 오고, 강원도 강의에 가면 치악산 갔다 오고, 제주 가면 한라산 한번 갔다 오고 이런 식으로 다녀오고 있어요. 안 그러면 놀 수가 없어서요.(웃음) 올라가면서 잡생각이 사라지잖아요.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깨끗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여기에 있으면 잡생각이 많은데 산에 가면 생각조차 안 하고 내 본능에 충실하니까 원점으로 세팅돼서 돌아오는 느낌이 좋습니다.
노랭 삶에서 에너지를 얻는 지연님만의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 힘이 모여서인지, 그림책을 여러 권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에는 「평화시장」이라는 그림책을 내셨는데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아기포로」도 그렇고 평화를 주제로 계속 이야기하고 계세요.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그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지연 제가 만든 「백년아이」란 책이 있어요. 이 책은 저희 할머니를 모티브로 만든 이야기예요. 저희 할머니가 1919년에 태어나시고 97세로 돌아가셨는데 제가 할머니의 출생연도를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야 안 거예요. 세상에, 할머니가 그 험난한 시절을 다 지나오셨는데 나는 할머니가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고 맛있는 거 해달라고만 했던 거예요.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이 역사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근현대사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백년아이」란 책도 1919년에서 2019년까지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다룬 이야기예요.
노랭 저도 할아버지가 참전군인인데요. 주변 이들의 역사를 알아차리는 과정이 정말 있는 것 같아요. 공부를 하시면서는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아요.
지연 맞아요. 책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이 땅에 너무나 힘든 일이 많았더라구요.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너무 안 가르치거나 짧게 가르쳐요. 저는 착한 학생이었으니까(웃음)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 배웠던 거죠. 학교에서 알려 주지 않는 것들을 같이 공부하고 펼쳐봐야 되겠구나를 느끼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한국전쟁 때 거제도 포로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거죠. 또 평화시장도 역시나 한국전쟁 이후에 생긴 시장이에요. 피난민들이 만든 시장이고요. 우리나라가 분단 국가다 보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겠구나 해서 만들었어요. 공부한 게 자꾸 어떤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노랭 그러게요. 역사라는 게 전부 연결돼 있잖아요. 시간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흐르며 의제와 역사와 사람이 연결되니까요. 해결되지 못한 것들은 또 다른 비극으로 반복되는 것 같아요.
지연 그렇죠. 그리고 제 삶과도 연결이 돼요. 할머니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진짜 근현대사는 눈물 없이 볼 수가 없고 가슴이 너무 아프고 심지어 공부하다가 구토가 날 정도로 심한 일이 많아요.
노랭 이야기의 주제들이 할머니로부터 연결돼 왔네요. 지연님은 어떻게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전하게 되셨어요? 그림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그림책은 금방 친구가 될 수가 있어요
김지연 작가의 그림책 원화 사진 @ 김지연 제공
지연 그림책이 글과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책이거든요. 그러니까 짧은 장면 안에 이야기를 함축하기가 너무 좋아요. 만약에 글로만 쓰면 읽고 싶지 않으면 안 읽어버리면 되는데 그림책은 이미지가 있단 말이에요. 읽고 싶지 않아도 눈에 보여요. 눈에 보이면 궁금하니까 글이 따라와서 이게 무슨 내용인지 보게 되거든요. 저희는 두 페이지를 한바닥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주로 그림을 그리는데 16장면 안에 이야기가 다 들어가야 돼요. 너무 어려워요. 그 대신에 독자는 아주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가져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금방 친구가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가 사람과 함께 하기에 이만큼 좋은 매개가 없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랭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요. 수업을 진행할 때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잖아요. 저는 평화워크숍을 준비하면서 그게 너무 어려웠거든요.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전달하지? 나는 몇 년 해도 이렇게 힘든데 오신 분들은 두 시간만에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말이에요. 지연님은 그런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연 저는 압축하는 연습을 되게 오랫동안 했으니까 그런 것 같아요. 압축하느라고 「백년아이」 그림책을 만드는데 3년이 걸렸거든요. 책은 주름이에요. 주름을 지어 놓고 펼칠 수가 있는 거예요. 저는 어떤 장면이 나와도 1시간 얘기할 수 있어요. 그만큼 힘이 들죠.
노랭 그러게요 1을 전달하려면 100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요. 지연님은 그림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시잖아요. 연령도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하다고 들었어요. 만남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지연 좋았던 건 너무 많아요. 왜냐면, 책이 정말 신기한 게 이런 거예요. 제가 압축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 여기에 정말 오롯이 짧은 글과 단어, 상징성을 지닌 이미지들이 몇 개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날 이 책을 보신 분들에 따라 내용을 다 다르게 해석하는 거예요. 어떤 독자는 막 철학책으로 보구요. 어떤 독자는 재미난 시각 이미지를 지닌 책으로 보구요. 어떤 독자는 이야기로 보게 돼요. 그러니까 생각이 다 다른 거예요. 그러니까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을 하는 경우는 잘 없어요. 그림책은 이게 매력이에요.
1919년생 우리 할머니와 나
김지연 작가 @연두
노랭 이야기를 나누며 지연님의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확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조금 이야기를 틀어서 우리 단체에 관한 질문을 해 볼게요. 지연님은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지연 옥수동에서 한베평화재단과 같이 작업실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요. 작업실에 베트남전쟁 관련된 자료들이 막 있으니까 보면서 혼자 야금야금 안 거예요. 그러다가 「일곱 시」라는 만화책을 여러 사람과 같이 만들게 되었어요. 베트남전쟁에 관한 내용을 7명의 사람들이 같이 공부하고 만들었는데 그때 공부를 많이 했어요. 저는 책을 만들 때 현장에 답사를 가는 습관이 있어요. 가보지 않고 여기서 자료랑 컴퓨터로 아는 게 진실과 멀지 않을까 의심해보는거죠. 문제는 그 당시에 코로나가 심해서 어디든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상태에서 베트남 사람들 인터뷰도 제대로 못 해보고 그냥 자료로만 책을 만드는 게 저한테 너무 불편한 일이었어요. 저는 「일곱 시」라는 책에 베트남 여성사를 정리해서 한 꼭지를 맡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어요. 베트남 신화로 시작해서 전쟁을 겪은 할머니, 그다음에 그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은 딸, 그리고 지금 희망인 손녀가 등장해요. 우리나라에 베트남 여성이 엄청 많이 들어와 있잖아요. 그들이 여기서 자기 나라 이야기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전쟁으로 피해 입은 여성이 아니라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사는 건강한 여성 이야기를 말이에요.
노랭 그러네요. 어떻게 보여질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미지가 굳어지기도 하니까요. 가난하거나 빈곤하거나 아픔을 가진 면만 비추는 것도 문제의식이 있지요.
지연 맞아요. 맞아요.
노랭 어느 이슈든 다양한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연 그러니까요. 덕분에 그때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노랭 연두(석미화 대표)랑도 그때 인연이 닿은 거네요.
지연 맞아요. 그렇게 이 시기가 맞았어요.
노랭 「참전군인의 평화 활동에 대한 연구」(2021 / 석미화, 최나현 / 세종PNP) 보고서를 열심히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평화의 주체로 참전군인을 바라보고 있는 연구잖아요, 보고서를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지연 우선 저는 참전군인 스스로가 어떤 의미로 참전을 정리하셨는지가 제일 궁금했어요. 시대가 그런시대였잖아요. 살기 바쁘기도 했고, 그런 시대 젊은이가 삶에 대한 의미나 가치를 어떻게 정리하셨는지 궁금해서 열심히 읽었어요. 사실 읽고 나서는 참전 이후에 참전군인들의 실태를 조사하거나 도움을 드리는 일을 국가나 시민들이 했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컸어요. 그렇게 참전군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노랭 지연님은 저희 단체 이사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 관심이 지금과 연결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단체 이사를 맡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지연 저는 일단 그 이사란 이름이 너무 거대한 이름이어서 진짜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 같아요. 저는 석미화 선생님을 오랫동안 봐왔잖아요. 그래서 이분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힘을 보태고 싶었어요. 왜 그러냐면 정말 우직하게 옳다고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 흔들림 없이 가세요. 그리고 사실은 도와드리는 게 아니라 제가 더 많이 배우죠. 그리고 또 아카이브평화기억과 함께하며, 더더욱 평화에 대해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다 선순환인 거예요. 물려 돌아갔으나 나중에 선하게 될 확률이 높잖아요. 하하. 그래서 더 잘 살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제가 단체 이사로 부끄럽지 않으니까요. (웃음)
노랭 (웃음) 지연님은 아카이브평화기억이 주최하는 공론장에도 자리해 주시잖아요. 그 자리에서 어떤 배움과 느낌을 가지고 가시나요?
지연 우리 단체가 진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지난번 공론장은 '전쟁과 책임'이라는 주제로 일본인 전범에 대한 신중국의 전범정책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었어요. 한쪽에 앉아 이야기 들으며 아 이게 좀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우리끼리 연구하고 모이고 하니 어떻게 하면 확산될까 고민이 들죠. 저는 항상 그 자리에 이야기 들을 때마다 너무 감동스러워요. 그래서 들었던 이야기를 제가 강의 가서 다시 얘기하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사실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잖아요. 현장에 그걸 가져가서 제가 다시 알려드리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데 직접 그 목소리로 들으면 얼마나 더 좋으시겠어요. 그리고 또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육성으로 이런 이야기 듣는 거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기존의 언론매체들은 다루지 않는 이야기이고요. 계속 많이 확산되고 얘기가 돼야 되는데 아직까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죠.
노랭 맞아요. 저도 어떻게 우리의 활동에 많은 이들을 초대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어요. 평화워크숍을 매개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평화 감수성을 갖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은데 말이에요.
지연 평화를 고민하며 갖는 가장 사소한 것에 대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잖아요. 우리는 전쟁기념관 이름 하나만 가지고도 할 얘기가 많아요. 전쟁을 어떻게 기념하지? 이런거죠. 근데 알 수 있는 계기가 없으니까 다들 그런 생각을 펼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끊임없어 하는 게 되게 중요하겠다 생각해요. 저도 제 위치에서 평화를 전할 방법을 고민하고요. 저는 제가 활동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책이 누군가에게는 문학이지만 그 문학을 만난 사람은 다 자기 해석으로 내용을 변환시키기 때문에 저는 그걸 돕는 거죠.
노랭 이야기를 들으며 지연님은 그림책을 매개로 하는 활동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우리 단체의 이사로써 후원해주는 분들과 소식지를 받아 보시는 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릴게요.
지연 이사로서는 제가 너무 부족하죠. 하지만 제가 열심히 사는 것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이 들어요. 제가 자리를 잘 잡아서 제 발언이 아카이브평화기억에 힘이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잘 활동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이 소식을 보시는 분들에게는 너무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왜냐구요? 요즘 세상에 이런 소식지를 읽고 있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실까요? 너무 감사하고 이 소식지를 보고 계시는 자체가 저희와 함께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우리가 평화에 한 발짝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읽고 있는 이 순간에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내 주변 사람들의 삶이 역사인데 그동안 내가 너무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근현대사 공부를 개인적으로 하게 되었어요" 나 또한 참전군인 할아버지를 '할아버지'가 아닌 한 역사를 가진 인물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할머니로부터 비롯된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근현대사 공부를 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역사와 연결되는 과정. 보는 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16바닥의 이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평화를 이야기하는 강연 끝에는 아카이브평화기억 활동을 소개해요."
그의 애정어린 이야기에 나 또한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평화로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 본다.
인터뷰 글 노랭